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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망(望)

고립된 자의 바람

by 별사탕
섬망1.jpg

감독 박순리

촬영.음악 김정민우

출연 이은(은애 역) 최원정(미애 역)



어떤 것은 착란일 수도, 어떤 것은 극사실적일 수도 있는 장면들이 두서없이 마구 뒤섞여 나타난다. 섬망(譫妄)의 연속체가 꿈의 세계다. 꿈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생각 감정 마음과는 다르게 명징한 영상을 제공한다. 그 점이 매우 영화적이라면 영화적이다.

사람이 꾸는 꿈을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영상화할 수 있을까, 주인공 은애에게는 꿈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꿈에서 깬 현실은 그녀에게 비현실적 사실을 제공한다. 빛이 스며들듯 들어오는 단칸의 반지하, 너저분한 몇 가지 살림이 벽에 붙어 널려 있고, 펼쳐진 이불 위에는 강아지 몽이 잠들어 있는 현실. 누군가 그녀를 부른다. 꿈속의 누구일지도 모른다. 강아지가 불려 나가고, 어린 은애가 불려 나간다.

현실은 멈추어 선채 움직임이 없다. 그나마 꿈속에서 살아 움직이지만 고속 촬영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물들이 움직인다. 꿈속에서 사물의 속도가 느린 것은 원한이고 애절함이며, 결국 비극이다. 한 장면 한 장면들은 연결되지 않는다. 어렸을 적 기억과 지금 자신의 모습의 단편들이 조각조각 난 채이기 때문이다. 배경음악은 화이트 노이즈, 영화가 다 끝날 때까지, 이런 식의 장면들이 계속된다. 이건 마치 이상한 이미지의 영상과 소음으로 만든 음악을 콜라보하여 실험실에서 감독이 카메라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마치, 1920년대 크게 번성했던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영화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모순적이고 대립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브레히트 연극론) 그래서 표현주의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꿈의 세계, 감정의 세계, 정신의 영역들이다. 이들은 모두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그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섬.망'이 거기에 가서 닿고 있는 점이 놀랍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는 극명하게 현실과 대립되거나 모순될 수 있다. 다른 어떤 소재보다, 꿈의 세계가 그나마 좀 더 그리기 쉬운 이유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꿈은 선명한 영상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영상에 담느냐 하는 연출의 방법론은 전적으로 감독에게 달려있다.

첫 장면이 주는 기괴한 얼굴숏, 중간중간 화면을 꽉 채우는 눈동자, 빈건물의 복도를 천천히 지나가는 그림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다니는 폐허가 된 시골의 스톱모션들, 바닷가 남매의 카스테라 장면에서 멈추어 선 미애, 그리고 꺼지는 촛불, 이 모든 숏들이 비논리적인 상태로 산재하는 영화, 이야기로부터 벗어나 있는 영화다.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 글로 할 수 없는 이야기의 가능성을 본다. 영화는 영상을 통해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장르다. 말이나 글은 보조수단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새롭다. 대사가 불필요함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 사족처럼 친절함을 베불어 은애의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은 그래서 불만이다.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우주의 단조로움에 대항한다. 그것이 죽음일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한 개체, 동물인 인간이 깨달은 강철보다 더 단단한 얼개로서의 우주, 이 아프락사스의 알을 깰 수 있는 자는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영화는 거기서 멈추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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