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집을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뒹굴뒹굴, 집순이처럼 침대 위를 굴러다닌다. 그러다가 뭔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옷을 챙겨 입고 걸으러 나간다. 요즘의 일상 중 하나다. 문득 어느 날은 이 짧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조금 더 오래 집을 떠나볼 때가 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여행을 안 간 지 꽤 오래된 것이다.
거의 모든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나들이를 가는 편이다. 부산 곳곳에 갈 곳이 꽤 많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서면이나 전포에도 가고, 꽤 핫플로 여겨지는 광안리에도 간다. 하지만 며칠씩 떠나는 여행은 안 간지 너무도 오래됐다. 계절별로 생기는 휴가 때나 시간을 내어 여행을 다녀올 뿐이다. 사실, 작년 여름휴가 같은 경우엔 여행지에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아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 외에 한동안은 집을 비운 적이 거의 없다. 이러다간 정말이지 여행세포가 다 죽을 판이다.
흔히들 잠시 멀리 떠나 있다 돌아오면 '집이 제일 좋다' 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진짜 떠나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집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상의 다정함을 느끼기 위한 방법으로 여행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에 못지않게 여행지에서 느끼는 직접적인 즐거움도 무척이나 크다. 새로운,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의 일탈은 평소와는 다른 긍정 에너지를 선사한다. 일상 속에서는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던 나 자신도 여행지에서는 큰 존재가 되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별생각 없이 여행을 떠나기란 쉽지 않다. 의외로 생각할 것이 많다. 여행은 우연히도 인생과 너무 닮아있다. 늘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러나 일단 여행을 떠나고 나면 생각보다 자연스레 일이 풀리고 오히려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인생과 묘하게 닮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떠날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내게 주어진 일상이 영원히 그대로일 수는 없다. 표류하지 않기 위해서, 오히려 용기를 갖고 바다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긴 기간, 화려한 휴가지가 아니어도 좋다.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이든, 비행기를 타고 한참을 날아서 도착할 수 있는 곳이든 우리의 선택이다.
다만, 가끔씩은 평소에 할 수 있는 외출의 범위를 넘어서는 여행을 해 보는 것도 좋다. 단순한 나들이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늘 가던 곳, 항상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벗어나 오롯이 나 자신만이 그대로인 곳으로 가서 잠시나마 살아보는 것은 단연코 특별한 경험이다. 어찌 보면 여행은 일상을 잘 살아낸 나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하루를 정리하고 자리에 누우며 내일을 생각한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어렴풋이 붙잡아보며 눈을 감는다. 어느새, 우리는 지구 어딘가에 닿아 있다. 하지만 왠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다. 언젠가 떠날 여행에서는 이 감정을 더 많이 느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떠날 용기가 필요하고, 때로는 자유로워질 자격이 있다. 역시, 떠나는 덴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