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투성이 연인

Birth의 탄생

by 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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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각본 편집 : 유지영

주연 : 한해인(유재이 역), 이한주(김건우 역)

개봉 : 2023.11.15.

등급 : 12세 이상관람가

러닝타임 : 155분

수상내역 : 57회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2023


정미경의 소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 상대를 보호하기 위해 나의 삶이 피투성이가 되어야만 하는 불편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와 아무 관계없이 제목만 차용했다는 유지영의 ‘피투성이’는 서로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처와 고통으로 결별하는, 어차피 처음부터 맞지 않았던 성격적 불편함의 진실을 다루고 있다. 전자의 불편함이 한국사회의 전통적 진실에 속한다면, 후자의 불편함은 파편화된 당대적 진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비교 고찰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아주 많이 불편한 영화

영화는 이제 막 데뷔해서 두 번째 소설을 출간하려는 작가 유재이의 일상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녀가 비건에 비혼에 비출산주의자가 된 것은, 두 번째 작품을 준비하다가 출산과 육아로 인해 문단에서 사라진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자신 또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두 번째 출판이 성공리에 진행된다.

유재이의 동거남 김건우는 초등 영어학원 강사다. 성실하고 인기가 많아 수강생이 늘어가면서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고 원장의 인정을 받아 안정된 직장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그런 둘 사이에 임신이라는 복병이 찾아들었다. 유재이는 단호히 낙태를 선택하고 김건우는 유재이에 대해 이기적이라고 공격하며 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라고 인식해 주기를 당부한다. 건강하지 못한 산모까지 위험해질 수 있으므로 낙태할 수 없다는 병원을 뒤로한 채, 낙태 가능한 병원을 찾은 유재이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절망하며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을 지나서야, 유재이가 임신한 시점에 제목이 등장한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 이제부터 카메라는 김건우를 보여준다. 마치 1부가 끝나고 2부가 새로 시작되는 듯하다. 원장으로부터 인정받은 김건우는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지점의 원장직을 전제로 학원 인테리어도 직접 하며 바쁜 나날들을 보낸다. 출산으로 인해 생계비가 늘어날 것에 대한 대비이자 알지 못할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지원해 주는 원장을 위해, 무엇보다 자신-유재이와 태어날 아이-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

화면은 둘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임신이라는 현실을 매개로 서로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표출한다. ‘나는, 나는? 나는!’을 내뱉으며 돌파구 없는 현실을 고조시킨다. 둘은 이런 조건하에서 절대로 화해할 수 없음을 각자의 감정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적 현실과 극도의 이기성이 출산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재이는 탄생(Birth)이라는 소설을 천신만고 끝에 완성하지만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이참에 자신을 돌아보고 쉬면서 출산에 전념하는 것이 어떠냐고 조언한다. 그러나 유재이는 그럴 수 없다. 자신은 글이라는 자아로부터 물러설 수 없다는 것, 결코 현장에서 타의에 의해 물러설 수 없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다. 현장에서 사라진 선배들, 차올라오는 후배, 유일한 현장 지지자였던 여교수의 돌연사를 겪으며 유재이의 과거와 미래가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는 심리적 불안의 극한을 보여준다.

원장은 새로 뽑은 버클리 출신의 선생에게 지점을 맡기겠다고 은근히 떠들고, 통장에 월급이 입금되지 않은 사실을 안 김건우는 같은 방식으로 잘려 나간 동료 교사를 떠올리며 원장에 대한 항의가 폭행으로 발전하여 구속되는 사태에 이른다. 같은 시각, 유재이는 출산을 위해 병원에 입원한 상태, 아이는 사산되고 만다.

유재이라는 ‘나’만의 세계에서 출발한 영화는 다시 ‘나’만의 세계를 상징하는 노트북의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되며 암전 된다. 생명 하나의 탄생이 마감한 자리에 새로운 영혼의 탄생을 예고한다.


성격 커밍아웃

이 영화가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의미적 요소는 두 가지다. 첫째는 유재이의 성격, 그녀의 이기성, 그로 인한 거부감과 불쾌감, 출산관은 전적으로 자신의 삶에 국한된 편협한 가치관에서 출발한다. ‘이기적이면 안 돼? 내 몸이야!’라는 말은 왜 그녀가 결혼하지 않는지, 결혼하지 못하는지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대사다. 그녀 스스로 이기성 자체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노출시킨 상태에서 세상의 제1번은 자기 자신이라는 가치관에 입각해 있다. 이것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본질이며, 정체성의 근간으로 작용한다. 감독의 정체성이기도 한, 이 적극적 이기성은 마치 사회적 소수자가 자신을 커밍아웃하듯, 자신의 성격을 과감하게 커밍아웃하는 캐릭터를 감독은 성공시키고 있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는 공동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없다. 국가, 민족, 사회, 가족을 이루는 공동체 개념은 이런 그녀의 이기적 사고 속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적대적 관계에 놓이는 반대편의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특수한 캐릭터인 유재이가 빛을 발하는 이유는, 김건우, 원장, 편집자 등 기타 인물들이 모두 보편적 가치를 지닌 선악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재이라는 비난의 중심에 선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등장인물을 창출해서 성공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보편적 인물의 군상 속에 극단적인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유재이라는 특수한 인물이 더 이상 특수가 아닌 보편 속에 존재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보편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다. 이것이 출산율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이 영화는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두 번째로 사회구조적 모순을 거론해야만 한다. 출산하지 못하게 하는,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한국 사회의 사회구조적 모순, 이것은 이 영화에서 감독이 보여주려는 것과 관객이 보는 것과의 괴리를 만들어 낸다. 어쩌면 사회구조적 모순보다 더 직접적인 인간에 대한 배신을 제시함으로써 결과에 대한 뻔한 원인 제공에서 탈피하려는 감독의 의도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배신당하는 개인의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생명과 생존

결국 한국 사회는 사회가 만든 비정상적 괴물에 의해, 다시 괴물을 탄생시켰고, 그 괴물이 자기 보존이라는 생존 본능에 따라 극도의 이기적 인간 유형을 만들어 냈다. 사회적으로 가장 유약한 존재, 어떤 제도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 밑바닥의 존재, 그들이 ‘여성’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지키려고 무장한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비혼, 비출산, 비건이라는 무기들이다. 그들의 행위를 더 이상 가볍게, 혹은 가소롭게 여겨서는 안 되는 지경에 왔다는 것을 ‘우리’는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나’이면서 ‘너’인, ‘우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넘어, 생존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여자와 그러한 여자들 앞에 우리는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걸 왜, 당사자만 목숨 걸어야만 할 일인지 깊이 숨을 들여 마시며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생존한 여자만이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카메라의 눈

영화 예술의 근원적 요소는 그림에 있다.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카메라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단 한 번도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정물화를 보듯 관객은 앵글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면서 화면 안의 배치가 썩 완성되어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변화가 없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거기에 배경음악도 없다. 원 쇼트나 원 테이크가 예술영화의 촬영기법을 상징한다면, 이렇게까지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킨 감독의 의도에 의문을 가진다. 초보자인가 초월자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모든 걸 다 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간 초심자인가?

환경 다큐를 찍는 카메라 앵글이 그렇다. 내 영화는 드라마가 아니므로 다큐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변하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다 대사까지 드라마틱하지 않다. 또 거기에 더해 어두운 현실을 표현하기에는 조명도 일상의 조도를 뛰어넘어 너무 밝은 톤이다. 애초에 155분까지 갈 필요 없는 스토리지만 끝까지 관객이 같이 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내용적이면서 동시에 형식적인 불편함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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