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깊은 매력 속으로
돼지 국밥이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다.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국밥에는 뽀얀 국물이 수북이 담겨있고 국물위고 약간의 부추가 싱그럽게 놓여있다. 옆에는 들깨가루와 소금, 후추가 개별적인 맛 취향을 맛추기 위해 준비되어 있다. 우선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본다. 소금 간이 맞는지 확인하고는 필요한 양념을 추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진 양념을 넣어 얼큰하게 먹는 것도 맛이 좋지만 돼지 국밥은 후추만 약간 뿌려서 담백한 맛으로 먹는 것을 선호한다.
이름도 너무나 정겹지 않은가? 돼지 국밥
일반적으로 돼지 국밥에는 여러 가지 돼지고기 부위들의 고기를 썰어서 넣어준다.
각각의 부위마다 맛과 씹는 질감이 다르기 때문에 입안에서 다채로운 맛이 펼쳐진다.
국밥과 곁들여 나오는 반찬도 예술이다.
잘 익어서 아삭아삭 새콤하게 씹히는 깍두기와 고추 장아찌 그리고 매운 마늘 무침을 함께 주는 곳도 있다.
뜨끈뜨끈한 국밥에 밥을 말아서 여기 있는 반찬과 함께 먹으면 맛도 좋고 몸과 마음이 모두 따스해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최근에 먹었던 돼지 국밥 중에서 단연 최고의 돼지 국밥을 먹은 날이 기억이 난다.
2023년 가을. 생애 처음으로 10킬로미터의 마라톤에 도전하게 되었다. 혼자서 천천히 뛰어 본 경험은 몇 번 있었지만 경기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경기가 치러지는 멜버른의 세인트 킬다 해변으로 향한다. 멜버른 각지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였고 각자의 코스에 맞추어 정해진 출발선에서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곳은 바닷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거센 바람이 불었다. 옷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 탓에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오들오들 떨며 맨손 체조를 하며 몸을 풀고 있다. 여전히 한기는 몸속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이번 마라톤은 기록에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어 완주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때때로 햇볕이 비춰주었고 뛰면서 점점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손에서도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음식이 있었다. 바로 돼지국밥이었다.
'이런 뛰면서도 먹는 생각을 하면서 뛰고 있다 나란 사람은'
오직 마라톤을 마치고 고기가 잔뜩 들어간 따뜻한 국물에 밥을 말아서 깍두기와 먹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견디기가 힘들었다.
호흡은 거칠어지고
땀은 흐르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빈속엔 허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자꾸 입안에 침이고였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돼지국밥을 생각하며 앞사람의 뒤통수를 무의식적으로 바라보며 뛰었다.
'어디 가서 먹어야 가장 맛있는 돼지국밥을 먹을 수 있을까?'
'깍두기가 정말 맛있어야 하는데'
어느새 5킬로미터 구간을 돌아서 아까 달려왔던 구간을 한번 더 뛰면 되었다.
배에서 자꾸 꼬르륵 소리가 나고 있다.
왜 하필이면 돼지국밥이었을까?
우선 달리기로 인해 에너지를 많이 썼으니까 고열량의 고기가 듬뿍 들어간 국물 그중에서도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국물이 일품인 돼지국밥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달리기는 국밥을 더욱 먹고 싶게 만드는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끝도 없는 생각을 하며 도착점이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고 마음은 더욱 급해져 갔다.
드디어 돼지국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먹을 것에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공복에 긴 거리를 뛰다 보면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종일 배가 고프다.
어쩌면 모두가 그런 느낌을 가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필자의 경우에는 그렇다.
10킬로미터를 완주한 나에게 주는 선물. 맛있는 돼지국밥 한 사발.
결승선이 가까워지고 모두가 환호하는 그곳으로 재빨리 뛰어 들어온다. 메달도 목에 걸어본다.
이유가 어떻든 10킬로미터를 완주했고 뿌듯함과 성취감이 느껴졌다.
온몸에서 땀이 나고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기진맥진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땀을 흠뻑 흘린후의 상쾌함이 느껴진다
바람이 점차 거세게 불어와 달아올랐던 옴 몸이 땀이 식으면서 급격하게 식기 시작한다.
체온이 떨어진다. 덜덜 떨린다.
빨리 돼지국밥을 먹으러 가야 한다.
재빨리 전화기를 켜고 검색을 하기 시작한다.
'멜버른 베스트 돼지국밥'
여러 곳이 쭉 나왔다.
그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었는데 한 카페에서 오늘 점심에만 돼지국밥을 스페셜로 판다고 한다.
'카페에서 돼지국밥을?'
재미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전통적인 돼지국밥은 아닐 테고 어떻게 나올지 너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커피와 돼지국밥이라'
'안될 것도 없지'
특별한 날에 특별한 돼지국밥이 될 것 같았다.
곧장 차를 몰고 그 카페로 향했다.
'어쩌면 주인장이 부산 사람일 수도 있고 돼지국밥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겠지'
그런 물음을 던지면 가게 안으로 향한다.
