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오는 곳은 늘 집이자 가정이다. 발에 흙을 한가득 묻히고 들어와도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있는 곳이다. 매서운 바람도 쉽게 들이닥치지 못하는, 그리하여 언제고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은 가족이 있는 곳이다.
더위로 지쳐가고 있는 올해에도 추석이 찾아왔고, 오며 가며 사람들의 들뜬 표정을 볼 수가 있다. 명절과는 관계없이 일정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명절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곤 한다. 뉴스를 보면 부산과 서울의 거리가 10시간 30분이 되도록 훌쩍 멀어진 듯 보이지만 사실 일 년 중 두 도시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날은 명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 때는 나도 서울에 살면서 명절마다 울산에 가곤 했다. 고향 집은 언제 우리가 헤어져 있었냐는 듯 늘 같은 인사를 건네곤 했고, 그때마다 나는 미안해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떠나와 있는 나 자신이 죄라도 지은 듯 말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가족들과 보는 날이 더 줄어들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가족 모두를 잘 챙기는 남편 덕에 전보다 더 자주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 남편이 직장에 출근한 시간이면 나도 꽤 자주 부모님을 만나 시간을 보내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보잘것없는 몇 안 되는 효도 중의 하나는 부모님과 시간을 자주 보내는 것이다. 떨어져 살던 시간을 보상할 수 있는, 그리고 내가 딸로서 할 수 있는 값진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그 시간들이 귀하고 즐겁다. 가끔씩은 시어머니와 둘이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이곳저곳 구경도 한다. 그러다 보면 오후 몇 시간이 흐르고 어쩌다 보면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게 되기도 한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던 나도 요즘에는 좀 더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나를 중심으로 한 야망이 가득했던 관심사나 소망들은 막상 이루고 나니 다시 잃더라도 상관없는 것들에 불과했고, 결국 남아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가족이었다. 내가 건강한 모습으로 살고, 그로 인해 내 주변의 가족들도 함께 건강하게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현재의 내가 바라고 있는 가장 큰 소망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은 나로 하여금 좀 더 책임감 있고 배려심 있는 사람으로 살게 한다. 내 인생에서 나만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이기적인 생각들은 지금까지 나를 있게 한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나 자신을 가장 잘 존중하고 아낄 수 있는 방법은, 나의 가족들까지 남김없이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좋게만 봐 줄수도, 가족을 위해서 무조건적으로 희생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사실상 가족은 어느 한 사람만의 희생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노력과 애정이 있을 때 유지될 수 있는 관계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행복한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그저 아무 노력 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화목한 가정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맡은 바를 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연인과의 관계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 서로의 인내와 사랑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사실 당사자들의 진심과 정성의 결과다.
길다고만 생각했던 추석 연휴가 끝나간다. 연휴가 끝나면 모두들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서로를 잊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늘 안심하고, 안도한다. 가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신뢰이자 믿음이다. 세상이 끝날지라도, 가족은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