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먹는 수제비와 막걸리 한잔
멜버른, 하루에도 변화무쌍하게 날씨가 변하는 도시에 살고 있다. 아침에 거리에 나가면 세차게 바람이 불어서 머리가 사방으로 휘날리며 걷다가 어느새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하여 우산을 편다. 바람으로 인해 우산이 뒤집히고 결국에는 우산 쓰기를 포기하고는 그냥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조금 지나더니 해가 반짝 뜨고 바람은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멜버른은 하루에 사계절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날씨라고 한다. 그런 매력적인 날씨를 피부로 맞으며 살고 있는 나로서는 한국의 따뜻한 국물 요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창밖으로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느 날. 하염없이 내리는 비로 창밖은 흐릿해 보인다.
섬뜩하게 반짝이는 번개쇼가 펼쳐진다.
우두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우박도 퍼붓는다.
집에 있어서 너무 다행인 날이다.
비 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보글보글 끓는 국물요리가 먹고 싶고, 지글지글 구워지는 부침개도 그리워진다.
따뜻한 수제비 한 그릇 해 먹어야겠다.
냄비에 찬물을 반쯤 채우고 요즘 슈퍼에서 파는 국물팩하나를 넣었다.
조금 더 풍부한 맛을 위해서 양파 한 개와 마른 표교버섯과 파뿌리까지 함께 투여한다.
은근하게 물이 끓기 시작하고 야채에서 나오는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기 시작한다.
끓는 육수로 인해서 집안은 수증기가 가득하게 되고 창밖도 뿌옇게 보이는 듯하다
야채와 멸치 육수가 잘 끓고 있다.
육수를 끓이는 동안 감자 수제비 가루로 반죽을 시작한다
양푼에 가루를 넣고 적당한 물을 넣어가며 반죽을 하면 꾸덕꾸덕해진 반죽이 된다.
조금 숙성을 시켜야 쫄깃하고 맛있는 수제비가 되니까 랩을 씌워서 반죽이 맛있게 되기를 기다리면 된다.
깔끔한 수제비를 좋아하는 나는 멸치 국물맛을 선호한다.
이때 국물에 넣을 감자를 한두 개 도마 위에서 썬다.
담백한 감자 수제비는 포실포실한 감자를 넣어야 제맛이 난다.
육수가 준비되면 거기에 썰어놓은 감자를 넣고 끓인다. 감자가 푹 익을 때까지.
뽀얀 국물이 우러나고 담백한 감자냄새가 솔솔 올라올 때 소금과 국간장 그리고 약간의 멸치액젓을 넣고 간을 맞춘다.
너무 짜지 않게 말이다.
약간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간을 맞춘 후 수제비 반죽을 몇 번 손으로 치댄다.
약간 촉촉하게 숙성이 된 반죽을 손으로 펴고 뚝 떼어서 국물에 살며시 집어 넣는다.
반죽의 느낌이 몽실몽실하고 좋다.
부드럽고 쫄깃함이 느껴진다.
먹고 싶은 만큼 반죽을 떼어서 국물에 넣으면 그것들이 둥둥 떠오른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면서 냄비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해 준다.
수제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국물이 탁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둥둥 떠있는 수제비 하나를 건져 먹어보았다.
잘 익었고 쫄깃하다.
사발에 수제비를 먹기 좋게 담는다.
그 위에 좋아하는 야채를 올려서 먹으면 좋은데 개인적으로 쑥갓을 좋아해서 빠지지 않고 올린다.
잘게 부순 김가루와 후추를 톡톡 뿌려준다.
비 오는 날 먹는 수제비는 기가 막히게 맛있다.
따뜻하고 쫄깃하고 담백하고 쑥갓향으로 향긋하기까지 하다.
김치와 함께 쫄깃한 질감의 수제비를 먹고 막걸리 한잔으로 마무리를 한 저녁식사는 훌륭했다.
가끔씩 수제비 반죽이 없을 때는 시판용 수제비를 넣기도 하지만 맛은 확실히 다르다.
수제비는 역시 반죽을 손으로 떠서 먹어야 제맛이다.
예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수제비를 많이 먹었다고 하지만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즘에도 여전히 수제비는 맛있다.
어릴 때의 추억도 생각나고 한 그릇 후루룩 먹고 나면 그 담백한 맛에 또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다.
집에 먹을 것이 별로 없을 때
무엇을 먹어야 할지 잘 모르겠을 때 멸치국물을 잘 우려서 수제비를 끓여 먹어보시라
막걸리 한잔 하면 더욱 좋고 없어도 상관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