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마토 Sep 16. 2024

안임애 여사의 내장탕

우리 할머니 안임애식 내장탕이 생각나는 날

우리 할머니의 이름은 안임애.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긴 생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넘겨 고무줄로 묶은 후 동그랗게 쪽진 머리에 은빛 비녀를 꽂은 모습의 할머니는 종종 손녀들을 위해서 요리를 해주셨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80이 넘으셨던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하고 계셨지만 음식 솜씨가 좋으셔서 손수 밥을 해주시곤 했는데 여러 가지 음식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내장탕이라 하겠다. 

어느 맛집 못지않게 맛있게 내장탕을 끓이시던 할머니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던 나에게 매콤한 맛을 사랑하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한참 클 나이였던 그때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실컷 뛰어놀고 저녁 먹기 전에 집에 오곤 했었다. 땀을 흘리고 집으로 들어와 보니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시는 할머니가 집에 와계셨다. 할머니는 가끔씩 우리 집에 오셔서 음식을 해주시고는 했는데 그날은 부엌 싱크대에서 소쿠리에 수북이 내장 같은 것들을 담고는 한쪽에서 그것들에 소금을 뿌리고 박박 문질러 씻고 계셨다.

멀리서 보아도 별로 먹음직스럽지 않은 물컹거리고 구불거리는 것들의 집합이었다.

누린내 같은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보고는 옆에 가까이 가지 않고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였다.

할머니는 잠깐 뒤돌아보더니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내장 닦는 일을 계속하셨다.

엄마와 할머니는 내장이 너무 신선하다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어떻게 내장탕을 끓이는 것인지 직접 보여주고 계신다.

굵은소금을 한 움큼 내장에 뿌리고는 빨래를 하듯이 비벼서 빨았다.

그것들을 찬물에 여러 번 헹군다.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다시 밀가루를 잔뜩 뿌리고는 다시 한번 박박 손으로 비벼서 닦았다.

뿌연 색깔의 물이 흘러나왔다.

할머니는 온 힘을 다해서 내장을 닦으셨는지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것들을 손질하는 이유가 몹시 궁금해졌다.

할머니는 "내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거니까 깨깟하게 해야지 그래야 잡내도 안나고 꼬숩고 만나는겨"

라고 대답했다.

팔순이 지난 나이에도 요리하실 때는 힘이 넘쳐 보였다.

굽은 허리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요리하는 모습을 더욱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제 내장 씻는 일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커다란 도마를 준비하고는 내장에 붙은 기름을 떼어내고 있었다.

그러고는 커다란 들통에 쌀뜨물을 넣고는 파뿌리와 생강도 같이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기 시작할 때 손질한 내장을 하나씩 통에 집어넣었다.

젓가락으로 휘휘 젓고서는 내장이 익기를 기다린다.

그동안 내장탕에 들어갈 야채를 손질한다.

한시도 쉴틈이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할머니를 돕고 싶어서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다진 마늘이 필요하다며 플라스틱 절구와 방망이를 주셨다.

마늘을 절구에 넣고 그것들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심조심 빻았다.

마늘의 향이 진하게 코로 들어왔다.

할머니는 도마에서 무하고 파를 썰기 시작했다.

무는 나박나박하게 썰고 파는 큼직하게 내 손가락 길이로 썰었다.

파의 하얀 줄기는 다시 반을 갈라서 따로 준비해 두셨다.

밥을 짓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언제나 새로 하는 밥냄새는 참으로 맡기 좋다.

냄새가 코를 자극해서 벌써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삶아놓은 무청 시래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양푼에 무치기 시작했다.

마늘과 국간장을 조금 넣고 고춧가루도 넣었다. 

조물 조물 무쳐서 그대로 양푼에 두었다.

내장을 삶고 있는 들통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밖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고 집안에서 내장을 끓이고 있어서 창문에는 김이 서리고 때때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여느 집에서나 느껴지는 포근한 저녁 풍경이었다.

저녁밥이 준비되면서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나는 이렇게 음식이 만들어지는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여느 드라마보다도 재미있었다.

특히나 할머니는 요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얘기도 끊임없이 해주시니까 더욱 좋았다.

이제 할머니는 알맞게 잘 익은 내장들을 양푼에 꺼내어 담고는 호호 불어가며 먹기 좋게 썰었다.

내장탕을 끓이는 일은 녹록지 않아 보였다.

준비할 것들도 많고 시간도 아주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내장탕을 끓여주러 우리 집에 종종 오셨다.

내가 내장탕을 아주 많이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들통의 육수는 반정도 졸아있었다.

거기에다가 썰어놓은 무와 파의 하얀 줄기 부분 그리고 무쳐놓은 무청 시래기를 넣고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얼핏 보니 끓기 시작한 국물에 고춧가루와 국간장 그리고 다진 마늘과 후추를 넣고 간을 하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탕이 끓었을 때 먹기 좋게 잘라놓은 내장을 모두 넣었다.

잔뜩 썰어놓은 파를 같이 넣었다.

맛이 어우러지게 조금 더 끓였다.

매콤하고 구수한 냄새가 진동했다.

이제는 배고파서 더 이상 참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간을 보았다

"아이고 맛나다"

동생들과 나는 커다랗고 둥근 상을 방 한가운데 폈다.

그러고는 사람 수대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았다.

김치과 깍두기 그리고 다른 나물 반찬들도 냉장고에서 가져다가 상위에 올렸다.

할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내장탕을 커다란 국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고기와 야채를 듬뿍 담고는 뜨거운 국물을 채웠다.

여섯 명의 식구가 둘러 앉아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끓이신 내장탕을 한입씩 떠서 맛을 보았다.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시원하고 고소하고 입에 착착 당기는 매콤한 맛이었다

"할머니 너무 맛있어요"라고 할머니를 향해서 엄지를 날렸다.

