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는다

무너져 버린 사연

by 별사탕



감독 김귀민, 이미현, 최은지

런닝타임 103분

제2회 한국예술영화관협회 어워드 대상

2024 전주국제영화제 쇼케이스 상영


연대하지 않은 시민

다큐의 생명은 사실의 전달일 것이다.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가 표현영역으로 넘어와 관객을 사로 잡게 된다. 그것은 카메라와 피사체와의 거리 조절, 각도의 결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면서도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적용되기도 할 것이다. 보도 사진의 생명이 현장의 순간포착이라고 한다면, 다큐 필름의 생명은 의미화되는 역동적 시퀀스가 아니겠는가. 중간 중간에 핸드폰 영상이 삽입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들 제작진이 현장의 생생함을 넣기 위해 애쓴 흔적이라거나, 밀고 당기는 몸싸움의 현장에서 안정된 카메라의 시선같은 것들을 보면, 이들 제작자들이 너무 안일하게 사고한 게 아닌가 싶은 우려까지 들게 만든다. 의도 되고, 만들어진 영상에 가깝다는 평가절하의 인상.

또한 내용상의 치명적인 결함은 극의 흐름속에서 스쳐 지나가지도 않는 텅빈 배경으로 자리한 주인공 부재현상, 동조 세력의 부재에 있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인상을 준다. 시위에 나선 청년들의 면면이 강사, 센터의 직원 등이다. 이것은 붕어빵을 틀에 넣고 찍어서 완성했는데, 정작 먹어보니, 아차, 팥을 안넣었네, 이런 심정과 같다. 한마디로 동지 세력 규합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예단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연대 없는 행동은 정의로울 뿐, 성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목소리는 크지만 울림은 없다.

뼈아픈 실패, 원주 아카데미의 철거라는 폭압적 결과를 낳은 원인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치명적으로 보인다. 왜 이들 젊은이들의 투쟁에 시장 상인들은 합세하지 못했는가, 왜 원주 시민들은 시장의 불법 행위에 대해 대거 일어서지 못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어야 한다.


옴니버스, 세가지 버전의 아카데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성공하고 있는 부분은 옴니버스식 구성을 갖추고, 관객들에게 스토리로 다가가고 있다는 작가 의식이 돋보였다는 점 때문이다. 이 점은 스토리 구성적 요소로 판을 잘 짰다는 것이지, 다큐 자체가 좋았다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첫 화면에 등장한 김귀민 감독의 ‘시민귀민’에서는 투쟁과정을 통해 왜 아카데미극장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지 그동안의 과정을 알 수 있고, 왜 철거 골조 위로 올라가 농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지 관객들에게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번째 이미현 감독의 ‘아카데미에서 만난’ 부분은 충격 그 자체의 화면으로 시작한다. 극장이 철거되어 하얀 눈이 내린 장면이 첫 장면이기 때문이다. 왜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작자들의 너무도 여린 마음씨를 보는 것 같아 더욱 가슴 아픈데, 철거 반대 투쟁을 했던 이들의 가슴을 ‘무너뜨리는’ 충격과 분노의 감정을 무너지는 영상을 통해 되새기고 싶지 않았다는 이미현 감독의 발언에 깊이 공감되는 바가 컸다.

이렇게 한 순간에 사라진 아카데미 극장의 시간이 과거로 돌아간다, 지난 60년 동안 닫혔던 공간이 활동가들의 손에 의해 열리고, 사람들은 희망찬 얼굴과 손길로 극장을 쓸고 닦으며 극장의 과거를 현재로 소환한다. 열성으로 가득 채워진 이 장면들에서, 이 극장이 왜 사라져서는 안 되는 공간이었는지 다시 한번 관객들을 일깨워준다.

마지막을 장식한 최은지 감독의 ‘노란 텐트’ 부분은 원주 미디어 센터의 일개 강사였던 자신이 어떻게 시위에 동참하게 되었는지, 이 시위와 농성이 어떻게 끝나는지 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마지막이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최후의 시위자 1인이 경찰에 의해 들려 나가고, 도시의 유령처럼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이 희망의 풍선을 공중에 띄워 들고 원주 시청을 향해 행진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청춘에게 남겨진 분노

현재, 과거, 미래로 이어지는 기획으로 스토리가 구성된 이 영화가 말하는 것, 영화가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야 하는 것, 그것은 이들에게 다가올 내일이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미래는 무얼까? 놀랍게도 원주시장이 시위 당사자들을 고발하여 줄줄이 소송에 걸려있다는 이야기는 현재진행의 충격이면서 동시에 약지 못한 이들의 불안하고 불행한 미래다. 고작 이십대에 이런 불법행위에 대한 경험을 당해야하는 대한민국의 문화정책 현실에 함께 분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우리 모두의 문제를 미리 당겨 보는 것 같은 대한민국 미래를 미리 보는 다큐멘터리다. 아카데미극장이 주차장으로 변한 것이 먼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가 근대문화유산으로써의 애관과 미림을 가진 인천시민들에게도 많기 때문이다.

잊지 않으리라, 기억저장소에 남겨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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