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을 그린 박수근
모성애가 없는 거 아니야?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지
언젠가 남편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내면에 있던 꽁꽁 싸매 둔 무언가가
터진 느낌이 들었다.
(감히 나한테?)
10개월 동안 임신해서
출산의 고통 느끼며 애 둘을 낳았다.
출산 후 회복하는 것도 힘들고
지금도 손목을 비롯해서
확실히 이 전보다 몸이 약해진 게 느껴진다.
출산 100일 후부터 머리카락이 빠졌는데
더 빠질 게 있나 싶을 정도로 현재 진행형이다.
생물학적으로 겪는 이 희생이
난 엄마로서 최대의 일을 한 거라 생각한다.
모성애는 그 이후의 일이다.
사회적으로 부성애보다 모성애를
당연시하게 여기는 것 같다.
떠들썩했던 정인이 사건을 보면
재판 결과 양부의 처벌이
너무 약한 걸 볼 수 있다.
아동학대에 관한 우리나라 형량들이
전반적으로 낮은 것부터 이해가 안 되지만
같이 키운 양부모는 둘 다 공범인데
초점은 양모에 더 쏠려있다.
내가 아기를 키우는 건 당연한 거고
남편이 아기를 보면 격하게 칭찬받는다.
우리 부모님은 남편을 너무 좋아하며
정서방은 애도 잘 본다고 칭찬 일색이다.
우리나라 근현대 화가 박수근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비싼 작품의 화가이며
외국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국의 여인, 아이들, 나무 등
한국의 향토적 소재와 정서를 표현했다.
박수근 작품을 좋아해서
몇 년 전 박수근 고향인 강원도 양구로
박수근 미술관에 다녀왔다.
미술관이 돌담길로 쌓여있어서
외관부터 한국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었고
규모도 크고 깔끔해서 또 가고 싶은
예쁜 미술관이라 적극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박수근 작품의 질감 표현을 좋아하는데
황갈색 위주의 유화 물감을 두껍게 덧칠하였다.
박수근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의 전란을 겪은 화가이다.
고통의 시기를 헤쳐나간 한국인의 강인함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암석인
화강암 재질로 나타내고 있다.
작품은 엄마가 아기를 안아
젖을 물려주는 모습이다.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사랑과
숭고한 모성애를 느끼게 해 준다.
이 작품은 실제 박수근의 아내와 아들을
모델로 그린 그림이라 더 와닿는 것 같다.
박수근과 아내의 러브스토리도 구구절절하다.
아내 김복순 여사는 집에서 정해준
의사 집안과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이 일로 병든 박수근을 보고
파혼 후 박수근에게 간다.
김복순 여사가 쓴 일기를 보면
아내에 대한 박수근의 순수한 사랑을 볼 수 있다.
김복순 여사 또한 박수근 곁에서
평생을 지지했고 작품이나 글에서
잉꼬부부임이 나타난다.
이 아름다운 작품을 보며 죄책감도 느껴진다.
괜스레 유교사상과 가부장적인 사회의
엄마로서 여자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며
핑계도 대본다.
첫째는 모유 수유 100일
둘째는 모유 수유 60일
모유 수유를 해야지
모성애가 있는 좋은 엄마인 걸까.
모유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난 모유보다 성분 좋고 비싼 분유를 선택했다.
나는 아이보다 내 편함이 우선이었고
다행히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먹고 잘 크고 있다.
TV에서 연예인들의 출산 과정을 보면
한결같이 부모들은 다 눈물을 흘린다.
그 장면을 보며 나도 감동의 눈물이 나왔다.
그러나 정작 내 분만 시에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벌써 낳은 거예요?”
생각보다 빨리 낳은 기분도 들고
사실 얼떨떨해서 애를 낳았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아기를 낳고 첫 눈물을 흘린 건
조리원에서 유축기로 유축을 할 때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내가 젖소가 된 기분이라는 건가
공감하며 서러웠다.
하필 유축하는 곳이 의자에 앉으면
한 명씩 다 벽을 보고 앉는
혼밥하는 듯한 1열 테이블이었는데
앞에 막힌 벽을 보니 마음도 답답하고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현타(현실 자각 타임)와 함께
급 눈물이 터졌다.
엄마가 되었다는 감격보다는
엄마가 되어서 싫었다.
아이는 자기가 선택해서
이 세상에 나온 게 아니라
남녀가 사랑을 하고
부부가 선택해서 낳은 것이다.
우리는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고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주려 노력한다.
나는 첫째, 둘째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써가며
현재 3년째 육아휴직 중이다.
마음 같아선 빨리 복직을 하고 싶으나
아이들이 어려서 앞으로도 몇 년간
휴직을 해야 될 것 같다.
아이를 낳았으니 당연히 육아휴직을 해야 하고
애를 키워야 된다는 책임감에
다른 선택지는 생각도 안 했다.
첫째를 낳고 주말부부로 사는 2년 동안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도 받지 않고
독박 육아를 경험했다.
평일 저녁에 떨어져 사는 남편은 회식을 가고
나는 혼자 밥을 먹으며 아기가 울어서
한 손으론 아기를 안고 반대 손으론
급하게 저녁을 먹는 게 일상이었다.
혼자의 육아가 외로웠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 생각했다.
박수근의 아내 김복순 여사도
엄마로서의 역할과 삶이 힘들었겠지만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잘 헤쳐나갔듯이
행복한 육아에는 남편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한 번도 화내지 않는 남편이
엄마 자격을 운운하며 화를 냈던 건
많은 걸 담당하는듯한 본인의 역할에
서러움이 터졌었나 생각해 본다.
마치 내가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
남자는 그대로인데
여자만 많은 걸 희생해야 된다는
억울했던 감정이 들었던 것처럼..
현재 남편은 회사 출퇴근을 하면서
동시에 첫째 등하원을 시키고
살림과 육아를 최대한 하고 있다.
내 자유를 존중해주며
집에서 더 많은 걸 담당하려 한다.
내 스스로 게으르고
모성애가 없는 엄마인가 생각이 들 때
사실은 옆에서 더 부모역할을 해주고
나에게 칭찬을 해준 남편이었다.
육아로 부부간에 갈등도 생기고
우여곡절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지만
기쁨과 행복을 함께하는 시간이 쌓여가니
부모로서 성장하면서 모성애와 부성애도
함께 커지는 게 아닐까.
사랑 넘치는 부부 사이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이 만들어진다.
부족한 모성애지만 남편과 함께 키워가고 있다.
오늘은 신나게 미역국을 요리했던
지금은 첫째를 재우고 있는
언제나 나를 지지해 주는
내 편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