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사진만 보고 여잔줄 알았더니만... 자세히 보니 남자네. 독일에 가면 예전에 차붐의 찰랑거리는 헤어스타일처럼, 사회가 그렇게 만드나 보다.
헤겔 칸트 푸코 이런 독일 프랑스 쪽 사람들의 책을 읽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나서 탈모가 온다. 실제로 '아다마'가 뜨끈뜨근해진다. 왜 그런가 하면, 수많은 철학 개념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야말로 점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한한 상상력과 32기가램급 머리회전을 통해 연관개념을 찾고 의미의 관계망을 구성하는 연산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확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고, 기억에 남아있지 않게 되는 데서 열패감을 느낀다. 원래 램은 하드에 저장되지 않고 날아가는 기억이긴 하다.
그런데, 이 책은 내용이 단순 명료하고, 거기다 짧기까지 하다. 이런 걸 철학적 에세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에세이'가 원래 그런 뜻이라는 걸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책이라기보단 그냥 가벼운 에세이집, 샘터에서 나온 부담 없는 얄팍한 그런 문고본 같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쉽게 잘 읽힌다는 얘기...
한마디로 말해 이 책의 내용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개념으로 현 사회의 특성을 진단해 냈다는 것. 이 과정에서 면역반응적 증상, 소화신경적 증상 등 병리학적 요소를 인용하여 재미있는 발상을 적용시켜 일종의 지적 유희를 한판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재미를 주는 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사회는, 뉴튼 이래 헤겔 칸트로 내려오던 법과 규정(율)의 세계를 감시의 세계로 세부화 구조화시킨 푸코에 이르는 사회, 즉 이걸 규범 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사회 속에서는 부정의 방식이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는 세계였다. 그러므로 거기서 타자는 당연히 나를 괴롭히는 부정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자아에 있어 타자는 바이러스이며 부정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그러므로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면역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니, 나를 제외한 이 세상 모든 것들(타자)은 극복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포스트모더니즘사회가 되면서 세계의 중심이 없어졌고, 이에 따른 규정 규율 부정의 주체도 없어졌다. 즉 자아를 억압하던 타인의 강제성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타자들은 부정의 대상에서 긍정의 대상으로 질적 변화를 했고 그걸 자아가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정이 긍정으로 바뀐 것이다. 이 사회를 성과사회라고 부르고 있다. 전통사회가 타자의 강제성에 의해 목표가 외부에서 주어졌다면, 성과사회에서의 목표는 내면화되었고 자기가 자기에게 강제하는 나르시시즘적 사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신경정신학적 측면에서 우울증을 낳게 되었으므로, 지금 우리는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피로사회를 넘어 우울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요지.
일원화된 타자에서 다양화된 타자의 세계로의 변화는 포스트모던현상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이다. 이제 문제는 정신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런 건 미래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겠지만, 따로 만들어진 미래가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인간이 상상하는 대로 만들어진다고 믿어야 하는 그 지점이 대안이고 희망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