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아름 Jul 08. 2024

글을 쓴다는 것

아름세계 2024년 창간호 ㅣ 짧은 생각 ㅣ 강아름

 친절하고 빠릿빠릿하고 열정적인 동료를 원하는 사회는 내가 솔직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회탈같이 웃고 있는 나를 칭찬하며,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길 바란다. 사회에 적응하며 거대한 톱니바퀴 중 하나로 굴려지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의 모든 각이 무뎌져서 하나의 '구체'가 되어버린다. 매끈해진 표면에는 틈이 없어서, 물 한 방울도, 먼지 한 톨도 들어가지 못한다. 언제 어디에서 보아도 동그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톱니바퀴가 아니라서 칭찬으로 기름칠만 해준다고 살아지지 않는다. 가끔은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거나,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해야 살아지는 것이 인간이다. 물론 나는 담배 안 피고, 술 안 마시고, 심지어 최근 커피도 하루에 한 잔으로 줄이고 있는 고리타분한 20대 남자다. 대신, 글을 쓴다. 쓰는 동안, 온갖 생각과 감정으로 불타오른 나로부터 멀어지며 차갑게 식는다. 이 순간을 위해 갈아놓은 펜으로 사회에서 굴러다니며 구가 되어버린 마음을 찌른다. 여러 가면이 덕지덕지 붙어 마모되었던 구에 상처가 생긴다. 상처가 때론 너무 깊어 피가 솟구치기도 한다. 터져 나온 피로 물든 순간은 너무 뜨거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무력하게 고통만을 느낀다. 그러나 그 순간, 참아왔던 ‘솔직함’이 피처럼 터져 나온다. 그것이 정말로 진실한 것인지, 또 하나의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 ‘뮤즈’인 것만은 분명하다. 뮤즈가 시키는 대로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피는 차분하게 식는다. 모든 생각과 감정들이 글로 응고되고 나면, 그저 동그랗던 구에 작은 '각'이 생긴다. 각이 생긴 만큼, 나의 새로운 '면'들을 발견한다. '또 다른 나'와 만난다.


 안녕? 내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넨다. 우물쭈물하다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라도 해보려는데, 눈치 없이 누가 어깨를 지긋이 누르고 간다. 잠시 주춤하다 정신을 차린다. 팀장님이 손님을 모시고 오셨다. "아, 혹시 믹스로 하십니까, 블랙으로 하십니까?" 역시, 믹스다. 종이컵에 커피 가루를 털어 넣는다. 뜨거운 물을 붓고 휘휘 저으며 녹는 커피를 멍하니 바라본다. 어느새 뾰족이 올라온 마음도 녹아내린 것만 같다. "고마워요."라는 답장을 톱니바퀴에 뿌리니 삐그덕대다 굴러가기 시작한다. 둥글게 둥글게 굴려진다.


 집에 와서 제복을 벗고 샤워를 하다 쓰라림을 느낀다. 아야. 이게 뭐지. 아, 너구나. 그래, 아까 소개도 못 했지. 무뎌졌을 줄만 알았던 '또 다른 내'가 피딱지를 뜯으며 건재함을 알린다. 피딱지 사이로 슬쩍 고개를 든 '솔직함'이 아프지만 반갑다. 얼른 샤워를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열 손가락으로 펜을 두드린다.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 소개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셀프 브런치 플레이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