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이타적 존재들의 존재방식

by 별사탕


감독 : 이미랑

출연 : 오인애(엄마 역), 허진(이제희),

임세희(그린 역), 하윤경(레인)

개봉 : 2024.09.04.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국가 : 대한민국

러닝타임 : 106분

배급 : 찬란

원작 : 김혜진의 동명소설

수상내역

2024 26회 정동진독립영화제(땡그랑동전상)

    12회 무주산골영화제(감독상)

2023 49회 서울독립영화제 CGK촬영상

(촬영감독조합상), 장편 관객상)

    28회 부산국제영화제(올해의 배우상,

CGV상)


엄마는 요양보호사로, 치매초기의 할머니를 전담하고 있다. 힘들고 고달픈 생활이지만 어르신 돌봄에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 하고 있다. 할머니의 이름은 이제희, 그녀는 한때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그들의 자활을 도운 명성이 있는 유명인사였다. 자신의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운영하했고 지금도 그 장학재단에서 후원을 받아 요양비에 충당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희 할머니가 후원이 끊겼다는 이유로 시골의 시설로 옮겨지고, 엄마는 그 주소를 알아내서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온다. 가족도 아니면서 왜그러느냐는 말을 들으면서도 ‘당신 가족이라면 이렇게 하겠느냐’는 말과 함께 굳이 집으로 모셔온 것이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엄마의 딸은 대학에서 강사생활을 하고 있다. 살고 있던 방의 보증금을 까먹고, 집에 들어와 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와 함께 들어왔다. 7년째 딸은 여자와 동거생활 중이었기 때문이다. 딸은 같은 이유로 대학에서 강사자리에서 해고된 동료를 돕는 시위에 참가해 해고의 부당함을 외치며 대학 당국과 싸우고 있다.


니 일도 아니면서

엄마는 비참하다. 그렇게 키운 적도 없는데, 동성애자가 되었고, 남의 일에 나서서 싸우다가 병원 신세도 지는 딸, 자기 보다 더 많이 다친 선배를 위해 소리내 우는 딸이다. 딸의 여자친구 레인에게 말한다. 이 다음에 더 많이 나이가 들게 되면 반드시 후회한다, 나처럼 되지 말라고, 나처럼 혼자가 될까봐 겁이 난다고, 내 딸이 그렇게 될까봐... 무서웠다고 한다.

넌 내 딸이니까

엄만 날 키울 때 아닌 건 아니라고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엄마가 그랬잖아. 왜 남의 일에 나서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다그치는 엄마의 말에 대한 딸의 답이다. 남의 일이 언젠가는 나의 일이 될테니까. 이건 엄마가 닥치고 있는 현재 상황과 같다. 엄마가 멈칛 하는 이유다.

넌 내 딸이니까... 그냥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 이 모든 엄마의 희망은 온통 딸의 삶에 집중되어 있다.

엄마의 사랑, 모성애는 동물적이어서 본능적이며, 그래서 이기적이다. 딸의 몸은 내몸과 같은 것이라서 정확하게 이기적인 것이다.


이타심이라는 본능

따지고 보면, 엄마가 이제희 할머니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행위나, 이제희 할머니가 평생에 걸쳐 남을 도우며 산 행위는 모두 이타심으로 설명된다. 딸 그린의 행동 역시 이타적이다. 남을 위해 시위에 나서서 함께 싸우는 것만큼 강한 이타심이 어디에 있겠는가. 엄마 역시, 이제희 할머니를 위해 발벗고 요양원과 싸우는 행위는 딸의 행동방식과 판박이라고 할 수 있다.

리차드 도킨슨의 말대로 생물의 모든 이타적 행위 자체는 자신의 유전자 사본 보존을 위한 이기적 행위의 실현 형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선한 영향력은 아름답게 보인다. 유방백세라고 했던가, 이들의 아름다운 이름은 후세에 길이 남아 역사적으로는 만인의 본보기가 될 것이요, 개인적으로는 타인의 귀감이 될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유전자는 보존될 것이다. 따라서 이타심은 이기심의 실현 방식이다. 생존방식이란 뜻이다.

약자의 생존방식

이제희 할머니, 엄마, 그린과 레인, 이들 모두는 버림받고 소외받는 사람들이며 약자가 되어 있거나 최소한 약자가 되어 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모두 엄마의 집에 모여 산다. 타인이었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이전보다 더 많이 웃으며 마주 보며 산다. 이제희 할머니의 초상을 치르는 빈소 한쪽 외딴 방에서 엄마는 누워서 생각한다. 딸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게 이거 밖에 없어서

소수자들의 선택권은 없다. 엄마와 같은 반대편의 사람들이 막고 있는 그것들을 못하게 하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이거 밖에 없어서, 함께 사는 거예요.

반대편에 있는 우리의 의식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다면, 그들이 우리에게서 느끼고 있는 선택권의 박탈이라는 문제를 반대로 적용해 보고, 우리가 무엇을 더 열어주어야 하는지 고민해볼 일이다. 그들에게 우리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될테니까.


남는 문제

딸과 엄마의 스토리가 더욱 풍성하게 묘사되었다면 이야기가 균형감을 갖추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엄마의 삶과 딸의 삶이 너무 동떨어져 있어 두 사람의 교집합적 요소가 부족해 치열해야할 주제가 부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각본의 문제인지 원작의 문제인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잘라버린 편집부분이 있다면 이어붙일 일이다. 그러면서도 딸의 울음에 함께 울음이 복받치는 감정의 전이는 이 영화가 스토리에만 중점을 두지 않았다는 느낌 또한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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