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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Sep 28. 2024

와츠 러브

서구의 계몽이 만든 식민지 고아의식

개봉: 2024.03.20.

등급: 15세 관람가

장르: 멜로,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국가: 영국

러닝타임: 109분

감독: 세자르 카푸르

출연진: 조이(릴리 제임스 붙ㅌ), 카즈(샤자드 라티프 분), 캐스(엠마 톰슨 분), 마이누나(사잘 알리 분)             

                                     

  사랑과 결혼을 소재로 한 영화, 그런데 그 문화간 격차를 반영하고 있는 영화다. 서구 문화권의 개인주의, 자유연애가 아시아(파키스탄)의 가문 중심, 중매 결혼이라는 문화와 충돌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에겐 이미 너덜너덜해진 닳아빠진 낡은 소재다.

  신파는 흔히 눈물을 짜내는 극을 말한다. 서구의 극이 일본에 상륙하면서 만들어진 용어다. 그게 다시 우리에게 들어와 굳어진 구태의 극전개를 의미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이 영화에서 신파적 요소를 지닌 인물은 분명, 마이누나이다. 불행한 결혼을 강제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전인 것은 혼전 애인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즈 역시 전통 혼례의 희생으로 정확히 자신의 사랑에 대해 긴가민가하는 우유부단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의 단짝 여사친인 조이 역시 카즈에 대해 긴가민가한 상태, 즉 이 영화는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런데 그 발상이 서구예찬, 전통 파괴에 있다면, 과거 조선 문화계의 신생아였던 이광수의 논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전통을 깡그리 부정하고 서구사상의 예찬으로 돌아서버린 이광수는 바로 그 순간, 부모 없는 고아가 되어버린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고 그런 영화구나.

  결말이 뻔하다, 밝고 환상적인 색감을 유지하면서 리드미컬한 내레이션이 화면을 타고 흐르는 이런 류의 코메디영화는 모두 해피엔딩이다. 디즈니 캐슬 위에 불꽃이 터지는 영화란 얘기다. 밝고 희망에 찬 세계관을 가진 색깔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은 문화간 교차에 있다. 상반된 문화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의도가, 반드시 서구의 사랑 개념의 승리만은 아닐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사랑의 승리로 엔딩을 만들고 있지만, 어느 한 쪽에 편들어주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진 않았다고 믿고 싶다. 파키스탄 판, 이광수 계몽소설의 영화버전을 본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복잡 미묘한 문화의 교차, 동서양을 막론하고 범람하는 자유연애의 물결, 이슬람문화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한 가문의 수고가 신파적 드라마로 추락하는 것을 목격한다. 계몽주의 시대에 물밀듯이 쳐들어온 외래 문화가 고유문화를 낮은 수준의 천박하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림으로써 무자비한 전통파괴로 이어졌던 경험을 우리는 개화기 역사, 식민의 역사에서 배웠다.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세계관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100년이나 더 전에 우리 심장을 짓밟고 간 이식문화론이다. 그저 단순하고 밝고 건강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로맨틱 코메디.       


역시그렇고 그런 영화구나.

  현대 한국사회에서, 젊은이들의 사랑, 자식 세대들이 하는 사랑에 대해 부모 세대들은 이미 자포자기했고, 그들에게 맡겨 내버려두는 것이 대세인 요즘이다. 그러나, 아직도 전통(무엇이 전통인지는 한국에서 실종된지 오래지만)을 지키려고 하고, 가문의 관습에 따르려고 하는 가정도 많을 것이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세대간 가치관의 갈등을 문화간 차이(47번지와 49번지의 차이)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 우리가 겪었거나, 겪고 있는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있단ㄴ 점에서 현대한국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소재를 다룬다고 볼 수 있다. 그래봤자, 그렇고 그런 해괴한 로맨틱 코메디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사랑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어적으로 보면, 사랑이야말로 모든 갈등의 열쇠라고 보는 것이다. 종교의 율법을 배반하고 사랑을 좇아 가출하여 가족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카즈의 여동생, 사랑을 두고 정략결혼을 당하여 불행한 결혼을 시작하는 카즈의 아내나,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라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자신의 남자 기호에 끼워 맞추려는 조이나 어찌 보면 이들 모두는 가부장적 의식의 피해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끝까지 페미의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의 시작도 사랑이었고, 마무리도 사랑이다.     

  마이누나의 파티를 기억하라. 그녀의 삶과 선택(카즈의 삶과 선택이 아니라)에 박수를 쳐 줄 수 있다면, 당신은 딱 그만큼만 이 영화에 만족하고 극장을 돌아서 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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