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하나로 고군분투하는 영화인들
인천의 미림극장은 1959년 설립되어 존폐의 위기를 겪으며 현재는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버극장이자, 독립영화 상영관이다.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은, 미리미(미림을 돕는 자원봉사자들)라는 청년들의 활동인데, 그들의 젊은 에너지가 이 극장을 살리고 있고, 극장 대표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미림을 인공호흡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일요일, 인천의 미림극장에 다녀왔다. 인천독립영화협회 송년상영회를 하기 때문이다. 평소와 다르게 극장이 관객으로 시끌시끌하다. 상영작이 총 네 편인데 스태프들이 총출동한 듯하다. 그래도 어딘가, 오랜만에 극장이 사람꽃을 피우고 있으니... 죽은 자식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각설...
단편을 보는 즐거움은 이런 데 있다.
첫째, 발견의 즐거움-크로스
장민혜 감독의 크로스, 앞으로 다가올 시대와 기존의 아날로그 세대의 합성을 통해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수효과를 자연스럽게 사용한 기술은 단연 돋보이는 장치다. 고양이와 결혼해서 사이버 세계에서 사람으로 변한 아내와 함께 살아간다는 발상, 그것이 주는 여러 가지 시사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확장된다.
아버지와 딸이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나는 것은 개연성을 깎아 먹게 만들고, 가상공간에서의 섹스장면(블랙미러를 연상시킨다.)이 크게 와닿지 않은 것은 배우들의 쑥스러움도 그랬겠지만, 연출로 커버하지 못한 점도 지적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건 단편영화의 제작현실로 보면 '돈이 작품의 질을 결정한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둘째 확장 가능성-너를 따라 걷다
10분 남짓한 단편 중에는 마치 긴 장편을 본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있다. 할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도 전에 영화는 끝나버린다. '너를 따라 걷다'가 그렇다. 클로버를 도처에 심고 다니는 언니는 떠나간 동생을 찾는다. 동생이 네 잎 클로버를 따러 다니므로 언젠가 자신이 심는 네 잎 클로버를 따러 자신에게로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네 잎 클로버 작업을 계속해 나간다.
이들 남매에게는 숨겨진 이야기가 많다. 관객은 감춰진 이야기에 함께 호흡하고 싶어 진다. 단지 분위기만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캐릭터와 함께 숨을 쉬고 싶어 하는 것이다.
셋째, 아쉬움도 즐겁다-남의 얘기, 모두가 사랑할 시간
작은 소품 같은 것, 단편이 주는 아름답고 예쁨은 생의 단면을 보는 데에 있다. 사춘기 시절의 신체, 낙오된 청년운동의 문제 등은 우리 모두 빛났던 그 시절의 한 때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다. 그것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아무리 하찮은 것들이어도 본인에게는 진실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들은 그들이 첫발을 디뎠을 때의 작품이거나 오랫동안 영화를 생각하며 살아온 결과들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영화를 배우는 커리큘럼에 들어가 30만 원의 지원금으로 만든 작품도 있다. 그렇다, 그게 다다. 30만 원으로 이만큼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청년들의 열망은 우리의 현재이며 미래다. 그들을 아끼고 한껏 지원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사라질 극장도 살려냈고, 지원을 끊어버린 정부의 횡포 속에서도 누군가는 계속 만들고 있다. 그 누군가가, 이 불의하고 불합리한 폭력에 저항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을 막은 장애의 물꼬를 트고, 가로막은 벽을 허물어 나가며 전진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우린, 어쩌면 그들에게 크게 빚지고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