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들 그런 상념에 젖는 날이 있지 않나. 아, 내 인생 이거 망한 건가 혹시? 싶은 날. 그럴 때면 글이라는 에어백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한다. 글 쓰는 게 쉽다는 말이 아니라, 글은 그 망함마저 포용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세상이 성공한 삶에 주목할 때, 실패는 적어도 한 챕터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모든 예술 활동이 실패를 창조로 승화시킬 힘을 갖고 있지만 특히 글을 꼽은 것은 필요한 게 가장 적기 때문이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된다. 미술, 음악, 영화 같은 데 비하면 얼마나 저렴한 창작 활동인가. 우리가 먹고 자고 싸면서 살아있는 한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상의 모든 게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우리가 최악이라 여긴 사건사고들이 그 이야기를 빛내기도 한다.
힘들어서 방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을 때에도 핸드폰과 손가락만 있으면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언젠가 인터넷상의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가진 게 와이파이뿐이라…' 라던 혹자의 평이 참 웃프다 생각했다. 글쓰기는 그것조차 필요 없다. 가진 게 없다고 인터넷 세상에서 심술부리거나 요란 떨지 말고 각자 방에서 일기나 쓰자. 아무래도 그게 인생을 좀 덜 망치는 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