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엄하늘
프로듀서 이예든
촬영 김힘찬
출연 심현서 (이경환 역) 현우석 (성재민 역) 공민정 (운경숙 경환 모역) 이동휘 (최영철 (담임) 역) 온주완 (이경환 (성인) 역)
상영 시간 105분 (1시간 44분 32초)
이 영화가 돋보이는 지점은 대구와 반공이라는 보수의 아이콘이 지배하는 90년대적 현실에 있다. 경환이 엄마에게 자신을 커밍아웃하려는 찰나, 엄마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니, 간첩이가?'하는 대사를 듣고 맘껏 폭소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적 아이러니, 폭력으로 얼룩진 진정성이 이 영화의 비현실성을 상징한다.
모든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빛나는 순간은 그들의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품은 자가 남자 혹은 여자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소수자'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은 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정체성(자아)의 문제를 제시하는 소재주의에 더 이상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도 같은 데서 나온다.
전학 온 시기가 다를 뿐 이 학교의 이방인인 두 친구가 있다. 공통점은 둘 다 공부를 잘하고 일본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경환은 학교에서 남자 친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이사와 함께 전학했다. 알려지기 싫어하는 경환의 아킬레스건이다. 반장인 재민 역시 어릴 때 전학 왔고 왕따였던 이력이 있다. 둘 다 숨겨야 하는 그늘이 있는 존재라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이 둘이 서로 다른 취향의 일본노래로 친구가 된다. 엠피쓰리에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들으며 버스를 타고 공원에 앉는 사이가 된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시간이 흐르며 이들도 우정이 쌓인다. 재민은 자신의 왕따 이력을 털어놓고, 경환은 망설임 끝에 남자를 좋아한 전력을 고백한다.
순간 모든 관계에 금이 가고 경환의 우주는 다시 산산조각 나버린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재민의 일방적인 분노로 끝난다. 경환은 다시 서울로 전학 가고, 그들이 자주 찾던 일본 음악 레코드점은 불법음반 퇴출에 밀려 시대적 뒤안길로 사라진다.
첫눈이 오는 날 거기서 너를 기다린다는 재민의 메시지를 재민이 선물로 준 CD 속에서 발견한 경환은 이미 성인이 되어 남남커플로 엄마에게 인정받고 살고 있다. 성인된 되어 다시 그 자리에 선 경환의 주변엔 아무도 없고 눈만 하염없이 내린다. 경환에게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둘이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듣던 노래들이 맴돈다. 그리고 생의 그 5분을 아름다웠다고 기억한다.
스토리에서도, 사건에서도 특별하게 시선을 끌지 못하는 평범함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그 평범함은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성장기의 아이들이 겪는 성장통과도 같은 의식으로 퀴어를 다루었다. 북한에 사는 사람을 늑대나 괴수라고 믿었던 시절, 간첩이라는 말이 금기어처럼 절대로 뱉어서는 안 되는 단어였던 시절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 이 영화의 의미를 더 해 준다. 억지로 말을 만들자면 이니시에이션 퀴어(Initiation Queer)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