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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데이 May 22. 2022

<나의 해방일지> 해뜨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간

나의 해방일지 13화 리뷰 (스포일러 有)


13화는 시점도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여러 가지 장면들을 흩뿌려놓은 듯 조금은 이야기가 뚝뚝 끊기는 감이 있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중요 포인트들을 던져준 후 14화에서 더 자세히 풀어가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가 끝날 즈음에 심장이 빨리 뛰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해피엔딩을 답으로 정해놓고 기다렸거늘, 구씨와 미정의 재회 및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마음껏 해피엔딩이라 만끽할 수 있을까.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두운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싶다. 해뜨기 전 가장 어두운 시간이라 생각하겠다. 다른 사람들처럼 새드 엔딩이나 구씨의 죽음을 걱정하지 않겠다. 다만 남은 3화 동안 남은 인물들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해진다면 또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과연 내가 바랐던 만큼 두고두고 다시 보며 위로받을 만큼 만족스러운 결말을 맞을 수 있을까? 모두의 행복을 천진하게 바라기엔 너무나도 현실적인 드라마였다.



13화 초반 부분에서 자경의 모습은 2021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인 듯하다. 다시 어둠의 세계로 돌아간 구자경의 일과를 보여준다. 어둡고 무서운 구자경 씨가 낯설다...

'너... 무서워...'

저기 죄송한데...지리겠어요...

외상 걸고 잠수 탄 고객을 찾아가 수금하는 등 본업(?) 하는 구자경의 모습을 생각보다 길고 상세하게 그리는데, 나는 이를 통해 미정 눈으로 본 산포의 말랑구씨가 아닌 과거의, 그리고 현재의 구자경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일터로 찾아와 쌍욕 쓰면서 저렇게 쳐다봐..? 벌벌 떨고 눈도 못 마주칠 만하다. 구씨가 다른 세계라고 선을 긋고 미정과 멀어지려고 했던 이유를 한번 더 느낄 수 있다.

Here’s looking at you, kid
?

유모차, 아기. 미정이 생각이 안 날 수 없는 조합이다. 별안간 아기에게 건배 제의하는 자경씨...


새가 날아들어온 것 같았겠네요.


소음에 고통스러워하는 구씨
구씨 술 그만 먹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안될까요
고구마 줄기 반찬에
훅 들어오는 미정의 기억

그의 하루는 그렇게 시끄럽고, 어둡고, 그러다 문득 생각나면 미정을 그리워하다 지나간다. 밤과 아침의 경계도 모호해진 채로.


뭐여...뭔 퇴근 하자마자 또 출근하는 것 같아... 자경씨 워라벨 좀 누가 챙겨주세요. (구) 삼식이에게 기분이 기깔나게 좋아지기 위해서 무얼 하고 싶냐고 묻는 구자경. 나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


집에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삼식이를 집에 보내고 구자경도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한다. 자경에게 돌아갈 만한 집은 아마 산포뿐.

그러다 갑자기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그 이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1년 현재에서, 구씨가 산포를 떠난 직후인 2019년 (2020년 일수도) 가을로.

답답할 땐 '오늘 죽자' '죽어도 된다' 그런 심정으로 밤길을 나가요.
불빛 하나 없는 산을 걸어요.
사내놈 하나 떠난 게 뭐 대수라고.
행복한 게 무서워 도망친 새끼.


구씨와의 추억이 있는 산을 오르다가 흰둥이 들개와 대치하게 된 미정.

붙어, 개새끼야.
배은망덕한 새끼.
너한테 갖다 바친 소시지만 몇 개인 줄 알아?


축하합니다 염미정씨... 나의 해방일지에서 육두문자 가장 많이 쓰는 인물 1위로 선정되셨습니다! 역시 본능이 살아있는 여자는 무섭다...너...무서워...

여기서 말한 배은망덕한 개새끼는 구씨를 의미하는 것 같다. 들개에 구씨가 감정이입을 많이 해오기도 했고 구씨가 산포를 떠나면서 들개들이 철장에 갇혀 잡혀가는 등 들개는 구씨처럼 묘사되어 왔다. 구씨 서사에 대해 시청자보다 모르는 미정이는 버려진 느낌, 추앙을 갖다 바치고 배신당한 느낌에 시달릴 수밖에. 근데 미정아... 전전남친한테 돈은 받을 거지..?

이 사달이 났는데 이 와중에 창희는 퇴사를 했다. (깨알 동질감...)


솔직히 저는 깃발 꽂고 싶은 데가 없어요.
돈, 여자, 명예, 어디에도.
근데 꼭 깃발을 꽂아야 되나?
안 꽂고 그냥 살면 안 되나?

 

누군가는 이걸 보고 그 나이에 퇴사하면 앞으로 남은 인생이 어둡다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목적성 없이 달리기만 해서 힘들기만 할 때, 어디로 달려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겠지.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내 인생에 근자감이 넘쳐흐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죽지 못해 사는 인생 싫은데.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하루하루 버티기보다 , 하루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은데. 아직 어려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장남 창희의 퇴사 소식에 집안 분위기는 어두워지고. 창희는 아버지께 그 와중에 구씨는 애지중지 하고 자기한테는 매정하다며 섭섭함을 토로하네. 구씨가 떠난 이후 모든 게 변하기 시작한 염가네 식구들...

