이것은 나의 큰 남동생 이야기다.
우리는 60년대 생이라 아파트는 거의 없던 시절, 제법 부촌인 개량된 한옥집이 많은 동네에 살았다. 대청마루와 연결된 주담이 있고 작은 화단과 마당, 시멘트 담, 철로 된 대문이 있는 구조였다. 대문 가까이 개집이 있었고 거기에는 항상 강아지가 묶여 있었다. 요즘처럼 집안에서 키우고 예방 주사를 맞히고 고급 사료를 먹여서 키우는 식구 같은 강아지는 아니었다. 할머니가 큰 장에서 강아지 한 마리 사 오시면 바깥 개집에서 딱히 돌봄이나 관심을 받지도 못하고 거의 묶여서 살았다.
일 년 반 정도 지나 제법 짖는 소리도 커고 몸집도 토실토실 해지면 할머니는 개를 다른 곳에 보내시고 또 새 강아지를 사 오곤 했다. 아무도 개가 어디 갔냐고 묻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어렸고 마당 한 구석에 있던 강아지에게 별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침저녁으로 식구들이 남긴 음식들을 “많이 먹고 어서 커라” 하시면서 개밥 그릇에 수북이 담아 주셨다. 그 당시 동네엔 아침이면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들이 가끔씩 오던 시절이라 그래도 밥 좀 먹고사는 집에 와서 마음껏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처지면 개 중에는 괞찮은 팔자라 할만했다
나는 서 너 살쯤 개한테 물려서 된통 혼이 난 적이 있어서 개 옆에는 가지도 않았고 정도 주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항상 대문 안을 먼저 살피고 개가 묶여 있어야 집안으로 안심하고 들어 간곤 했다. 누가 손님인지 주인인지 늘 눈치를 보는 쪽은 나였다. 할머니도 나의 상황을 아시는지라 어지간하면 개 줄을 묶어 놓고 키우셨다.
나와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할머니는 키우던 개가 커서 다른 집으로 보냈다 하시고는 새 강아지를 데리고 오셨다. 여태껏 키우던 누런 똥강아지와는 달리 하얀 털에 귀도 동그스럼 하니 순둥 하면서도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고 동생은 그 개가 마음에 들었는지 대뜸 해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영어도 배우기 전인데 텔레비전에서 주워들은 게 떠올랐는지 나름 어울리는 이름을 붙였다.
동생은 자기 밥 위에만 올려주던 계란을 반으로 툭 잘라서 개밥그릇에 덜어주곤 했다. 학교 다녀오면 개 줄을 풀어서 골목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한참을 놀다 저녁 먹을 때쯤이면 둘 다 먼지 범벅이 되어서 돌아오곤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대청에 데리고 와서 같이 뒹굴다가 할머니에게 들켜서 벼룩 옮긴다고 혼이 나고 해피는 몽둥이 한대 맞고 깨깽 거리며 지 집으로 숨곤 했다. 터울이 다섯 살인 네 살 백이는 데리고 놀기에는 아직 깜이 안 되었고 위아래 여자 형제뿐이니 같이 장난치려고 해도 쳐다도 안 보니 같이 마음 맞게 놀 수 있는 상대를 찾은 것이다. 동생과 해피는 행복하였다.
해피가 온 지 이년이 다되어가는 가을쯤 동생이 집에 돌아와 대문을 휙 여는데 반갑게 짖어야 할 해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 해피 어디 갔어요?”
할머니는 잠시 주저하시더니
“글씨 아까 있었는데 줄을 풀어놨더니 마실 나갔는가 보네”.
동생은 가방을 대청으로 휙 던지더니 그 길로 해피를 찾으러 나갔다. 먼저 같이 개를 데리고 놀던 이웃집 동현이에게 갔다. 아직 학교에서 안 왔는지 대문은 닫혀 있었고 문을 두들겨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몇 번 더 불러 보다가 돌아서서 해피랑 같이 놀던 앞산 충혼탑 쪽으로 가보자 마음먹었다. 학교 마치고 아무것도 못 먹은 터라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지만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충혼탑으로 향해 달려갔다. 가끔 같이 계단을 뛰어오르며 같이 놀던 곳이라 꼭 있을 것 같았다. 계단 밑에 도착해서 계단 끝 산 위에 우뚝 솟아 있는 탑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해피야 해피야”
대답도 없는 이름을 계속 부르면서 앞산 이쪽저쪽을 다니다 보니 점점 어두워졌다. 저녁이 되니 사람들도 없이 한적하고 산의 서늘한 기운도 내려와서 뛰어놀던 대낮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겁이 났다. 갑자기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엄마 생각도 나고 해피도 없고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기운 없이 터벅터벅 한참을 걸려 동네에 도착하니 깜깜하고 하늘에는 별도 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 집 동현이 집에 다시 가보았다.
“동현아”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소리가 들리고 저녁 먹는 냄새와 소리가 들렸다
“동현아” 몇 번을 더 부르니 묶여있던 개가 짖었다.
“와 무슨 일이고”
“우리 해피 못 봤나”
“못 봤다. 근데 해피, 너희 할머니가 개장수한테 팔았다 카더라”
그 집 개는 같이 산지 5년이 넘는 데 왜 우리 집 개는 자주 바뀌는지 동생은 그 이유를 그때까지 몰랐다. 이제야 어린 마음에도 왜 해피가 없어져야 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다
“아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우리 엄마가 맞다 카던데, 너희 할매한테 물어봐라”
"아이다”
동생은 동현이를 홱 밀었다. 넘어져서 분한 동현이는 벌떡 일어나며 마당 화단에 있던 장돌 하나를 주워 동생에게 던졌다
“퍽”
머리에 피가 줄줄 흘렀다. 동생은 머리가 깨져서 아픈 것보다 해피의 운명에 놀래고 가슴에 불이 나서 바로 집으로 달려들어 왔다
“할머니, 해피, 개장수한테 팔았어요?”
온 식구가 대청마루에 앉아 밥을 먹다가 안 그래도 집에 안와 걱정하던 아이가 뛰어 들어오면서 소리를 지르는 통에 전부 놀라서 쳐다봤다.
“아이고 머리에 피난다
고모가 밥을 먹다가 얼굴을 타고 내려오는 핏자국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동생은 눈물과 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만지다가 그대로 그 자리에 꼬꾸라져 버렸다.
장손 하나 잡을 뻔한 할머니는 그 뒤로 다시는 개를 집으로 데려오거나 키우지 않았다. 개가 풀려 있을까 봐 나는 눈치 보지 않아도 좋았지만 동생은 깨진 머리가 낫고도 한참을 풀 죽은 모습으로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부터 동생의 성격은 좀 변한 듯하다. 한동안 할머니를 잘 쳐다보지도 않았고 할머니와 말도 잘 섞지 않았으며 다시는 집에 강아지를 가져오지 못하게 했다.
이 사건은 우리 집의 흑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