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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

붉은색의 연대

by 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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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드라마

감독 황슬기

각본 제작 김세훈, 백경원

촬영 김지현

음악 이민휘

주연 장선, 변중희, 이유경, 기윤

제작사 (주)세모시

배급사 에무필름즈

개봉일 2025년 9월 24일

상영 시간 86분

상영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홍이는 붉은 색을 뜻하는 딸의 이름이다. 그녀의 엄마는 치매초기증상을 보이는, 아직까지는 성격이 살아있는 요양원 생활자다. 그런 엄마를 딸이 데려온다. 검정고시 학원 강사생활을 하면서, 공사장 안전관리 부업까지 하며 생활고를 겪고 있는 30대 여성 홍이, 엄마의 통장에 거액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초점은 괄괄하고 드센 여자들(이모의 성격도 만만찮게 세다.) 틈에서 제 목소리를 감추고 숨어서 핀 패랭이꽃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잘 봐야 보이는 그런 꽃들에 대한 이야기다.

집으로 모셔온 엄마는 변함 없이 기죽은 데 없이 자기 목소리가 강하다. 딸은 언제나 그런 엄마의 기에 눌려 성장한 듯 보인다. 타인에게 던지는 공격을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억눌려 자란 탓인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딸이 한 공간에서 동거에 들어간다.

복지 차원에서 시행되는 치매 프로그램에 등록한 엄마를 매일 동행하며 마다하지 않는 이모덕에 출근해서 일하는 시간 동안의 돌봄은 해결된다. 그렇게 일상은 문제 없이 흘러가는 듯했으나 생활할수록 이런 사소한 일상이 홍이에게는 버거워진다.

홍이는 어쩌든지 직장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그녀의 유일한 수입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생활에 지친 그녀는 학원에서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데 어떠한 사명과 보람도 없어 보인다. 원장이 하라는 대로 화장실 청소까지 하고 있다. 어쩌든지 끝까지 버텨 살아 남아야 한다. 살기 위해 그녀는 빚을 졌다. 전남친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닦달 당하고 새남친과 썸을 타고 있는 것은 홍이가 터득한 생존방식으로 보인다.

이렇게 그녀는 남자들과의 관계를 생존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살아남는 생존법을 그런 식으로 익혀내고 있는 듯 보인다. 여자인 그녀가 먼저 남자에게 다가서지만, 마음의 문을 다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지만, 오히려 남자쪽에서 선을 긋는 관계, 남자가 허락한 저녁식사에 내심 뛸듯이 기쁜 여자, 그녀의 숨겨진 욕망과 드러난 생활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사실 그녀는 저녁을 맘놓고 먹을 만큼 돈도 없다. 그녀의 욕망은 평범한 저녁 한 끼이거나, 빚 걱정 없이 하루를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적 여유이거나, 가르치는 데 보람을 느끼는 직업적 사명이거나 그런 사소한 것들이다. 이것들은 욕망이라고 하기엔 너무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그녀가 표출하는 자신의 모습은 언제나 애매한 경계에 서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경계의 감정선에 그녀는 늘 서 있다.

이런 일상의 욕망들이 홍이에게는 일상의 생활과 등가의 가치를 가진다. 엄마를 이모에게 맡기고 시간 맞춰 퇴근해서 이모를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 일은, 그녀의 욕망과 겹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이에게는 생활이 없다. 생활이 없으면 욕망도 없다는 사실을 홍이는 어렴풋이 알게 된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감정은 폭발하는 '발악'이 되어 엄마 앞에 노출된다. 그 지점에서 엄마의 진실과 홍이의 진실이 충돌한다. 엄마와 딸이라는 두 개의 삶이 충돌하는 지점에 강렬한 붉은 색이 있다. 엄마의 빨간 발톱 위에 홍이의 발톱이 오버랩되는 지점에, 엄마처럼 딸의 삶도 녹록치 않으리란 것을 예견한다.

남자들이 주변인으로 스쳐지나가는 여자들의 초상, 그 한 가운데 서희와 홍이가 있다.


엄마는 괜찮다!

그러니 너도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


다시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엄마가 홍이에게 남긴 숙제가 너무 근 버거움으로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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