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온 편지

딸들의 자화상

by 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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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 2023.12.06.

국가 : 한국

장르 : 가족/드라마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시간 : 102분

감독 : 김민주

출연 : 차미경, 한채아, 한선화, 송지현



엄마와 세 자매가 있다. 딸들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도 남들처럼 잘 살았고, 지금도 세상에 대해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지금도 어머니의 과도한 보호와 등쌀로부터 벗어나 자신들의 삶을 맘껏 살고 싶은 딸들이다.

영화는 소설을 쓰고 있는 둘째 딸 혜영의 시점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소설가 소설처럼, '소설가 영화'다. 첫째 딸 혜진은 옷 가게 매니저, 셋째 딸 혜주는 춤으로 성공하고 싶은 고등학생이다. 이들의 모든 일상은 아버지가 부재한다는 것 외에 평범한 집안 풍경이다.


삼대, 가족연대기

어머니 화자(花子)의 이름은 원래 일본 발음으로 하나꼬(花子)였다. 그녀는 재일 조선인의 딸로 그녀의 어머니가 일본인이었던 것. 조선인 차별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딸만 데리고 밀항하여 지금의 집, 부산 영도에 정착해서 산 것이 지금까지 사는 화자의 생애 내력이다.

화자는 평생을 어머니 없이 살았고, 일본을 떠나온 후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화자가 도시락 봉사하는 동네 할머니가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말에 화자는 ‘할머니보다 더 멀리서 왔다’고 말한다. 이북에서 내려와 영도에 정착한 할머니 자신은 고향이 이북이라 갈 수도 없는 신세지만 언젠가 꼭 가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듣고, 화자의 마음속에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어머니가 사는 고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본 여자를 떠나온 아버지, 그 밑에서 일본인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지금도 전전긍긍하는 화자, 그리고 자신들의 삶이 안 풀리는 이유가 고집스러운 엄마 때문이라는 원망에 갇혀 사는 세 딸들. 그래서 이 영화는 과거의 세부를 완전히 삭제한 후 현재의 얼굴에 초점을 맞춘 삼대에 걸친 연대기인 셈이다.


기억, 교토에 가고 싶다

화자의 기억은 자꾸 가물거린다. 남편의 제사상에 영정을 올리지 않은 일부터, 혜영이 좋아한다고 믿는 단감을 잔뜩 사 온 냉장고의 채소칸에 이미 단감이 한가득 채워진 것(단감을 좋아하는 건 언니고, 자신은 홍시를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이 것마저 화자는 기억에 없다.), 봉사센터부엌에서 조리 중 솥을 태워 먹어 화재가 날 뻔한 일, 대문 열쇠를 손에 쥐고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착각하고 혜영에게 전화해서 언제 들어오냐고 묻는 일 등은 이 가족의 이야기 전체에 걸쳐 지배적 복선을 깔고 간다.

화자와 세 딸은 화자의 어머니가 보내온 편지의 주소를 찾아 교토로 간다. 그곳은 정신병원으로 남아있고, 이미 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병원에 없다. 허탈한 심정으로 돌아 나온 병원의 정원 벤치에 앉은 딸과 화자, 기념사진을 찍게 되고, 그 사진은 화자의 어머니가 단체사진을 찍어 보낸 장소와 일치한다.

그런 연유로 화자의 핸드폰 바탕화면에 깔린 가족사진을 보고 우리가 언제 이런 사진을 찍었냐고 혜영에게 묻는 일 등은 세 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상승 기제로 작용한다. 그와 동시에 한 세대의 기억을 마무리하는 가족사의 마침표에 해당한다. 그렇게 화자는 자신의 어머니와 연결되고 잊혀 가는 존재로 그녀의 삶은 정리된다.

화자 자신도 그동안 버리지 못한 물건들을 정리한다. 거기에는 어렸을 때 일본에서 부쳐온 어머니의 선물들이 대부분이다. 혜영에게 화자는 물건들을 만지며 혼잣말하듯 이야기한다.

사랑하게 되면 만지게 된다. 추억은 만질 수 없으니까...

화자가 소중하게 간직한 기억도 함께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화자의 삶도 사라져 갈 것이다.


남성 부재가 만든 여성의 주체성

3대에 걸친 화자 가족의 연대기는 이제 시작이다. 엄마의 극성과 질긴 모성애에 굴복한 혜진의 삶이 다시 시작되고, 엄마와의 끝나지 않는 싸움을 피해 서울로 올라가 독립해 버린 혜영, 이 집이 답답하고 싫어 아무도 몰래 춤을 배우며 서울행을 꿈꾸는 막내 혜주까지 모두 자기 삶을 찾아 행복한 얼굴들이다. 그동안 아버지 부재가 가져온 결핍은 각자 삶의 독자성으로 정착한다. 그들은 집안의 무엇이 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신이 된 것뿐이다. 이 모습이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혜진보다, 화자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언니를 비난하는 타인으로서의 혜영보다, 무조건적 탈출을 꿈꾸는 혜주보다 훨씬 공동체적이다. 가족이 존재하는 이유는 구성원의 삶을 건강하게 보장하는 테두리에서 가능하다.

문제없는 가정은 없다고 했다. 내 삶의 문제거나, 가족 누군가의 문제거나 우리는 가족 없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마음속에 늘 있는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나, 자식된 삶이 잘 풀리지 않는다거나,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하는 빚진 마음을 감추고 살고 있거나 할 때,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고 솟구치는 울음을 쏟아보기를 바란다. 한번 울고 나면 관계는 더 깊어지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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