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의 나라

청년들이여, 자기를 해고하라

by 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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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 2020.01.30.

등급 : 12세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18분

감독 : 정형석

주연 : 송지인, 강두


청년의 자화상, 성혜

주인공 성혜는 취준생이다. 그녀의 남자 친구 역시 공시생이다. 이들의 생활은 막막할 뿐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남자친구는 모텔비가 아깝다고 은근히 경제적 어려움을 내비치고, 성혜 자신은 편의점 알바에 신문배달까지 하고 있지만 생활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친구의 죽음, 고시원 월세가 밀린 상태에서 여기저기 돈을 빌리다가 거절당한 후 고시원 방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성혜 역시 그 친구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빌려주지 못하는 자신의 사정이 더 컸다. 아버지 병원비와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을 감당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성혜는 4년 전, 파이낸스 회사에서 인턴으로 채용되어 근무할 때 과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그 사건을 덮고 갔으면 지금쯤 정사원으로 근무하며 생활고에 시달리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굴뚝같다. 그래서 지금도 무엇보다 분노하는 건, 당시 직원들 중 아무도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 그 상황을 참지 못해 성혜는 스스로 퇴사하고 만 것이었다.

월세를 올려달라고 하는 주인의 사정에 성혜는 달동네를 찾아 올라가 우연히 세를 놓는 집을 발견하고 맘에 들어하지만 월세를 전세로 전환하는 비용이 2억이라는 말을 듣고 좌절한다. 이런 복합적인 사건들로 불면증을 겪고 있는 와중에 청천벽력 같은 전화가 걸려온다. 자신이 맛있는 것 사드시라고 부쳐드린 용돈으로 부모님이 식사 후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경찰의 전화.

성혜를 둘러싼 모든 것들 중 성혜 편인 것은 하나도 없다. 성혜에게 닥친 이런 전반의 분위기를 감독은 흑백화면으로 이끌어 나간다. 그러다가 아주 잠깐, 영화작업을 하는 친구와 천변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에서 흐릿하게 색깔이 들어온다. 보일락 말락한 색깔은 성혜가 마음으로 느끼는 안정의 정도가 그것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흑백으로 돌아가 버리는 화면은 이 영화가 슬프고 절망적인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로 작정한 것처럼 연출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성혜의 선택, 파이어

그러나 영화 밖에 있는 관객의 생각은 다양하다.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청년의 문제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부모님의 사망으로 인해 받은 합의금 5억이 사건을 반전시킨다. 그동안 먹었던 약통 속의 수면제를 싱크대 위로 털어내는 장면은 성혜가 자살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불면의 삶으로부터 비로소 해방되었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돈을 고스란히 연금에 가입해 매달 145만 원씩 40년간 받는 계약을 하고 성혜의 삶은 평화를 되찾게 되고 일상은 여유로워진다.

젊은이들 사이에 파어어족이 유행하고 있다. 유행은 아니라 하더라도, 괜찮은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젊어서 열심히 벌어 목표한 연금 수령액만큼 벌게 되면 가차 없이 은퇴해서, 은퇴한다는 것은 사회적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유롭지는 않지만 자기만의 삶을 살겠다는 삶의 선택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이 영화가 내는 목소리는 청년들이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전 세대에 기여하고 사회를 유지하게 해 주는-사회적 노동을 하지 않고 자기 자신 개인에 침잠해 버리는 삶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청년들을 내몰아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청년 연금수급자의 생활을 선택하게 만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여자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주었고 남자에게는 노동의 수고로움을 주었다는 성경의 이야기에서부터, 영원히 정상을 향해 바윗돌을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고 있는 시지프스 신화에 이르기까지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노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 상황과 같은 것으로 노동을 받아들인지 오래라는 것을 말해 준다.


노동해방, 미래의 나라

성혜에게 5억은 노동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주는 돈의 액수다. 이제 그다음이 문제다. 두 번째 세 번째의 선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고, 조만간 되찾은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길을 걸어갈지,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그녀의 미래를 목격하고 싶다.

원하지 않는 노동으로 인해, 잃어버린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되찾고,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온 성혜다. 성혜와 같은 청년들을 통해 노동해방이 가져올 대격변의 시대가 도래할 것 같다는 반가운 예감이 밀려온다. 다가올 새로운 세상은 인간의 시대였으면 좋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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