할머니는 허허 웃으며 어서 먹으라고 하신다.

무척 배가 고팠던 나는 내장탕을 한 그릇 후다닥 먹어치우고는 더 달라고 하였다.

내장이 잘 익어서 연하고  그래서 부드럽게 잘 씹히고 국물의 시원한 맛이 자꾸만 입맛을 자극했다.

두 번째 내장탕에는 밥을 말아서 김치와 깍두기와 함께 먹었다.

남김없이 먹어 치우고는 그래도 아쉬웠는지 내장을 좀 더 건져다가 먹었다.

배가 빵빵해진 나는 다시 한번 내장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이 음식이 왜 이리 맛있는지 말이다.

오래 서있는 것도 힘들었던 할머니가 굽은 허리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정성으로 끓여내신 사랑이 담뿍 담긴 음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할머니의 내장탕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매번 맛있었고 그래서 나는 국그릇을 깨끗하게 싹싹 비우며 먹었다.

몇 년 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집에서는 더 이상 내장탕이 끓여지지 않았다.

워낙 번거로운 일이라 집에서 끓여 먹기는 힘든 음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후 어느 비가 오는 날 동료 직원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지나가다가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의 벽 한쪽에 '소내장탕' 메뉴가 붙어있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문을 하였다.

내장탕을 주문한 나를 동료 직원들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모두에게 인기 있는 음식은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주문한 내장탕이 나왔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다.

그동안 집에서 먹어보았던 내장탕의 맛과는 너무나 다른 맛이었다.

우선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서 느끼했고 내장에서 누린내도 많이 나기도 했다.

내장탕은 그대로 두고 밥과 김치만 먹고는 그 식당을 나왔다.

그 이후로는 식당에서 내장탕을 주문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그 내장탕 맛이 그리워서 일수도 있고 그 맛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이기도 하다

지금도 할머니가 그리워질 때면 그때의 내장탕 맛도 함께 그리워진다

시원하고 구수한 일품 내장탕 맛을 어디 가서 맛볼 수 있으랴

좋은 내장을 발견하면 할머니의 방식대로 그 맛을 재현해보고 싶다.

언젠가 한국으로 가게 되면 한우의 신선한 내장을 구해서 내장탕을 끓여야겠다.

깨끗하게 내장을 손질하고 신선한 야채를 듬뿍 넣어 끓인 내장탕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면 좋겠다.

빨리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내장탕과 잘 어울리는 김치 '깍두기'

깍두기.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다. 아삭아삭한 무, 새콤하게 입안에서 퍼지는 맛을 아주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우리 반에는 '김선영'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었다.

눈이 크고 아주 예쁘게 생기고 달리기도 참 잘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가 아직도 생각이 나는 이유는 선영이네 깍두기가 너무나 맛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그 친구의 도시락 반찬에는 깍두기가 빠지지 않고 함께했다.

특별한 맛의 그 집 깍두기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양념이 진하게 묻은 깍두기는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좋았고, 새우젓이나 까나리 액젓을 갈아 넣어서 인지 감칠맛이 아주 좋았다.

모두들 깍두기 하나만 달라고 선영이에게 부탁하고는 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선영이와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았다.

어느 날 집에 가는 길에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고 선영이네 집 깍두기가 먹고 싶어졌다.

선영이와 같이 집에 걸어가던 나는 그 아이의 집에 가서 깍두기를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선영이는 자기네 집에 깍두기가 많다고 하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신이 나서 선영이를 좇아 그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곧장 냉장고로 향했다.

찬밥이 있는지 묻고는 선영이는 밥솥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밥을 한 그릇 준비하고 냉장고에서 깍두기 통을 꺼내어 접시에 담았다.

선반에서 조미된 김을 하나 가져온 그 친구와 나는 밥과 깍두기를 사이좋게 나누어먹었다.

여전히 학교에서처럼 맛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깍두기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고 있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언제나 깍두기가 채워져 있으니 말이다.

맛있는 겨울철 달콤한 무로 만든 깍두기도 좋아하고 여름에 나온 삐들삐들 마른 무로 담근 깍두기도 좋아한다. 선영이네 깍두기처럼 감칠맛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톡 쏘는 새콤한 맛이 나는 나의 깍두기는 먹으면 시원하고 새콤한 맛이 난다. 꼭 시골에서 먹는 김치 맛이다.

어느 음식에난 잘 어울리고 또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소화제 역할도 해준다.

입맛이 없을 때 잘 익은 깍두기 한 입 먹어보시라

새콤하고 아삭아삭한 그 맛이 입맛을 돋워주니까 

깍두기 국물은 곰탕과 함께 먹으면 곰탕맛을 더욱 좋게 만들어준다.

오늘 점심은 호박과 감자를 넣은 수제비에 깍두기를 곁들여 먹어야겠다.

담백하고 쫄깃한 수제비에 깍두기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나는 깍두기 예찬론자이다

마트에서 사지 않아도 깍두기는 손쉽게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한번 만들어 보시기를 권한다



'깍두기 만드는 법'

소금

깍두기 양념: 고춧가루, 마늘, 생강 조금, 매실청, 멸치액젓 또는 까나리 액젓, 양파를 같이 갈아서 준비한다

 파는 송송 썰고는

절여놓은 무를 건져내고 만들어 놓은 깍두기 양념을 잘 버물여서 통에 꾹꾹 눌러 담는다.

이틀정도 국물이 뽀글뽀글 올라오기 시작하고 잘 익은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냉장고에서 하루 이틀 익혀서 먹으면 된다.

입맛이 없을 때 시도해 보시길 권한다.




이전 01화 돼지 국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