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뒷면에 가보니
마치 달의 뒷면과도 같았던 1MCRC..
부사관 때는 '통제기사'로서 2MCRC에서 근무를 해본 게 전부라 지금부터 펼쳐질 '통제사'로서의 삶은 나도 다 처음 겪는 것들이다. 군필자 버프가 슬슬 다 떨어졌다는 말이고, 이제 더 이상 동기들이 물어봐도 대답해 줄 수 있는 밑천이 다 떨어졌다.
자존심 강한 두 천재,
1MCRC와 2MCRC는 과연 어떤 차이가?
살아생전 처음 타보는 SRT. 살아생전 처음 와보는 평택지제역. 이제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맵 없이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심지어 당시 그 광활한 객지에서 자차도 없었기에 행동반경이 확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손으로 더듬더듬 짚어가며 버스로 갈아탔고, 공군작전사령부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진 큰 바위가 있는 일명 '작사정문'에 도착했다. 행정안내실에 가서 쭈뼛쭈뼛 상황을 설명했고, 몇 가지 절차를 밟아 영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삐까뻔쩍한 사령부 청사와 깊은 의미가 담긴 동상을 지날 땐 자연스럽게 입이 O 모양이 됐다. 차가 없다 보니 캐리어를 질질 끌며 숙소까지 20분 이상 걸어서 가야 했다
가는 길에 미군 특유의 베이지색 건물도 보이자 외국에 온 기분도 들었다. 한미연합의 상징 중의 하나인 오산기지답게 곳곳에 영어 간판들과 펄럭이는 성조기들을 볼 수 있었다.
와.. 살다 살다 이런 데서 근무를 다 해보네. 두리번두리번.. 누가 봐도 오늘 오산기지 처음 온 티를 팍팍 내며 캐리어와 덜그럭 덜그럭 오르락내리락 계속 걸었다.
동기들과 쓸 숙소에 도착하니 이제 겨울인데도 하도 걸은 탓에 등에 땀이 많이 났었다. 자연스레 씻고 싶어져서 곧바로 짐을 풀었다. 그렇게 그날은 짐 정리하고, 주변 탐색하고, 내일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오산살이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뒤척이다 잠에 들었다.
1등 했으니까 거기 가서 이름 대면 너 아실 거야. 이제 차반장이고 총무고 없지만, 그래도 네가 반장 역할을 좀 해서 애들 잘 챙겨줘.
대구를 떠날 때 교관님께서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이다. 나도 낯선 곳이지만 그래도 더 낯설 동기들을 위해 내가 나설 부분에서는 좀 손 들고 나서야겠다.. 일단 자자..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오늘은 정식으로 1MCRC 소속이 되는 날. TMI지만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날 1MCRC로의 전입이라.. 아무리 봐도 이건 운명 아닌가.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다.
오산에서의 첫 3일은 행정처리를 하는 시간이었다. 주임원사님의 안내에 따라 전대장님께 전입신고도 드리고, 각종 출입증을 위한 신청서와 보안 관련 서약서를 작성했다.
작성하라는 것들을 작성하고 있는 동안 근무 중인 1MCRC 사람들이 들락날락했고, 그중 선배님들이 보이면 인사도 놓치지 않았다. 신임소위들은 뭐 작성하랴, 뭐라고 써넣어야 할지 물어보랴, 지나가는 사람 눈치까지 보느라 바빴다.
그러다 야구를 굉장히 잘할 것 같은 이름을 가진 모 대위님께서 허겁지겁 오시더니 '지금 다 모여있지? 계장님 오실 거야' 하시더니 잠시 후 계장님을 모셔왔다.
중령 계급장을 달고 카리스마 있으시던 계장님은 현재 우리의 행정처리가 어느 정도로 진행됐는지 물어보시고 좀 더디다고 느끼셨는지 나직하게 '여러분들 지금 놀러 온 거 아니야. 정신 바짝 차려.' 하고 일침을 두셨다.
