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나라에서 잠들다
화면비(Aspect Ratio)의 변환
영화는 16:9의 화면비에서 시작하면서 아름답고 웅장한 대한민국의 자연환경을 보여준다. 마치 어린 시절 TV방송을 시작할 때와 마칠 때 틀어줬던 애국가 화면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끝날 때도 마찬가지, 대한민국의 자연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대한민국 예찬을 전제로 이 영화를 만든 듯하다.
내레이션이 깔리면서 삶의 역정을 소개한다. 60년생의 여자, 버려진 고아, 꿋꿋하게 현실에 맞서 싸운 삶, 조현병으로 자살한 착한 남편, 살기 위해 한국을 떠나 캐나다 이민을 선택한 그녀, 화자의 내레이션이다.
4:3의 화면비로 바뀌면서 캐나다 화면이 나온다. 화면비의 의도적 선택은 시간과 관련이 되어 있다.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는 과거 회상의 내용이 담긴 액자를 보는 듯하다.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액자(과거)로 들어간 이야기 구성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다시 16:9로 돌아오면, 동현이 한국에 정착한 모습으로 나온다. 지금의 시간으로 돌아온 것.
고려장, 한국인의 뿌리
청혼한 사이먼에게 소영은 고려장 이야기를 해준다. 초점은 어머니의 소임, 자식에 대한 무한의 책임을 사명으로 태어난 이 땅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췌장암에 걸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삶을 살게 된 소영에게 생의 유일한 소명, 자식의 안전과 정주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 그것 하나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고등학생이 된 동현은 학교 과제로 뿌리 조사, 가계도 작성 숙제를 부여받게 되고, 그 일환으로 생각한 한국 여행쯤으로 생각하고 궁금한 질문들을 할아버지에게 던진다.
그러나 소영은 다르다. 그녀가 죽고 나면, 낯선 타국 캐나다에서 인종적 소수자, 사회적 루저(어릴 때부터 학교 친구들로부터 무수히 놀림의 대상으로 들었단 단어)로 살게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그녀 자신이 한국에서 겪었던 고아, 미혼모, 여성으로서 살았던 삶의 체험적 궤적과 일치한다.
소영이 동현에게 마지막으로 해 줄 수 있는 것, 그건 한국에 다시 정착시키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디아스포라적 삶의 종지부는 환국이다. 역이민, 이질적 문화차를 극복(수용 혹은 무시)하고 소수자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와 가족을 찾아주는 것을 소영은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이 영화의 비밀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다.
남편의 유품, 얼룩무늬 군복
남편의 집을 떠나는 경운기장면에서 유품가방의 내용물을 확인한다. 거기에서 얼룩무늬 군복이 나온다. 60년생 소영의 남편 역시 같은 나이대라면, 특전사 출신이고 광주에 투입된 경력을 가지고 그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이제 소영의 남편이 조현병에 걸려 왜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지 연결이 된다. 강원도 산골 출신의 순박한 남편, 남편의 집에 찾아간 소영을 박대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은 영락없는 광주로 인한 피해자와 그 가족의 모습 그 자체다. 가해자가 되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한 맺힌 죽음을 받아 들일 수 없는 또 다른 희생자의 모습이다, 남편이 그랬고 그의 어머니 역시 그로 인해 지금도 치유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 군복을 입고 아들(손자)이 돌아왔다. 그래서 아들의 죽음은, 소영에 의해 되살아난다. 소영도 사라지고 나면, 그녀의 남편과 함께 그렇게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80년 당시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의 군복은 영화에서 보이는 것 같은 요즘의 얼룩무늬 군복이 아니다. 고증이 잘못된 이 영화의 오점과도 같은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