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2025-10-22
등급 전체 관람가
시간 87분
관객 888명
장르 뮤직, 다큐멘터리
국가 한국
감독 조은성
출연 박성연, 임인건, 말로, 웅산, 황덕호, 박기순
신촌에 있던 야누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야누스의 올드팬들임에 틀림없다. 혜화 서초 청담을 거쳐 현재의 광화문에까지 이어졌다면 당신은 장수하고 있는 것이다. 78년에 신촌역 앞에 개장했으니 햇수로만 48년째다. 영문학자 문일영이 작명한 '시작, 보호'의 의미를 가진 '야누스'는 과거와 미래를 본다는 '양면성'의 의미도 담았다는 뜻에서 선택된 이름이었다. 이후 말로가 인수하면서 박성연을 기린다는 뜻에서 '디바 야누스'로 개명했다. 말로가 박성연을 역사에 박제한 것이다. 그 사이 주인공 박성연은 재즈와 함께 잠들었고, 그를 기억하는 많은 팬들은 그녀와 그녀의 재즈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야누스를 인수해서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말로가 나와서 박성연의 사실을 조명하고, 웅산이 나와서 박성연의 감정을 길어 올린다. 그녀의 재즈는 재즈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미8군에 들어가 노래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는데, 재즈평론가 황덕호의 말이 인상적이다. 애초부터 생소했던 미국노래를 끊임없이 연습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들처럼 이런 류의 노래들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가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 한국 재즈 보컬 1세대의 역할에 걸맞았고, 온 삶을 통해 그 정신을 지켜냈다는 사실이 그녀의 재즈 소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을 다 바친 재즈보컬이었다.
말로는 말한다. 야누스가 박성연이고 박성연이 야누스였다. 이 말은 이 다큐를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 박성연을 통해 보여준 것은, 그녀의 재즈도, 그녀의 삶도 아니었고, 다만 그녀의 공간 야누스였다. 그녀의 재즈는 황덕호가 언급한 한 줄에 남았고, 그녀의 삶은 남동생 박기순이 증언한 첫사랑의 죽음과 그로 인한 삶의 기울어짐은 그녀로 하여금 입을 닫아버리게 한 삶을 살게 했다. 큰 얼룩이 생을 물들였고, 이어지는 삶의 궤적은 노래에, 재즈에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예술, 특히 노래는 그 사람의 삶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에디뜨 삐야프나 빌리 홀리데이의 경우를 통해서도 잘 알고 있다.
어떤 인물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서는 입체적 시각이 필요한 것은 상식이다. 박성연이라는 인물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음악적인 부분과 개인사적인 부분 등 그를 나타내기 위한 모든 방면으로의 접근을 시도했을 것이나, 보다 풍부한 증언과 자료에 접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판근, 최선배, 임인건, 이동기 김수열 등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라는 앨범을 발매했던 야누스와 함께 방성연과 함께 재즈로 동고동락을 했던 동료들의 인터뷰에 더 치열하게 접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화면과 사진 속에서 스쳐 지나가버린 그들을 붙잡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마음 가득 아쉬운 감정이 들어차는 지점이다.
가고 없는 이들을 빼고, 그들은 왜 최종적으로 인터뷰를 거절했을까. 의문을 붙잡고 들어가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는 제작자의 의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숨겨진 면을 찾는 과정이라는 벨라 발라즈의 말이 여기서 생생히 되살아난다.
박성연을 대표하는 곡, 가사를 써 놓고 보니 그녀의 쓸쓸했던 삶이 내 가슴에 손을 내미는 듯하다.
바람이 부네요
춥진 않은가요
밤 깊어 문득
그대 얼굴이 떠올라
가슴 뛴 그대 미소
떨리던 그 목소리
많은 상처에 얼어붙은
내 마음 감쌌던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
분명한 이유가 있어
세상은 필요 없는 사람은 없어 모두
마음을 열어요
그리고 마주봐요
처음 태어난 이 별에서 사는 우리
손잡아요
물안개가 자욱하게 밀려오는 바닷가에
하이얀 물거품이 산산이 밀려 터지네
고요히 지평선으로 스며드는 안개속에
그리운 그대 모습 나를 부르며 다가오네
사라지는 그 모습에 괴로웠던 나의 마음
변함없는 나의 노래 그칠 줄을 모르네
고요히 지평선으로 스며드는 안개 속에
그리운 그대의 모습 나를 부르면 멀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