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실이는 복도 많지

꽃처럼 돌아온

by 별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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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김초희

출연 : 강말금, 윤여정, 김영민, 윤승아, 배유람, 최화정, 이영진

러닝타임 : 96분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판타지



사는 게 지치고, 뜻하지 않은 막다른 골목을 만났을 때, 빼박의 상황에 그 자리에서 죽치고 앉아 있어야만 할 때, 생각한다. ‘왜 내게 이런 일이?’,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에게?’ 사실 이런 상황과 맞닥트렸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럴 때, 내가 앉은 자리에서 내 몸에 대해 유체이탈을 시도하면서, 생각 없이 흐르는 물을 보듯 물끄러미, 쳐다보면 딱 좋은 안성맞춤 영화가 ‘찬실이는 복도 많지’다.


일반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은 허술하고 뭔가 엉성한 화면전개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구성과 극전개가 이 영화의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냥 설렁설렁 만든 것 같은 빈틈이 많이 보이는 것 같은 영화, 그건 실재 우리의 삶이 그렇다는 데서 오는 감독의 선택이다. 의도적이지 않고, 인위적이지 않은 것, 그게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고 그게 영화가 되어야 한다는 감독의 인생관이자 영화관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4:3의 화면비에서 출연배우들의 이름이 보이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스토리가 전개되는 시점에서 16:9의 비율로 확장된다. 관객은 객석(현실)에서 영화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코메디의 한 장면처럼,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영화감독이 죽는다. 감독(김초희)은 이 영화를 한 순간에 선장 잃은 배로 만들어버렸다. 감독에게 목숨 걸고 살아가던 피디 '찬실'이 졸지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신세가 된다. 직업도, 집도, 그녀의 삶 전부가 무너져 내리게 된 것이다.

찬실은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달동네 단칸방으로 이사를 오게 되고, 집주인 할머니(윤여정)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할머니가 굳게 닫아둔 방(죽은 딸의 방)에서 나온 장국영 '귀신'을 만난다. 또한 전에 함께 했던 배우 소피의 집에서 불어강사로 일대일 개인교습을 하는 김영을 만난다.

감독이 돌연사한 후, 찬실이가 만나는 존재들은 찬실의 삶을 일깨워준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잃어버린 진짜 자기를 찾게 하고, 관계의 진실을 깨닫게 만들어준다. 영화를 포기한 순간, 영화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다. 결국 찬실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어 극장에서 상영하게 된다.

찬실이 제작한 영화의 와이드 스크린 화면이 바깥 공간으로 확장되고, 객석에 러닝을 입은 장국영이 앉아 있다. 영화가 끝나고, 유일한 관객인 장국영이 일어나 객석을 나간다. 극장은 텅 빈 채 남는다. 이것은, 영화 속에서 현실의 세계->영화의 세계->현실의 세계를 순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영화라는 예술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의 세계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 영화가 의미하는 것,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소위 말해 메타픽션의 세계, 허구를 둘러싼 극장 안의 세계는 다시 극장 밖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영화와 현실, 허구와 실재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처럼 무한 반복되고 있는 형국이다. 거울 속의 나를, 거울 밖의 내가 보고 있고, 다시 그것을 보는 내가 존재하는, 하나의 현상이 무한반복되는 기묘한 진실의 발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클라인의 병처럼 안과 밖, 겉과 속이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주의 실체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그렇다는 데, 동의하고 있는 연출이다. 사실과 허구가 구분되지 않는 세계, 시작과 끝이 무한 반복되고 있는 것, 끝나는가 싶더니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삶에 대한 형식적 접근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삶에 붙어 있는 죽음 같은 것, 죽음 뒤에 오는 삶에 대한 형식적 접근인 셈이다. 그래서 절망이 새로운 희망이 되고,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 새로운 출발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찬실의 삶은 다시 시작된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임제록에 나오는 구절로, 어딜 가나 주인이 된다면 가는 곳 모두가 참될 것이라는 말이다. 찬실이 자신의 참됨을 찾기 시작하는 단초가 되는 발견이다.


외로운 건 그냥 외로운 거예요.

김영을 사랑하게 됐다고 혼자만의 상상에 빠진 찬실에게 장국영귀신이 들려주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착각에 빠지게 하는 몇 가지 오류 중 하나를 정확하게 밝혀준다. 찬실은 모아놓은 영화잡지와 DVD, 비디오를 버린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무언지 찬실은 알고 싶은 것이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집주인 할머니가 죽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쓴 시의 구절이다. 아름다운 마음의 표현인 셈, 이건 찬실의 속마음, 속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과 같아, 찬실이 울음을 터트리게 된다. 그렇게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버리려고 했던 영화 관련 물건들을 다시 방으로 들여오게 된다.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다.

영화를 시작하게 만든 영화, ‘집시의 시간’을 돌아보며 찬실은 영화를 다시 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내고, 장국영 귀신은 찬실의 곁을 떠난다.


믿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화가 나고 답답할 때 찬실은 큰 대야 속에 서서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물에 잠긴 옷가지를 마구 짓밟는 발빨래를 한다. 이 영화는 여성감독에 의한,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여성의 감성이 지키려고 하는 것, 사랑에 대한 각성, 사람에 대한 그리움, 사랑(일)을 잃고 살아가야만 하는 퍽퍽한 세상에서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사는 법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누구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 삶도 모두 함께 가는 것이다.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온 카메라가 하얀 눈 들판을 달리는 것처럼, ‘믿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을 다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달님에게 기도하는 찬실을 응원하며 ‘함께 가는 사람'의 마음으로 영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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