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같은 장면을 떠올리곤 했다. 그때 그랬었다면, 혹은 그때 그러지 않았었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생각은 내가 쫓아갈 수 없는 먼 곳까지 나아가버렸고 나는 갈 길을 잃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조금씩 달라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더 어려운 일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다소 감정적이고 마음이 약한 나조차도 더 이상 과거에는 얽매이지 않는다. 과거는 어느 정도는 진짜고 어느 정도는 가짜다. 정확히 말하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할 수조차 없는 덧없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지나간 시간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는다.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어가며 얻은 내 모습 중 가장 좋은 모습이다.
가끔씩은 과거의 조각들이 악몽이 되어 찾아오기도 한다. 우습게도, 내가 상처 입었던 순간보다 내가 상처를 줬던 순간들이 더 아프고 괴롭다. 하지만 나는 이따금씩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과거를 잊더라도 나의 잘못을 잊지는 말아야지,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더 이상 누군가의 상처가 되지 않기를 희망하곤 한다. 이젠 너무 늦어 용서를 빌 수 없는 누군가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런 날은 유난히 힘들게 잠이 든다. 하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자신조차도 말이다.
시간이 조금씩 더 계속 흐른 후에는 어느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어느 순간도 후회하지 않게 될까, 이따금씩 궁금해진다. 물론 지금도 시간 앞에서 딱히 우물쭈물 대지 않는 내가 되었다. 마주한 순간들에 충실한 내가 되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이 많은 머뭇거림들도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마음의 여유라던가 그보다 더 근사한 말들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나는 나의 현재를 좀 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