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 빠지다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배우: 아키코(타카나시 린), 타카시(오쿠노 타다시), 노리아키(카세 료)
개봉: 2013.10.17.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09분
배급: (주) 영화사조제
넷플릭스 버튼을 돌리다가, 우연히 얻어걸린 영화, ‘사랑에 빠진 것처럼’. 일본 영화다. 일본 영화를 잘 보지 않고, 싫어하기까지 했는데, 히로카즈의 영화를 보면서 일본영화가 뚫고 나갈길을 찾은 듯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일본영화 특유의 차분함은 관객을 지루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그것은 마치 베토벤의 운명을 비발디의 사계 중 봄으로 변주하는 것과 같다. 그것도 봄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캐논 변주곡.
그런데, 아, 이건 좀 다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특히 결말에는 난데없는 유머를 섞었다. 이런 시나리오는 일본 사람의 것이 절대 될 수 없다. 정말 이상하다. 일본에 신진 감독이 나타나 넷플릭스로 등장했단 말인가.
아키코는 대학생으로 콜걸이다. 집안과의 연결고리로 보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비를 스스로 조달해야하는 대학생인 것으로 보인다. 고급 클럽을 운영하는 히로시가 아키코에게 소개한 타카시교수는 이미 노인이다. 타카시의 집에 도착한 아키코는 침대에 누워 얼른 볼일을 보고 싶다. 그래서 자꾸 졸린다고 말하는 아키코를 내버려두고 타카키는 연인의 식탁처럼 촛불을 밝히고, 와인을 따른다. 아내도 죽고 자식들과도 따로 떨어져 혼자 살고있는 타카시에게 필요한 것은 욕구를 푸는 섹스가 아니라, 살가운 생활의 대화로 보인다.
어쨌든 하룻밤을 묵고 나가는 아키코를 근방의 대학에 등교시키는 타카시, 그가 본 것은 대학 건물 앞에서 집요하게 그녀의 행방을 따지고 묻는 애인 노리아키를 만나게 되고, 여기서 노리아키는 타카시를 아키코의 할아버지로 넘겨짚게 되면서 잠시 아찔했던 분위기가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다음날 타카시는 아키코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태워 온다. 아키코의 입술은 터졌고, 유혈이 낭자하다. 젊은 여대생이 타카시의 집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이 집주인에 의해 목격되고, 노리아키가 그랬던 것처럼 집주인여자 역시 아키코를 타카시이 손녀로 생각한다. 한사코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아키코를 집으로 데려들어온 다카시는 터집 입술을 소독하기 위해 소독봉을 건네지만 그 역시 거절하는 아키코, 노리아키가 타카시와 아키코의 관계를 알아챘다는 것이다.
창밖에서 고함 소리가 들린다.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범 늙은이라고 외치는 소리다. 문 열라는 고함과 함께 주먹으로 내려치는 현관의 문소리는 그동안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작은 동네를 순식간에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 찬다. 공동현관을 뚫고 3층으로 올라온 노리아키가 부숴져라 대문을 쳐댄다. 타카시는 어쩔 줄 몰라 거실을 왔다 갔다 할 뿐이다. 밖에서는 타카시의 차가 박살이 나는 소리가 들리고, 신고하라는 주인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안절부절 못하고 밖을 엿보듯 내다보는 다카시의 손에는 여전히 소독봉이 들여있다. 그가 서 있는 창가의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고, 곧장,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관객은 이 일본 영화에 두 번 놀란다. 영락없는 한 번은 느닷없이 끝나는 상기한 엔딩에서다. ‘어, 뭐야?’ 하는 사이에 ‘벌써 끝났어? 이게 끝이야?’ 하는 반응을 보일 뿐, 관객은 이 영화를 끝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뒤통수를 세게 한 대 얻어맞는 경험을 당한다.
노인의 사랑과 젊은이의 사랑
아끼고 보살펴주면서 마음을 베풀어주는 것, 이런 종류의 사랑이 타카시가 아키코에게 보여주는 사랑의 내용이다. 그런 반면 노리아키는 직선적이고 절대적이며 그래서 일방적으로 폭력적인 사랑을 한다. 이 영화는 이 둘의 사랑을 대비시킨다. 둘 다 사랑이지만, 그 중간에 선 아키코의 놀란 눈은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이건 둘 다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성으로 충만하지만 몸이 없는 노인의 사랑이나, 감정으로 가득찬 몸이 앞서는 청년의 사랑이나, 아키코의 시선으로는 어떠한 이유에서든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랑이다.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도대체 어떤 일본 감독이 이런 작품을 만들었나, 하며 찾아보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이름이 나온다. 우리에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로 잘 알려진 이란 감독이다. 아니, 어떻게 이란 감독이 일본 배우들과 함께 일본배경의 영화를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미스테리한 사건이다. 가장 자연스럽게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감독, 다큐와 허구의 영역을 혼란시키고 새로운 영화영역을 개척한 감독으로 잘 알려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명감독이 2013년 10년 전에 만든 영화였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압바스감독이 특유의 사랑 연작을 내다가 2016년에 타계하면서 자연스레 이 작품이 마지막 장편이 되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과연 사랑이 뭔지에 대해 오래 묵은 질문을 던진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유가 해답은 여성에게 있다는 것, 결국 사랑은 여성의 선택에 의해 완성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 줄도 모른다.
볼 것 없는 넷플릭스에서도 가끔은 이렇게 얻어걸리는 영화 한 편쯤은 있다는 사실, 그래서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날, 밤이 무척이나 은근한 생각으로 잠길 때가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