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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작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것

by 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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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팀 밀란츠

각본 엔다 월쉬

원작 클레어 키건 -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제작 맷 데이먼, 앨런 몰로니, 킬리언 머피, 제프 로비노프, 드류 빈톤

출연 킬리언 머피, 아일린 월시, 미셸 페어리, 클레어 던, 헬렌 비언, 에밀리 왓슨

미술 파키 스미스, 아이린 오브라이언

개봉일 2024년 12월 11일

상영 시간 98분 (1시간 37분 56초)

상영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피터 뮬란의 '막달레나 시스터즈'(2002년)가 다루고 있는 사실은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막달레나수녀원 세탁소' 사건이다. 그리고, 2021년 클레어키건이 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역시 같은 사건을 다룬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키건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가 하는 일, 고발

피터뮬란의 영화가 '사건'을 대대적으로 사회화시켰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다시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이 부상했고, 그걸 다시 팀 밀란츠로 하여금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만들게 했다.

소위 말해 사회봉사를 내세운 복지 재단들이 보여주는 행태의 극악한 모습을 보여준 사건들을 계속 재생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한국의 '형제복지원' 사건과 다를 바 없다. 아일랜드에서는 종교재단이, 한국에서는 정부의 공권력의 공조에 힘입은 민간단체가 벌인 인권 유린 사건이 지금도 마무리되지 않고 지속적인 트라우마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제복지원도 그렇고, 막달레나 세탁소도 결말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는 사실이 데자뷔 된다는 사실은 놀라울 정도로 익숙하다.

고발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해결, 그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현재진행형으로 지금도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뿐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좌파'여서 그런 게 아니라는 얘기다. 영화계에 오랜 잔재처럼 존재하는 좌파 프레임을 씌우는 자들은, 자신의 소속이 부정한 정부 편이었거나, 부당한 공권력이었거나, 하다못해 폭력의 주체에 빌붙어 먹은(혹은 먹고살고 있는) 관계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통한 고발은, 약자들의 고통을 보듬어주기 위한 예술가들이 가진 최소한의 수단이다.


창 밖의 세계

개인 펄롱의 삶은 팍팍하다. 자신의 어머니가 미혼모여서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살았다. 1954년에 돌연사한 펄롱의 어머니가 산 미혼모 현실은 복지원 행이 되어 지역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가정부생활을 하며 지탄 없이 편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펄롱 자신도 미시즈윌슨의 저택에서 평화롭게 살게 된 것이다.

펄롱의 어린 시절을 괴롭힌 것은 학교 아이들의 놀림과 원치 않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40대의 나이가 되어 딸 다섯을 키우고 있는 펄롱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늘 알 수 없는 괴로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안갯속 같은 심정이다. 어머니의 죽음, 친절한 삼촌과 어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한 번도 맡고 싶은 선물을 받지 못했던 크리스마스의 선물에 대한 기억.

석탄을 비롯한 연료를 마을에 공급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그에게 수녀원 문이 열리고, 그 안의 실상이 다가온다. 석탄 창고에 갇힌 미혼모 소녀, 마루를 닦고 있는 소녀들, 옷감을 세탁하는 노역을 하는 소녀들, 학교까지 운영하고 있는 수녀원은 마을의 정신적이고 경제적인 주체였다. 펄롱에게도 수녀원은 불경기에 없어서는 안 될 석탄 소비자였다.

그가 목격한 장면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현재 자신의 딸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묻지 못했던 자신, 자신이 원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말하지 못했던 어린 펄롱을 자책했다. 그로 인해 어른이 되어서도 펄롱은 생각이 많다.


"당신은 편하게 살았잖아"


수녀원의 아이들, 수녀원에서 본 것에 대한 언급을 하자 아내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이런 거였다.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당신은 보통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부유함 속에서 성장해서 서민들의 현실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게 아내의 핵심이다. 그러니 입 닫고 살자, 수녀원은 우리 애들이 다니는 학교고, 수녀원의 혜택으로 이 마을 전체가 먹고살고 있다, 그러니 봐도 못 본 척하자는 게 아내의 논리다.

사회적 관계를 통해 탄생하는 사회인 펄롱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타인의 고통이 내재화할 때, 내면은 힘을 가지고, 용기가 되어 행동으로 옮겨진다. 매춘부, 미혼모 수용시설로 알려진 '막달레나 세탁소'에는 , 성폭행 피해자, 고아 소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펄롱은 그들처럼 자신의 딸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펄롱이 어렸을 때 바라보았던 창밖에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 중 하나가 삼촌 네드와 어머니와의 관계인 것처럼, 펄롱은 자신의 세계인 창 안쪽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인 창 밖의 세계를 구분하고 있다. 이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펄롱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더 깊이 바라보기 위해 창문 앞에 의자를 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모든 것들이 연관되어 관계를 맺는다. 네드가 나의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내 딸들이 자라면서 수녀원학교를 다니는 것처럼, 잘못된 일이 발생하면 수녀원에 들어가 강제 노역과 착취 감금을 당하는 인권유린 상태에 놓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끊어진 고리가 복원되듯 완전하게 연결된다.

이제 펄롱에게 타인들의 세계였던 창밖의 세계가 다름 아닌 자신의 세계였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일요일 새벽, 걸어서 수녀원에 간 펄롱은 갇힌 소녀를 꺼내온다. 자신의 외투를 입히고, 강을 다리를 건너 마을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거리를 지나, 소녀를 업고 언덕을 올라,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다. 밖에 데리고 들어온 소녀로 집 안의 아침은 갑자기 조용해진다. 이제 펄롱은 안과 밖에 같은 사람이 된다.


길리언 머피가 펄롱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것, 말로 할 수 없는 대사들을 그는 들려준다. 행동과 눈빛 그가 보여준 연기는 마치 무대 위에서 빛나는 작은 움직임 같은 것들이었다. 수녀원 입구에 들어서서 우두커니 서있기만 했던 그의 몸짓과 눈, 뒤가 구린 수녀원장의 비굴한 회유에 답하는 그의 몸가짐과 눈빛, 초점 흐린 눈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걸어가는 그의 눈, 그의 눈은 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변하는 이 모든 눈빛의 과정이 빛나는 영화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딸을 키우는 일-숙제검사를 하고 공부를 봐주는 일, 산타에게 편지를 쓰는 일, 석탄을 배달하고 대금을 청구하는 일, 생활을 유지하는 작은 일-들은 누군가(딸)를 보호해야 하고, 그래서 벌어질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도 포함한다. 내 편이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손 내밀어주는 일이 가져올 혹독한 시련들도 모두 이 사소한 일들의 바탕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소설이 말한 그 힘을 영화가 보여준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우리가 할 수있는 가장 큰 일이기에, 우리는 사소한 것을 기리고 가꾸고 사랑하게 된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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