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이민자 가정이 있다. 늦은 밤 부모가 거실에서 ‘볼레로’ 연주를 시청하고 있다. 선율에 이끌린 어린 딸이 옆에 서자 아버지는 자리를 내주고 같이 시청한다. 화면에는 지휘자의 손이 움직이고 있다.
음악의 세계
이민자 가정의 소녀 자히아와 그녀의 쌍둥이 언니 페투아는 파리의 음악학교에 진학한다. 그동안 자신들이 다녔던 파리 밖의 ‘스탱’에 있던 학교가 빈민 이민자들의 학교였다면, 이제 막 시작하는 이 학교는 부자, 귀족 음악학교다. 인종과 성, 빈부의 차별까지 자히아와 페투아는 그야말로 차별의 종합선물세트를 강제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친구들의 따돌림에서부터 학교대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남학생이어야 한다는 학교의 전통과도 맞서야 한다.
부자학교에 걸맞게, 세계적인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를 초청하여 지휘수업을 받는 현장에서 첼리비다케의 눈에 띄게 되고, 자히아는 그로부터 수업을 듣는 행운을 얻는다. 진짜 음악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가는 자히아.
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은 몸으로 느끼는 것, 네가 원하는 대로 이 오케스트라를 끌고 가는 것, 외운 대로 머릿속에 있는 악보에 연연해하지 말고, 한 발 더 나가라는 첼리비다케의 지도가 자히아를 일깨운다. 토스카니니가 되려고 하지 말고 브루크너가 되라는 말이 자히아의 가슴을 친다. 네가 독학한 그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너는 너 자신이 되라는 길을 보여준다. 스승으로서 첼리디케가 자히아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그것은 열일곱 살의 어린 소녀가 부딪히는 인종적 성적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음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부자학교와 가난한 학교의 연합팀을 꾸린 자히아를 연습 공간의 문제가 가로막는다. 공간을 관할하는 시장과의 대화에서 자히아는 자신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결국 연습공간도 잃고, 학교 대표지휘자에서도 탈락한 자히아는 드럼소리를 따라 몰려든 단원들과 함께 거리로 나선다. 거기에 진짜 음악이 있고, 음악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몸으로 알게 된다. 그것은 스승 첼리디바케의 가르침이기도 하겠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디베르티멘토’가 더 이상 특정 계층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특정 계층을 위한 음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여자가 지휘자가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도 혁파해 버린 일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자히아와 그녀의 ‘디베르티멘토’는 거리의 클래식 음악이 되었고, 거리의 대중들과 함께 하며, 그들과 하나가 된 모습을 모여 주고 있다.
지휘자는 작곡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까지 재현할 수 있는가?
자히아가 첼리디바케에게 하는 이 질문은 모든 창작자를 고뇌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질문이다. 특히 영화는 이 질문으로부터 강한 구속력을 가진다. 원작이 있는 시나리오를 영화화했을 경우, 이것은 누구의 작품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작곡자와 지휘자, 자히아를 가르친 첼리디바케는 당대 모든 지휘자들에게 비판과 악담을 쏟아 낸 것으로 유명했던 지휘자였다. 그 비판의 중심에 ‘음악’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그것을 소화해서 표현하는 지휘자가 있었다. 악보를 보고 그것을 달달 외우며 머릿속에 악보를 복기하며 지휘를 독학한 자히아로서는 첼리디바케 같이 노회한 거장의 말을 이해할 수도 온전히 학습할 수도 없는 처지다. 자히아의 머릿속에 늘 맴돌았던 질문, 악보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건 굴레와 같은 속박, 항상 나를 옥죄여 놓는 공간이었다,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게 바로 진짜 음악이라는 걸 자히아는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디베르티멘토’와 함께!
이런 류의 영화는 한마디로 인간승리의 과정을 보여주는 신화, 고전소설의 세계를 지배하는 영웅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 옛날이야기의 구조가 현대에도 끊이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세상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헤쳐나가기에 척박한, 퍽퍽한 인심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우리 모두는 이제, ‘니’가 영웅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영웅이 되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모두 한 명 한 명이 영웅이 되는 때가 오면, 그 제서야 이런 이야기의 구조는 더 이상 재생산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싸운다. 편견과 차별이 땅거미처럼 스며들어있는 이 구석진 세상의 한켠에도 볕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