그러면서도 지금 3일 동안의 행정처리 시간은 본인 경험 상 의식주가 해결이 안 되면 임무도 집중이 안 되기 때문에 확보해 준 것이니, 숙소라던가 기타 행정적인 서류들 잘 처리하고 각자 배속받은 통제대에서 열심히 근무하라고 하셨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그래도 우리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했다.
3일간의 행정처리가 끝날 무렵, 슬슬 맞선임인 선배에게도 연락을 받아 여러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첫 근무 전에 밥 한 끼 살 테니 시간 되는 사람은 밥 같이 먹자고 하셨다. 그렇게 미군 정문 쪽 아는 사람만 아는 갈비 맛집에서 우리 통제대의 최근 동향이나 분위기, 그리고 유의사항을 알음알음 배웠다.
그렇게 대망의 1MCRC로의 첫 출근. 우리 통제대에는 5명의 신임소위들이 배속됐다. 상번 브리핑 시간에 수 십 명의 통제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한 명씩 단상 위로 올라가 포부를 밝히고, 통제대장님께서도 화답해 주셨다.
네,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데, 이렇게 새 식구가 5명이나 들어왔네요. 곳간에 식량이 든든하게 채워진 것 같아서, 이번 겨울은 좀 따뜻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이 긴장했었는데 말씀을 참 훈훈하게 해 주셔서 내가 아직도 그 워딩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참고로 이분은 내 병사, 부사관, 장교 생활 통틀어서 가장 존경하는 지휘관 3명 중 한 분이시며, 군대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롤모델이다.
그렇게 첫 브리핑을 다 듣고, 일어나서 선배들 뒤를 졸졸 따라갔다. 계단 하나하나를 밟을 때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1MCRC에 간다는 생각에 두근거렸다. 가만, 이 사람 왜 이렇게 1MCRC를 고대하고 있나? 간첩인가?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근무했던 2MCRC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MCRC끼리 의견충돌이 있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상대 쪽 입장이 많이 궁금했지만 뭐 알 길이 없어 답답했었다. 우리도 사람이다 보니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오래 잔상이 남고, 소문도 더 멀리 퍼지기에 몇몇 서로 감정의 골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제 나는 두 MCRC를 모두 경험하게 되니, 중간에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됐다. 이제 1MCRC 사람이니까 무조건 이쪽 편을 들거나, 과거 2MCRC 출신이니까 무조건 저쪽 편만 드는 그런 극단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뭔가 갈등이 있을 때 '그쪽도 아마 어떠어떠한 것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하고 중재하고, 그쪽에서 뭔가 문의가 오면 '지금 이러이러한 상황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고 충분히 설명해 줬다. 신임소위가 뭐 힘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냐마는, 이런 건 아주 사소하고 작은 부분이지만 나한테는 큰 의미가 있었다.
미친 척하고 둘 사이에 불 지르려면 불 지를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동료니까. 우리는 '항공통제'라는 이름으로 끈끈하게 힘을 합쳐야 할 동료들인데, 우리가 서로 지켜주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지켜주나? 이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좋게 좋게 가야 하지 않겠나.
만화에서도 나루토와 사스케가 티격태격해도 결국은 친구이고 힘 합쳐 역경을 이겨내지 않는가.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알량한 자존심 좀 내려놓고. 힘 합쳐 으쌰으쌰 해도 이게 될까 말까 한 판국에 서로 그러면 쓰겠나.
그렇게 그동안 2MCRC에 있느라 몰랐던 1MCRC의 삶, 그동안 통제기사로 사느라 몰랐던 통제사의 삶. 직접 가보고, 직접 만나보고, 직접 해보니 그 간극이 메꿔졌다.
달의 뒷면은 직접 가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다. 볼 수 없으면서 뇌피셜로 왈가왈부를 논하는 건 우물 안에서 지구가 원통 모양이라며 떠드는 개구리나 다름없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서로 알고 말하는 세상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