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암흑기, 혹은 거미집, 한국 영화

by 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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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매너가 주는 이즘

감독의 작가주의가 지향하는 지점, 그것은 정말 개인적 예술혼일 뿐인가, 하는 문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영화가 나왔다. 다시 말해, 작가주의는 개인적 소신과 취향에 지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는 근거가 '거미집'이라는 것이다. 예술이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는 현실의 반영에 지나지 않고, 인간적 관계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삶의 테두리 안에 갇힌 예술의 사회적 한계를 규정짓는 영화다.


총체적으로 망한 영화

한국적 서사 전개라는 것이 보여주는 막장식의 극단도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즉, 이야기 구조가 가지는 비현실적 대립구도가 만들어내는 현실은 관객으로 하여금 놀라움의 감탄을 자아내게 할 수는 있겠지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공감과 연대의식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만든다.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의 후련함도 없고, 희극이 주는 페이소스도 없이, 이 영화는 복잡한 장르적 속성을 망라하여 어느 것 하나 도드라지게 성공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특징을 보여준다.


미장센, 배치 의도의 의미

이 영화의 미장센 구조는 시간과 공간의 분리와 뒤섞임에 있다. 먼저 후경은 흑백처리되어 나타난다. 70년대적 영화라고 해 두자. 70년대적 영화 현실은 감독의 시점으로 완성된다. 감독과 스태프들은 영화를 찍고, 그것의 완성된 편집본은 감독의 시각으로 영상으로 상영된다. 이 영화를 둘러싼 70년대적 현실-영화사의 스태프들, 문공부의 직원들, 영화라는 상품을 둘러싼 정치와 제도-이 미장센의 후경을 차지한다.

중경은 무엇인가. 그건 영화(김열 감독이 만드는 영화)를 보는 우리들, 관객의 시점이다. 과연 감독이 시나리오를 변경해 가며 찍으려는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질 것인지, 그것이 어떤 영화로 탄생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는 시점이 지금 현재의 시점으로써의 중경에 해당한다.

후경이 시간적으로 과거이고 공간적으로 영화세트장이라고 한다면, 중경은 지금 현재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의 객석이 있는 현재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하나 남은 미장센으로써의 시공, 전경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진짜 눈앞에 있는 것, 감독(김열이 아니라 김지운)이 보여주려고 하는 진짜 현실이 바로 전경에 해당한다.

김지미가 누구와 살림을 차렸다든가, 신상옥의 영화철학이 어땠다든가, 어떤 여배우의 사생활이 난잡했다든가, 김기영의 영화를 기반으로 했다던가 하는 미장센을 구성하는 배경들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하는 일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스캔들을 만들어 낼 만큼의 요소이긴 하겠지만 이런 개칠 같은 요소들은 시대적 개연성을 보장하기 위한 보조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후경으로 날려버려도 좋다는 얘기.


김열이 걱정하는 관객의 미래

폭소를 터트리기에는 너무나 웃음이 없고, 심오한 주제 의식을 찾기에는 그 깊이가 얕고, 너무나 가벼운 풍자가 역사적 사실의 무게를 덮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미집은 성공적이다. 전경에 드러내 보여주고자 한 것, 이 영화가 반공영화가 아니라, 위대한 걸작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관객들의 코 앞에, 전경에 감추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혼란스럽게 뒤얽혀 숨어 있었던, 배반 이기 질투, 계급 간의 갈등이 탐욕에 의한 잔인한 복수로 바뀌는 시나리오, 한 마디로 말하면 생존본능이 인간을 결합시키고 발전시켜 왔다는 드러내놓지 못하는 사회의 현실과 동물적 본능이라는 인간의 태생에 대해 탐구하겠다는 것이다. 김열이 말하는 위대한 걸작은 관객들의 미래를 제시하는 데 있다.


콘텍스트적 전경

이렇게 거미집의 전경은 너무나 가까워서 ‘볼 수 없는 전경’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들, 관객 너머에 존재하는 콘텍스트(context)를 읽게 하는, 콘텍스트적 전경이 존재한다. 예술영화의 전유물이라고 말하는 플랑세캉스(롱테이크)를 고집하는 감독이 검열당국에게 자신이 고친 시나리오가 정치적이지 않다고 극구 말하는(변명하는) 것은 페이크다. 김열 뒤에 있는 김지운 감독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숨겨놓은 전경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앞 문장의 주어 ‘그’는 ‘김열’인가 ‘김지운’인가?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이 영화에 대한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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