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몌 Jun 21. 2024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아, 부산역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을 잃지 않는 사람들, 혹은 특별한 기억들이 있다. 삶이 고독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그들 때문일 것이었다. 그들을 기억하고, 언젠가 다시 찾아올 만남의 상황을 기다리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만으로 삶은 윤택하고 아름다워졌다. 




내게 있어 부산역은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 수많은 기억들을 만들어 낸 특별한 장소이다. 울산에 살던 시기에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으로, 서울에 살 때는 너무나도 먼 곳으로 마음속의 위치를 달리 하긴 했지만 말이다. 




특히 20대 후반, 부산역은 나에게 연결의 장소였다. 연애 시절, 나와 비슷하게 쭈욱 서울에서 지냈으나 부산이 고향이었던 남편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우리는 한동안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었다. 5년 동안 가까이 지내다 갑자기 멀어진 거리에 그 당시엔 내심 마음이 힘들었었다. 대학교 때부터 혼자 자취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늘 보던 사람이 갑자기 멀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허전하게 하는지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남편이 서울에 올 수 없을 때는 내가 이따금씩 부산에 내려갔다. KTX를 타고 갔으니 도착역은 늘 부산역이었다. 널찍한 광장 어느 곳에서 남편의 얼굴이 보일 때면 괜히 마음이 흔들거렸다. 보고 싶었던 마음, 늘 그리워하는 마음, 서러움 같은 감정이 제멋대로 뒤섞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부산역 앞 가끔씩 가던 프랜차이즈 카페는 지금 지나갈 때 보아도 그대로 있다. 지금까지 가 본 카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그 카페는 내부 인테리어까지 떠오를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난다. 한창 마음이 허할 때, 나는 줄곧 아이스라테를 마셨다. 고소한 맛이 나중에는 씁쓸하게 느껴질 정도로 커피를 마시다 보면, 모든 것이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부산역에서 남편과 만났고, 그러다 보니 몇 년이 흐르고 결혼까지 하게 되어 지금은 부산에서 살고 있다. 




내가 부산에서 살고 나서는 부산역에서 친구를 맞이하기도 한다. 하루는 경산에서 사는 친구가 부산에 놀러 온다고 했다. 부산역은 남포동과 가깝기 때문에 나는 전날부터 남포동 식당과 카페를 찾아보았다. 약속 시간보다 훨씬 먼저 나가 친구를 기다렸다. 부산역에 있는 상점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이상하게도, 친구를 만나면 뭐든 좋은 것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부터 든다. 평소에는 맛집이나 카페를 가게 되어도 특별한 계획 없이 가는 편인데, 친구가 놀러 온다고 하면 누구보다도 계획적인 사람이 되는 걸 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결국 그날은 부산뿐 아니라 타지 사람에게도 유명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내 기준(??) 남포동에서 제일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마흔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도 어릴 때 친구는 어릴 때 기억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옛 생각에 들뜨게 하기도, 그리움에 마음을 저릿하게도 만든다. 부산역에서 그렇게 또 하나의 기억을 만들고 돌아가는 길, 왠지 모든 것들 또한 빙그르르 돌아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렇게, 부산역은 내 삶 곳곳에서 기억과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저 한 번씩 밟고 지나가는 가을의 낙엽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건만, 지금의 부산역은 소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반드시 들러야 하는 매 해의 계절 같은 장소가 되어 있다. 결국 그곳은 기억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이었다.



<부산역>

부산 1호선

부산 동구 중앙대로 206

이전 07화 스무 살의 산책을, 경성대부경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