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기억하는 법
정세미와 김하은, 두 여고생은 서로 절친이다. 하은에 대한 세미의 집착 정도가 심해진다. 그것을 세미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를 남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그 어떤 관계보다 절대적 1순위에 두는 것, 세미는 사랑이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일방적일 때, 상대는 피곤하고 꺼려진다. 그 시절의 아이들에게 세상은 온통 사랑이다. 그래서 그 사랑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하은에 대한 애정을 또 다른 절친 다애가 지적하며 맞선다. 너 때문에 하은이가 얼마나 힘든지 너는 아냐는 것이다. 세미의 사랑이 흔들린다.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수학여행 전날, 하은은 수학 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캠코더를 팔아야 하는 일에 엮인 스토커 문제, 하은의 애완견이 죽어 그 슬픔이 얼마만 한 것이었는지 세미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타인의 경우를 접하고 이해하게 되는 세미, 하은의 잠정적 실종을 해결하기 위해 한꺼번에 나서는 학교 친구들의 모습, 그들의 삶은 좋아하든지 미워하든지 둘 중 하나의 감정 속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세미의 일방적이고 이기적이었던 사랑이 깊어지는 하루가 저물어간다.
너와 나는 서로를 바꾸어도 같은 사람이다. 자신에 대한 현신은 둘이 아니다. 잠에서 깨어난 세미가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하은이 되는 것은 그래서 전혀 이상스럽지 않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종교적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영화가 아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역설한다.
서라운드로 녹음된 극장의 스피커들에서 돌아가며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말할 줄 모르는 앵무새에게 세미는 ‘사랑해’라고 말한다. ‘사랑해’가 객석 여기저기서 속삭이듯 들리기 시작한다. 관객에 앉은 우리가 극 속의 세미와 하은에게 낮게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린다. 실제로 객석의 누군가가 속삭이는 듯하다. 그중 한 명이 나인 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나’이면서 ‘너’인 존재들이 객석을 가득 메운다.
헤어지기 싫어하는 둘의 작별, 장례식장 쪽으로 사라지는 세미, 우연인 일은 세상에 없다.
꿈은 현실과 반대라는데, 꿈속의 숲 속에서 죽은 모습으로 누워 있던 하은이 현실에서는 세미로 바뀐다. 그리고 하은이 속에는 세미가 들어있고, 그 둘은 하나다. 너와 나, 우리 둘은 결국 하나였던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둘의 사랑이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 역시,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보듬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설사 자신의 존재를 브레히트처럼 생각할지라도 말이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던 것을.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제 막 말을 흉내 낼 줄 아는 앵무새처럼, 우린 속삭이듯 중얼거리듯 말해야 한다.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사랑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다. 4.16이라는 숫자와 304라는 숫자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의 가슴속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 영원의 숫자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