보이는 곳 아무 곳에 우선 자리를 잡는다
직원이 다가왔고 11시부터 돼지국밥 스페셜을 판다고 알려주었다.
지금이 정확하게 11시이다.
'어떻게 이렇게 시간을 잘 맞추어 올 수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놀라며 커피와 돼지국밥을 주문한다.
주문한 음식은 아주 빠르게 나왔다.
정갈하게 차려진 쟁반에는 돼지국밥, 밥, 부추무침 그리고 깍두기. 쟁반의 가장자리에는 순후추가 한통 같이 나왔다.
돼지국밥은 맑은 국물에 익힌 삼겹살을 가지런히 썰어서 담아주었다.
후추를 톡톡 뿌리고 얼른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다.
'아니 돼지국밥 맛이 왜 이렇게 깔끔하지?'
그동안 먹어보지 못한 잡내가 하나 나지 않는 깔끔한 국물맛에 놀랐다.
국물에 담긴 고기 한 점을 부추 무침에 곁들여서 먹어보았다.
정말 입에서 살살 녹았다.
예술이다.
너무 맛있어.
깍두기도 맛있고 밥도 아주 찰지게 잘했다
'이 집 카페 맞아?'
한 입 먹을 때마다 감탄하며 남은 국물까지 모조리 먹었다.
문제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것이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직원을 불렀다.
"돼지국밥 하나 더 주세요"
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며 다시 묻는다
"돼지 국밥 하나 더요?"
민망해진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두 번째 돼지 국밥 쟁반이 나오고 똑같이 돼지 국밥에 밥을 말아 고기와 부추무침, 깍두기를 곁들여 모두 먹었다. 두 번째는 좀 더 음미하면서 먹었다.
힘들고 기운이 달려서 굽어져 있던 허리와 등이 펴지기 시작했다
정말 궁금한 것은 그 돼지국밥이 최고로 맛있었던 국밥인지 아니면 허기와 굶주림을 느끼던 그때 먹어서 더욱 맛있게 느껴졌는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그 이후에는 그곳에서 돼지국밥을 먹은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틀림없는 사실은 그때의 국밥은 나에게 최고의 맛을 선사해 주었고 아직까지도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배고프면 다 맛있다.
뇌는 기억한다.
맛있게 느꼈던 그 음식이 꼭 맛뿐만이 아니라 추억이 같이 기억되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요리하는 나란 사람은 맛있게 먹은 음식을 집에서 해보곤 한다.
돼지국밥도 예외가 될 순 없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시간을 많이 들여하기에는 여러 가지 번거로운 것들이 있으니까 최대한 간단하게 그러면서도 맛은 비슷하게 해 보려고 노력한다.
돼지국밥 직접 해보기
삼겹살 1킬로그램 덩어리( 생강, 파, 마늘, 통후추, 양파, 국물팩 1개)
먼저 국물낼 야채를 냄비에 물과 함께 넣고 끓여준다.
어느 정도 팔팔 끓었을 때 국물팩은 건져내고 삼겹살 덩어리를 넣어준다.
잔잔하게 끓도록 가스불을 살짝 줄여준다.
그대로 한 시간 푹 끓여낸다.
고기는 꺼내어 식히고 국물은 걸러준다.
시간이 있으면 냉장고에 차갑게 국물을 식히면 더 좋다
기름기를 싹 걷어낼 수 있으니까
맑은 고기 국물에 간을 한다. 소금과 멸치액젓을 넣고 알맞게 간을 맞춘다(된장을 살짝 넣어주면 감칠맛이 있다 하지만 넣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진한 국물로 먹고 싶은 날은 시판용 사골 곰국을 하나 넣어준다.
진하게 우려낸 국물을 느낄 수가 있다
야들야들 잘 익은 고기는 정갈하게 썰어준다. 썰으면서 잘 익었는지 맛보는 게 좋다
그릇에 고기를 먹음직스럽게 담고 뜨거운 국물을 몇 번 토렴 해준다.
그 위에 다진 파를 올리면 되지국밥이 완성된다.
여기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 부추 무침이다
부추와 체 썬 양파를 섞고는 간장, 마늘, 식초, 고춧가루, 설탕 그리고 깨를 섞어서 슥슥 버무려준다
멸치액적을 살짝 넣어주면 감칠맛이 더해진다.
고기를 넉넉히 넣은 돼지국밥
그 고기를 건져서 부추 무침을 얹어서 한입 먹어보시라.
그 맛이 일품 돼지 국밥 못지않게 된다.
맛있게 먹은 식사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인생을 한층 더 재미나게 만들어주는 마법이 숨어있다.
오늘 저녁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돼지국밥을 손수 준비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어떨는지
매일매일 해도 질릴지 않는 생각
오늘은 뭐 먹지?를 고민하며 사는 필자가 전하는 메시지였습니다
다음번에는 깍두기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네요
다음 회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