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말. 중앙아시아의 산악국인 키르기스스탄으로 왔다. 은퇴하고 맞이한 코로나 시국에 서귀포로 내려가서 체질에 맞는 게으른 생활을 4년하고 나니 마누라의 눈길이 곱지 않다. 나 또한 뭔가 미진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개발현장에 몸담기로하고 코이카에서 파견하는 자문관으로 키르기스 대통령실 민관협력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그동안 브런치에서 '한라산인'이란 필명으로 43회에 걸쳐 연재했던 우리나라 한시에 얽힌 이야기 "동방의 향기"를 잠시 접어두고, 서역생활의 감상을 가벼운 수필체의 짧막한 글로 연재해 보려고한다. 가급적 사진을 곁들인 포토에세이 형식으로 작성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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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 참 힘들다.
남은 솜사탕이 자그마치 스무봉지는 쌓여있다.
일요일 오후 부모님 손잡고 놀러나온 부잣집 애들에게 다 팔았어야는데, 극성스레 이리저리 팔러 다니지 않고 사러 오기만을 기다린 내 소심함이 후회스럽고, 이렇게 못난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다. 하룻밤 자고나면 설탕가루가 비닐봉지에 붙어 진득해 질테고, 내일 오전엔 아이들이 학교엘 가니 누가 이 솜사탕을 사준단 말인가?
다시 봐도 솜사탕 색깔은 참 예쁘다. 누군가에겐 꿈과 사랑의 상징물, 달콤한 솜사탕이련만 지금 내겐 근심덩어리, 빚사탕 솜뭉치일 뿐이다. 본전 회수도 못했으니 저녁 사먹을 돈이 어디 있으며, 편히 누울 잠자린들 어디 있으랴. 배 고프면 솜사탕 하나 털어먹고 에라 그냥 여기서 자자. 오늘따라 설산의 눈 녹은 물 흐르는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린다. 바보같은 나를 꾸짖는 듯...
문득 구름 사이로 삐죽 새어나온 달님 위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엄마다!" 솜사탕을 건네며 미소 짓던 젊은 시절 엄마의 얼굴이다. "엄마 나 힘들어"하곤 터져 나오는 오열을 꾹 참았다. 눈물이 어려 달빛에 비친 엄마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게 패인다. 구름 속으로 숨바꼭질하는 엄마의 얼굴을 찾다가 새벽녁에야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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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자유란 이름을 가진 가로공원 에르킨딕으로 운동하러 나섰다. 멀리 보이는 지붕있는 벤치에 여러 색깔의 풍선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비닐에 싸인 솜사탕이다. 그리고 그 아래 벤치에 웬 여인이 웅크린 채 잠들어있다. 못다 판 솜사탕을 어쩌지 못하고 그냥 그 벤치에서 잠들어버린 젊은 아가씨다.
에르킨딕엔 힘차게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려는 의욕 넘치는 발걸음이 사뿐사뿐하고, 6월의 태양빛인 양 빨강, 노랑, 하양 색상의 솜사탕 봉지들이 형형색색으로 곱기만한데, 그래서 그 아래 웅크린 남루함은 더욱 슬프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