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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Sep 28. 2024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기억


 미국에 노예로 잡혀온 흑인들이 목청을 가다듬으며 울분을 삭였던 음악이 블루스였다. 불운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엘비스 프레슬리가 흑인 교회에서 블루스를 들으며 음악적 영감을 얻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그는 전 세계 최초의 팝가수(대중가수)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엘비스 이전에는 이런 대중적 가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엘비스를 우상시했던 영국의 비틀즈가 미국을 휩쓸며 대륙횡단 공연을 할 무렵 소위 말해 스탠더드 팝을 하던 올드한 그룹들은 무대 뒤로 사라져 가며, 점잖지 못한 젊은이들의 퇴폐적 문화에 개탄했다. 

  그리고 그 후,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10cc, 폴 메카트니, 노엘 갤러거, 피터 가브리엘 등 본격적인 록 그룹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시대와 스타의 등장을 알렸고, 이들의 존재를 우주적로 만들어주었으며, 어두운 무대를 더욱 빛나게 스포트 라이트를 켜준 존재, 앨범 재킷 디자이너들이 등장한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록의 대중화 시대, 밤하늘에 하나의 별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별들이 빛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앨범 커버가 대변하는 시대가 온 것이었다.      


앨범 아트는 가난한 자들의 미술관

  오디오 브랜드 중에 매킨토시 앰프와 탄노이 스피커 브랜드는 그야말로 꿈의 소장품에 속할 정도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명성이나, 가격, 성능면에서 월등한 디자인을 가진 오디오 브랜드가 많아졌고, 선택의 폭도 넓어졌지만, 6, 70년대 브랜드로써는 선택의 여지없이 바로 그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빈자의 매킨토시라고 불리는 우리의 인켈 브랜드가 있었으니 애호가들은 그걸 인켄토시라고 부르며 자기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앨범 아트 역시 똑같은 현상을 불러왔다. 수록곡과 무관하게 뜬금없이 등장하는 뒤돌아보는 젖소(Atom Heart Mother)라든가, 프리즘을 통과하는 찬란하게 분광하는 무지개(Dark side of the Moon)를 보여준다거나, 모던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발전소의 굴뚝 사이 상공위로 날려 보낸 돼지 풍선(Animals) 등은 이들 앨범 아티스트들의 순수한 아이디어 그 자체가 우세했던 창작의 과정을 보여 준다. 앨범 자체가 미술관의 예술작품이었던 셈, 전설의 아날로그시대였다.       

  미술관에 가지 못하고 공연장에 가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의 소장품, 앨범을 구입하고 재킷에 열광하는 세대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거리에서 만들어진 예술

  스톰 소거슨과 오브리 파월이 주축이 되어 만든 창의적 디자인 회사 이름, 힙노시스는 힙(Hip)의 성지(Gnosis)라는 의미를 내포한 합성어다. 이들과 친구인 시드 자렛이 써 갈긴 대문 낙서가 시발이 되어 채택된 회사 이름. 이런 식의 동네친구들끼리의 장난 같은 시작이 앨범 아트의 한 획을 긋는 출발이었다는 점은, 뱅크시가 뒷골목의 그래피티스트를 추종하는 데서 그의 작업이 시작된 것과 유사하다.  

  이들 힙노시스의 주역들은 모두 동네친구들로, 한 집에 모여 술이나 마시고, 마리화나나 나눠 피던 그렇고 그런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할 일이 없던 파월에게 스톰은 우리 학교 사진과로 오라고 권했고, 카메라는커녕 셔터를 눌러본 적도 없던 파월은 스톰의 권유에 따라 들어간 사진관에서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부터 거창한 뜻을 품은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보니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된다는 이런 과정은,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의 만남에 비견할 수 있다. 이들이 단지 운이 좋아서였을까? 신이 맺어준 필연적 만남이었을까?

      

LP를 CD가 밀어냈지만

  엠티비가 등장하면서 더 이상 앨범의 존재가치는 사라졌다는 것을 스톰과 오브리는 실감하게 된다. 하나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면서 이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 앨범 표지를 봐야 했던 아날로그시대는 지나갔다. 앨범 표지가 음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 어떤 통과의례도 없어졌고, 그래서 새로운 선택은 스스로 길을 잃게 만들었고 급기야 이들은 파산에 이르고 만다. 그렇게 해서 전설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CD의 시대도 가고, 음원의 시대가 온 지 오래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음원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을 하며 살고 있다. 레트로의 열풍이 광풍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젊은 층들 사이의 유행이 되면서 LP가 재발매되어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다시 그 자리에 서서

  유행은 돌고 돌아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온다고 할지라도, 이미 그때의 사람은 가고 없다. 그래서 이 다큐가 오래전에 헤어졌던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 같은 반가움과 즐거움을 던져주었다가, 극장이 다시 밝아지면서 이내 씁쓸한 감정으로 변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다. 

  오늘 밤은 서재에 끼워둔 엘피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화려했던 그 시절의 앨범 아트를 들여다보며 스톰과 오브리를 추억해야겠다. 그러다가, 그들이 만든 앨범 커버에 숨겨진 옛날을 기억해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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