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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낭떠러지에서

아름세계 2025년 1월호 ㅣ 초단편소설 ㅣ 강아름

by 강아름 Jan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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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불확실한 20대 초반, 우리는 모두 혼돈을 경험합니다. 당연한 실패에 절망하기도 하고, 너무나 큰 두려움에 자신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저 제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유와 동시에 주어진 책임에 깔려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은 억누른 채, 앞만 보고 떳떳하게 올라가는 것이 멋진 성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레 나타난 낭떠러지와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 미성숙한 우리는, 소리 없이 흐느끼며 메아리 같은 외로움을 겪었습니다. 아랫글은 제 또래 친구들과 저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문답 형식으로 각색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 형상도 없는 최고의 기억으로 남은 순간의 모습을 나로 착각하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길 때 느끼는 절망감과 불안함에 굉장히 취약해서 자꾸 나를 돌아보게 돼. '진짜 나'는 여리고 미숙한데, 나를 자극하고 성장시킨 경험이 겹겹의 실이 되어 누에고치처럼 나를 감싸. 마치 그 경험 때문에 나는 어떤 어려움에도 버티고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강하다고 스스로 착각했던 것 같아. 모순되게도 편안하고 따뜻한 고치 속에서 안심하면서, 스스로 그 고치를 뚫고 나갈 수 없게 만든 것일지도 몰라. 껍데기는 나를 지킬 만큼은 단단하지만, 자극에 맞설 만큼 단단하지는 않아. 누에고치를 뚫고 찢고 들어올 때마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유충인 나는 생명이 위협당할 만큼의 공포를 느껴. 앞으로도 그럴까...?


 하지만 찢긴 틈으로 서둘러 탈피하게 되면 곧 죽고 말아. 번데기를 온전히 자기 힘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힘이 길러지지 못했기 때문이야. 온전히 내 힘으로, 찢긴 틈과 타협하지 않아야 더 단단해질 거야. 근데 쉽지 않아. 이미 공포를 많이 느껴서 극도로 스트레스가 쌓였고, 안정되지 못한 유충은 판단력이 흐려졌어. 뭘 선택지에 넣어야 하고 빼야 할지, 바깥 현실은 어떨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야. 내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안정감을 찾으면서 나를 괴롭혀.


 그냥 이게 내 상태인 것 같아, 확신할 순 없지만.


 [답변]


 최고의 모습도 자신이고, 연약한 모습도 자신이야. 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잖아. 그리고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고. 그러나 그 능력으로 실패하자, 실패했다는 현실 자체를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 그 현실은 너무나 큰 공포일 테니까. 그래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약한 '진짜 나'와, 강한 척하는 껍데기로 스스로를 분리하고, 사실 '진짜 나'는 연약했다고 인정하면서 현실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 같아. 나도 그랬거든. 난 너만큼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서, 더 일찍 실패하기 시작했어. 한번 실패하고 나니까, 정말 두려웠어. 실패했을 때 느껴지는 패배감과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낳는 분노, 우울, 불안 등이 마치 내 살점을 조금씩 파먹는 것 같았어.


 그러나, 최고의 모습도 결국 나고, 스스로 능력이 있다는 걸 무의식적으로라도 알고 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이상을 절대 포기할 수 없더라고. 그래서 결국엔 다시 일어나서, 그 이상으로 향하는 중이야. 너도 비슷한 것 같아. 지금 우리 만으로 23살이야. 당장 모든 게 이뤄지는 것도 재미없잖아. 나도 느껴봤어. 정상만 바라보며 열심히 등산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낭떠러지가 나타나서 모든 게 멈춰진 기분이랄까. 좀 절망하고, 멍하니 하늘도 보고, 땅을 치며 울고 나니까, 낭떠러지 옆에 난 길이 보이더라. 그래서 난 낭떠러지가 나타나면 뒤를 돌아봐. 앞을 보면 까마득한 어둠으로 떨어질 일만 남은 것 같지만, 뒤를 보면 지금까지 올라온 길이 보이잖아. 그러면, 마음이 많이 안정되더라고. 너는 뒤를 돌아보고 안정을 취하려는 자신을 스스로 용납하기 어렵겠지만, 지금은 쉬어야 해. 당장은 낭떠러지가 너무 무섭기 때문에, 옆에 난 길까지는 안 보일 거야. 쉬는 자신을 자책하고 앞으로만 밀다 보면, 진짜 낭떠러지로 떨어질 거야. 너는 널 보호하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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