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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yrunner Mar 09. 2023

3.6 변화 : 내가 잘하면 그 사람이 바뀔까?

당신이 열심히 하는 것과 결과는 상관없다


내가 잘하면 그 사람이 돌아올까?

성선설을 믿는가? 성악설을 믿는가? 나는 성선설을 믿는다. 나를 찼던 대부분의 여자들은 좋게 좋게 최대한 내가 상처받지 않게, 부드럽게 돌려 돌려 말했다. 물론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느낌으로 ‘아 이렇게 끝나는구나’를 알 수 있었다. 참으로 그냥 모질게 대했더라면 오히려 나쁜 X이라 욕하면서 더 쉽게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들은 마지막까지 참으로 착하게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나를 보기 좋게 차버렸다.    

  

"제가 어제 만나던 사람이랑 헤어졌는데요."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지만 기사님은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하기 어렵겠다는 거예요. 아니, 저도 되게 바쁘거든요. 자주 만나자고 부담을 준 것도 아닌데. 바빠도 연애는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진짜 연애할 상황이 아니면 애초에 저한테 사귀자고 말하질 말았어야 했던 거 아닌가요? 먼저 만나자고 해놓고 갑자기 연애할 상황이 아니라니 말이 안 되잖아요."
내 말을 들은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남자분이 그렇게 말해요? 바빠서 헤어지자고?"
"네."
"그 남자분, 말을 잘하네."
"네?"
"손님이 상처 안 받게 말을 잘했다고요."
아, 순간 깨달음이 훅 밀려왔다. 이전 연애들을 끝낼 때, 또 누군가를 거절해야 했을 때 내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오빠는 좋은 사람이지만 나랑은 맞지 않는 것 같다.(너는 매력이 없어.)
- 내가 지금 너무 힘들어.(다른 사람을 만날 여유는 있지만.)
- 잘 지내. 행복하길 바랄게.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싶지만 성질 나쁜 네가 보복할까 봐 참는 거야...) 그냥 헤어지기 위해서 건넨 말들이었겠구나.     

[어차피 연애는 남의 일. 도대체, 위즈덤 하우스 2018.06.29.]    

그렇다. 그렇게 연애는 끝났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서 나의 잘못했던 일들을 반성한다. 사소한 다툼들, 토라짐, 공감해주지 못했던 일들, 나의 부족함... 늘 내게는 서툴고, 부족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모자라고, 여전히 부족했다. 더 잘하려 하면 할수록 어긋나는 느낌.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떠오르는 기억에 자꾸만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저렇게라면 어땠을까?를 되뇌어 본다. 그런 기억이 떠오르면 또다시 헤어지고 나서도 괴로워하는 나의 쿨하지 못함과 찌질함에 다시 한번 실망한다. 

그랬다. 그랬었다.

다 나의 잘못인 줄만 알았다. 다 내 탓인 줄만 알았다. 여전히 부족했기에, 더 잘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지나고 보니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무리 잘해주어도 떠날 사람은 떠난다. 연인사이좋은 선물을 특별한 이벤트를 잘해주고 못해주고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싸우다가 미운 감정, 나쁜 감정으로 헤어지지 않고, 그래도 아름다운 모습을 지키며 헤어진 것은 어쩌면 해코지당할 걱정을 해서 그랬었을지도 모르겠다.


회사도 당신의 노력, 성실함과 상관없이 떠난다. 회사가 당신을 떠나는 모습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중요하지 않은 일만 주는 것이다. 허드렛일, 잡일, 지루하고 반복되는 하찮은 일들, 중요도가 낮은 일들만 주는 것이다. 이는 회사가 당신에게 마음이 떠났기 때문에 당신을 성장, 발전시킬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기계 부속품이나 다름없다. 안타깝게도 그런 자리는 당신이 멋지게 때려치우고 ‘나 없이도 잘해봐라’ 하고 나가도 그만인 자리이다. 그런 단순한 일을 할 사람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실제로도 쉽게 사람을 구한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은 역시 회사의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아예 일을 주지 않는다. 당신의 처우나 급여, 직급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을 주지 않으면 한편으로는 편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편안하게 월급 받는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회사에서 일이 없으면 눈치를 보게 된다. 또한 당신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상이 회사인데, 그곳에서 성장이나, 배움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안주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봐서는 손해이다.   

   

세 번째는 이 부서, 저 부서 옮겨 보내는 것이다. 

당신의 업무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서에 옮겨 보내는 것이 세 번째이다. 더욱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으로 보내는 것은 더욱 그렇다. 두 번째처럼 일을 주지 않고 편하게 있으면서 고립시키는 방법이 오히려 세 번째보다 나을지 모른다. 세 번째 방법은 당신이 그곳에 적응할만하면 다시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경우도 생겨서 한마디로 골탕 먹이는 작전이다.      


연애에서처럼 한번 끝나버린 사랑이 다시 되돌아오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회사든 연애든 처음부터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빠졌다면 당신이 더 이상 사랑하는 것, 성실히 일하는 것으로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 상대가 나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내 경험으로 그런 상황에 빠진 상태라면, 일단 상대에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상대가 나를 좀 새롭게 볼 수 있게 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처럼 위버멘쉬가 되어야 한다. 

운동으로 몸을 관리해서 상대가 나를 위버멘쉬로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위버멘쉬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타이핑을 하며 글을 적고자 한다.


위버멘쉬란 어원으로 볼 때, '넘어선(über) + 사람(mensch)'을 뜻한다. 즉, (보통 사람을) '넘어선 사람'을 말한다.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사람의 단계를 낙타사자어린이의 세 단계로 분류한다. 낙타는 짐을 싣고 사막을 건너가게 해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러나 사자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따라가기만 하는 것을 벗어나 반항하기 시작한다. 사자는 '~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 용(드래곤)의 강압에 맞서 부정하고 투쟁한다. 하지만 반항만 할 줄 알 뿐이어서 그것에 고통과 허무만을 느끼지, 그것을 긍정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다. 마침내 아이의 단계에 이르러서 사람은 삶을 놀이로 파악하고 그것을 즐기게 된다. 끊임없는 놀이를 통해 질리지 않고 긍정하며 자신만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나간다. 여기서 아이의 단계가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가 된다. - 출처: 인터넷 나무위키


너무 자책하지 말자.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상대는 변하지 않는다. 

나의 노력에 비해 알아주지 않는 상대에게 나의 새로운 모습, 아름다운 모습. 위대한 모습을 보여주자. 




그런 위버멘쉬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 글을 적는다. 꼭 책으로 만들어서 나는 이렇게 보여주었다는 사례 내용이 추가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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