그 와중에 도시에서 놀러 와 옆 밭에 농사짓는 주말농장 가족에게 은근히 무시당하고, 매사에 무던해 보이는 아버지는 오랜만에 승부욕이 발동해서 차를 앞지르려다가 논두렁에 트럭이 고꾸라지고 만다.

이 집안...아무래도 모두가 본능이 살아있는 듯...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엄마는 폭발하고 만다.


옘병, 논두렁에 꼴아박히고 나서도
밥을 안쳐야 되니.
아이고 더는 못해 내가.
당신은 밥 먹고 나서 숟가락 딱 놓고 밭으로 가고 공장으로 가면 그만이지,
나는 공장으로 밭으로 쫓아다니면서 집에 수십 번 들락거리면서 가스불 켰다 껐다.
이건 뭐 빨간 날이 있길 해 뭐가 있길 해?
365일 매일.

아이고, 진짜 어디가 고장이 났나. 왜 이렇게 땀이나!


아무래도 어머니는 몸이 안 좋으셨지만 인지를 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선공개에서 어머니가 조태훈을 보고 너무 예뻐하고 기뻐해서 이혼남인 거 알고 실망하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본 방송으로 보니 다 알고도 저리 기뻐한 것이었다. 사실상 13화까지 보는 동안 가장 행복해 보이는 모습. 어머니는 행복한 기분을 유지하며 시장에 들른다. 그러다 잃어버린 개는 찾았냐며 어머니에게 말을 거는 동네 주민.


얼마 전에 미정이 펑펑 울면서 가길래 왜 그러냐니까 개 잃어버렸다고 그러던데?
개가 아니면 뭐야. 염소야?

 

여기서도 개=구씨

(염소도 사실상 구씨)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엄마의 표정. 기정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그렇게 기쁘게 웃으시더니,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미정이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슬퍼했다는 사실에 골목에서 흐느껴 운다.

밥 짓다가 속상해서 방으로 들어가 쉬는 엄마.


그 무렵 미정은 극혐하는 팀장이 불륜녀를 본인의 이름으로 저장해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친놈도 이런 미친놈이 없네... 미정이를 얼마나 호구로 봤으면 이럴까? 혹시라도 발각될 경우 만만한 미정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싸이코패스적인 이유는 아니었겠지?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빌런 짓만 할까.

공모전에서 1등 하여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갖게 되었지만 기분이 안 좋은 미정...ㅠㅠ


와줘.


그가 온다.
그가 왔다.
그가 날 기다리고 있다.


이때 분명 시간대가 달라 보이는데 편집이 비슷한 장면이 계속해서 교차되어 나와서 혼란스럽게 보았다. 어라라? 진짜 만나려나...??

하지만 당미역 앞에서 미정의 퇴근을 기다리던 구씨는 끝내 미정과 마주치지 못하고 염가네 가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집에서 나온다.

'뭐...뭐야...멀티버스야..?'

혼란에 잠겨 있을 때 즈음 염제호 아버지가 등장한다. 짧아진 머리, 절뚝거리는 다리와 함께 많이 노쇠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는데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가장 평화롭고 찬란했던 시기를 함께 했던 동료이니. 돌아갈 수 없게 된 그 시기.


자네 떠나고 얼마 안 있다 갔어. 그해 가을에.
잠시 쉬러 방에 들어갔다가 못 일어나고 그 길로 갔어.
밥 안쳐놓고.


죽음은 갑작스럽게 다가오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듯 하다.

염가네 엄마에게 해방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자식의 행복이 곧 엄마의 행복 같아 보였고, 그래서 줄곧 불행해 보였다. 죽는 날까지 자식 때문에 기쁘고 자식 때문에 슬프고, 죽는 날까지 밥을 안쳤다. 죽음이 살림과 밭일로부터의 해방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해방을 쟁취하시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 같다. 등장인물 모두가 해방되리라는 보장은 없잖아…

염미정 …

구씨가 가장 밑바닥일 때 아버지, 어머니가 일시키고 밥해주고, 염미정은 대뜸 추앙하자더니 서로 사랑에 빠지고, 그렇게 사람구실 하게 일으켜 세워놨는데 구씨 본인은 염가네가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동안 아무것도 해준게 없다. 특히 사랑하는 여자 염미정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현실이었으면 미정이는 이미 구씨를 잊은 후일 수도 있겠다(?). 1년 텀도 아니고 2년 텀이면, 잊고도 남았겠다 싶다. 그래도 난 아직도 당신이 괜찮아요… 계속 가봐요…

만날 수도 있을 것처럼 연출되었지만 미정이 구씨에게 와달라고 한 날과 구씨가 집으로 찾아온 날은 약 2년의 텀을 두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구씨에게 미정의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그렇게 13화는 끝이 난다.

구씨의 존재감은 염가네에서 구씨의 생각보다 컸다. 엄마는 구씨 덕분에 일욕심 많은 남편 걱정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아빠에게 구씨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든든한 파트너. 창희에게는 이루지 못하던 물질적인 욕망을 해소시켜주고 그로 인해 깨달음 또한 주는 존재, 미정에게는 .... 말해 뭐해 chu-ang mate... 평범한 일상같아 보였지만 돌아갈 수 없던 그해 여름을 함께 보낸 그들. 얼마나 애틋할까. 괜히 신경쓰이던 염제호 아버지의 행복을 그토록 바랐는데, 이제 아버지의 행복도 어머니의 행복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마음이 아픈 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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