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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Sep 28. 2024

메이 디셈버

또 하나의 알 수 없는 진실

(아무런 전제 없이) 각설하고, 그레이시가 서른 여섯, 조가 열 여섯의 나이에 만나(May December)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고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커플이 있다. 그들은 결혼 20년차로 평온한 일상을 보낸다. 여기까지가, 나이 차를 극복한 완벽한 커플로 회자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애정행각은 그레이시를 감옥에 가게 했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지탄을 받게 했다. 20년 전의 사건으로 그들은 지금도 발신자 불명의 대변 소포를 받으며 살고 있다. 그들 앞에 노출연기로 대중에게 알려진 여배우 엘리자베스가 등장한다. 그녀는 그들의 이야기를 사서 영화로 제작하려는 제작자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가 알고 싶은 건, 그레이시와 조의 진짜 모습이다. 그걸 알아야, 즉 사건의 실체를 알아야 연기에 돌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플 사이에 끼어든 존재, 그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의 과거 얼굴을 보고 싶고, 조의 지금 마음을 알고 싶어 한다. 조금씩 그들 사이에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드러나는 것은, 그레이시의 흔들림과 조의 깨어남이다.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내는 서사, 이것을 외서사라고 부를 수 있다면, 외서사는 그레이시의 가스라이팅이 주를 이룬다. 그레이시가 만든 보호막 안에서 조는 성장하는 것, 그건 마치 조가 나비의 애벌레를 유리상자 속에서 키워 날려 보내는 행위와 같다. 조는 그레이시의 나비 애벌레와 같은 존재였던 것. 

  내서사, 그 속에는 알아내려고 하는 자(엘리자베스)와 숨기려고 하는 자(그레이시), 자신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자(깨어나고 싶어 하는 자)의 삼파전으로 치닫는다. 그런 와중에 어느새 관객의 머릿속에는 조용한 통각의 순간이 온다. 


  무엇이 진실인가, ‘여자란 그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존재’로 남겨둔다. 조를 깨어나게 한 첫마디는 ‘이건 어른들이 하는 놀이야.’라는 엘리자베스의 말. 순정을 바치고 그 순정한 마음을 간직한 채 20년을 함께 한 조에게 그 말은 자신의 지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기폭제가 된다. 

 

  그레이시의 슬픔은 자신이 동네 사람들로부터 소외 당하는 일이고, 조의 슬픔은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던 지난 날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지금이다. 그레이시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지만, 조의 시간은 그날 이후 멈추어 버린 것. 그래서 조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추락의 해부’가 진실을 파헤칠수록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지는 사건을 이야기하듯, ‘메이 디셈버’ 역시 ‘이제 진짜 같아지는 것 같다.’며 테이크를 거듭해 나가는 메소드 배우 엘리자베스의 말을 뒤로한 채 관객은 여전히 오리무중을 헤매게 만드는 영화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쿠로사와 아키라’에게서부터였다. 

 

  너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이며, 너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너는 또 누구인가? 이 세 개의 꼭지점은 놀랍게도 한 번도 서로 만난 적이 없다. 이 모든 걸 쳐다보고 있는 우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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