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먼 곳

그곳

by 별사탕


정말 먼곳.jpg

감독 박근영

각본 박근영

제작 박근영, 장우진, 허승

프로듀서 박은성

출연 강길우, 홍경, 이상희, 기주봉, 기도영, 최금순, 김시하 외

촬영 양정훈

조명 홍초롱

편집 박근영

음악 김자현

미술 박혜정

동시녹음 김기남

음향 이주석

시각효과 박수연

조감독 이상혁

제작사영화사 행방, 봄내필름, 찰나

화면비 1.78:1

상영 시간 115분

상영 등급 12세 이상

수상

2021년 제39회 아웃페스트 로스앤젤레스 LGBTQ 영화제

제10회 프랑크푸르트 한국영화제

제16회 파리 한국영화제 - 관객상 수상

2022년 제36회 BFI 플레어: 런던 LGBT 영화제

제9회 들꽃영화상 - 신인배우상 수상



영화는 양털을 주시하고 있는 데서 출발한다. 카메라가 양털의 오른쪽으로 옮겨가면서 양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진우가 양털을 깎고 있고, 양 한 마리가 노환으로 죽는다. 죽은 양을 땅에 묻으며 진우의 일상이 시작된다.

화면은 시종일관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다. 그러니 일상의 장면들은 롱테이크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관찰자의 시점, 그래서 감정도 일정하게 담담하다.

진우는 어린 딸을 키우며 양목장 일을 하며 강원도에 살고 있다. 현민이 찾아온다. 반가움의 포옹이 심상찮다. 친구라는 현민은 사실은 진우의 연인이다. 동성연인.

현민이 오고 나서 진우는 잃어버렸던 옛 모습을 찾아가는 듯하다. 쌍둥이 여동생 은영이 찾아온다. 진우의 딸 설이는 사실, 은영이 맡겨놓은 딸이다. 이때부터 진우의 삶이 뒤엉키기 시작한다. 은영에 의해 진우와 현민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진우는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기 시작한다. 현민 역시 시작법을 강의하는 마을 성당에서 퇴출당한다.

목장주의 어머니(명순)가 치매에 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그녀가 남기고 간 것, 이 목장에 모인 타인들에게 대모와도 같은 역할이다. 죽기 전 각성의 단계에 접어든 명순이 멀쩡한 제정신으로 차려놓은 밥상, 모두 함께 밥 먹는 모습은 여느 대가족의 밥상 풍경과 다르지 않다. 가장 어린아이 설이와 가장 나이 많은 명순이 보여주는 삶과 죽음의 교차점, 이것은 이 영화가 단지 퀴어 영화가 아님을 암시한다.

목장을 떠나기로 한 진우가 목격하는 마지막 장면, 새끼양이 탄생한다. 이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이 영화 최초의 장면, ‘양털장면’ 클로즈업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 양은 죽어가던 양인가, 아니면 새 생명을 탄생시키려던 양인가?

서사의 흐름에 따르면, 노환으로 죽어가던 양이 맞겠으나,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진다는 생명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것은 잉태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양의 죽음과 탄생, 설이와 명순의 어우러짐, 그 끝에 동성의 자격을 가진 ‘사랑’과 ‘연민’이 존재한다. 이를 모두 포괄하는 것, 그것은 명순이 차려낸 밥상처럼, 타인들이 만들어낸 ‘가족’으로 초점이 맞춰진다.

진우는 양의 출산을 지켜본다. 카메라는 내려다보는 진우를 보여주고, 세상밖에 나온 어린양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성당에 걸려있던 예수상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채 찬양의 몸동작을 하고 있다. 이건 마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면서 ‘다 이루었다.’고 혼잣말을 하는 것에 버금가는 동작이다. 고통을 통해 환희를 느끼는, 예수가 하늘의 뜻을 알고 세상에 전하는 복음과도 같은 동작으로 하늘을 찬양한다.

그래서 현민이 낭송하는 박은지의 시가 더욱 빛난다.


(전략)

정말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지고 있었다 정말 가까운 곳은

상상을 벗어났다 우리는

돌부리에 걸리고 흙을 잃었으며 뿌리를 의심했다

견디는 일은 떨어지는 일이었다

떨어지는 소리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그래야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박은지,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정말 먼 곳은, 손에 잡히지 않는 곳, 현실이 될 수 없는 곳이다. 그걸 상상하면서 현실의 뿌리까지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일이 삶이 된 것, 그건 절박한 현실을 마주한 사람들의 공통된 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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