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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Sep 29. 2024

한국이 싫어서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개봉 : 2024.08.28.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국가 : 대한민국

러닝타임 : 107분

평점 : 3.0/5.0

관객수 : 35,699명

배급 : (주)디스테이션

원작 : 장강명 원작의 동명 소설

감독 : 장건재

출연 : 고아성(계나 역), 주종혁(재인 역), 김우겸(지명 역), 김뜻돌(미나 역)

수상 :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피곤하다, 일을 하기 싫은 것이 아니다. 출근하기가 답답하고 짜증 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이 멀고 험한 여정이 힘겹다. 집은 인천 원도심, 회사는 강남. 스물여덟, 계나의 출근은 언제나 힘겹다. 그리고 회사에서 부딪치는 업무란 것이 규정과 법률에 어긋난 일을 자꾸 시킨다. 

  집에서 회사까지의 물리적 거리와 불법적 업무 처리는 계나를 불행하게 하는 첫 번째 요소다. 재개발 지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부모님의 삶이 내 짐으로 넘어오고, 7년간 먹여 살려온 남자친구 뒷바라지도 남자친구가 원하는 직장에 입사한 후 그의 부모를 만나면서 이상한 쪽으로 변질된다.     


여기는 어디인가?

  대한민국, 여기서는 그 어떤 사소한 것 하나도 정상적이지 않다.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그런 쪽으로 삶이 쾌적했으면 좋겠다, 질적 변화가 필요하다, 구질구질하고 힘겨운 하루하루의 삶, 취직을 위해 열심히 달려와서 하라면 해야 하는 그런 일을 하는, 그런 직장인으로서 계나는 그동안 겪은 짧은 전생애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그래서 선택한 뉴질랜드 이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계나는 가족과 남자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뉴질랜드로 달려간다. 가족이민이 아니라, 무려 단독이민!

  이런저런 남자들을 겪으며, 계나의 모습은 외국물을 먹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대학원 학위도 따고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자격도 갖춘다. 주어진 시한 안에 이런 모든 일을 다 해낸 계나가, 현지인의 눈에는 놀랍다. 어떻게 그렇게 계획대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을 이뤄 내는지 현지 홈스테이 알선 직원조차 감탄할 지경인 것. 

  한국 친구의 부고, 길거리를 지나치며 밥 한번 사겠다고 약속한 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그가 죽었다. 취준생으로 살다가 결국 세상에서 이슬처럼 사라진 친구, 계나는 전 남자친구를 만나 함께 살자는 제안을 받지만,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간다. 그가 보여준 삶 역시, 자신이 한국에서 살았던 직장인의 삶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계나는, 여기서, 이렇게, 또다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랑도, 가족도 버렸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영화의 다음은 없다. 왜냐하면 계나는 이제 진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고, 자신이 싫어서 버렸던 것들을 제대로 되찾기 위해,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한 길을 다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 대한민국에는 애국심에 불타는 친구들도 있고, 청년의 열정으로 한 몸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친구들, 그러한 업을 하면서도 그 속에서 가치를 찾으며 진지하게 자신을 만들어 나갈 친구들도 있다는 것을 계나는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속에서 자신을 찾지 못한, 계나와 같은 부류들은 먼 곳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선택할지언정 언젠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올 것을 믿게 해 준다. 

  계나가 다시 돌아왔을 때, 대한민국은,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있을까? 아니면 변함없이 그대로일까? 관객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니체가 열어놓은, 신이 부재하는 이 세상이 가진, 그 자체로서의 목적성과 영원한 반복성에서 생기는 내적 모순과 한계점들은 변증적으로 극복될 수밖에 없다. 그런 모순의 고장 속에 함께 있는 내가 그녀와 함께 길을 나설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우리 역시 계나와 같은 한계를 지닌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하나의 개별자인 것은, 그녀가 뚫고 나갈 또다른 여정에 박수를 보내고 응원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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