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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Jan 07. 2022

엄마는 레노베이션(renovation)이 필요해요!

아들에게 배우는 엄마

둘째인 아들을 바라보는 내 눈은 어느새 하트 연속이고 내 입은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 아이의 익살맞은 유머와 재치에 나는 아들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방비 상태가 되어 버렸다. 봐도 봐도 또 보고 싶고 함께 있어도 내 맘을 꽉 차게 해 주었던 그런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럽다는 말이 나에게는 내 아들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딸아이는 기침만 해도 혹시 감기 걸렸나 벌벌 떨며 키웠다면 아들은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아무거나 해도 된다였다. 내 눈에 어리디 어리기만 아들은 공부가 어떻든 친구가 누구이든 상관없었다.  


우리 부부가 큰 관심을 주지 않아도 둘째라서 그랬나 아들은 알아서 속으로 누나와 경쟁하고, 적당히 누나를 시기하며, 때론 누나에게만 관심을 준다며 우리 부부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잘해나갔다. 그리고 여러 대학교에서 입학허가를 받아 들고 어딜 갈지 고민하다가 누나의 뒤를 따라 캐나다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키가 작고 마른 아들이 사관학교를 간다니 딸이 갔을 때보다 마음이 더욱 아렸다. 아들이 떠나던 날 공항에서 나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울었던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스럽게 나를 봤던 것 같다. 그날 마침 공항에서 내가 우는 모습을 본 지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직도 울어? 이젠 안 울지? 라며 나를 수 년째 놀리신다. 말이 캐나다 국내이지 실제로 오고 가는 모든 과정을 다 따지면 밴쿠버에서 서울 가는 시간만큼 걸린다. 그래서 그냥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나라에서 산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아들이 떠나고 첫 방학을 맞아 드디어 아들이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들뜨고 들뜬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공항에서 마주한 아들의 모습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 년이 채 못 된 그 시간 속에서 자못 놀랄 만큼 달라져 있었다. 키도 더 커있었고 집을 떠날 때 아직 얼굴 여기저기에 있던 어린 솜털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깨가 예전과 다르게 넓고 굵어져 있었다. 그렇게 성장해있는 아들의 모습이 낯설기까지 했다.


아들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느라 바빴다. 그래서 집에서 같이 밥을 먹으려면 며칠 전부터 아들 스케줄을 체크하고 미리 예약(?)을 해야 했다. 하루는 아들이 떠나기 전 혹시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주고 싶어서 같이 쇼핑 가겠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흔쾌히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엄마도 쇼핑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이유를 물으니 아들 왈 "엄마 옷 입는 스타일, 엄마 행동 레노베이션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나는 뜻하지 않은 아들의 반응에 (웽????) 할 말을 잃었다. 아들은 본인 옷만 사면 같이 안 간단다. 대신 엄마 옷도 사면 같이 간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나도 옷을 사겠노라 약속을 했다.


엄마가 왜 레노베이션이 필요해?  


그랬더니 아들이 주옥같은 충고를 해주었다.


엄마는 전체적으로 나이보다 젊어 보여서 좋은데 옷은 잘 못 입어요.
엄마가 셔츠와 바지를 입을 때는 프로페셔널해 보이고 멋져 보이지만 레이스가 있거나 울긋불긋한 색깔은 어울리지 않아요.
이제는 아무 옷이나 입지 말고 엄마 자신에게 투자하고 엄마에게 맞는 스타일의 옷을 입으세요.

 

그리고 옷만이 아니고 몇 가지 행동도 바꾸도록 노력해보라고 했다.


엄마, 제발 공공장소에서 손을 높이 들고 흔들지 마세요.
그리고 걸어 다닐 때는 뛰지 마세요.
엄마는 팔만 뛰고 다리는 걷고 있는 거 아세요?


아!!!!


나는 아이들을 기다리다 발견하면 내가 여기 있노라고 손을 높이 들어 흔들곤 했다. 반가운 마음에 또는 행여나 나를 못 봤을까 봐 노심초사하여 손을 들어 마구 마구 흔들어 댔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내게 다가와 왜 그렇게 손을 흔드냐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한국 영화에서는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흔드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캐나다에서 25년을 넘게 살면서도 공공장소에서 손을 흔드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한 거 같다. 손을 들어 상대에게 사인을 줄 때는 손이 머리보다 더 높게 올라간 경우가 거의 없다. 이것은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식당에서는 손을 흔들며 "여기요"라고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그렇게 하면 상당히 무례한 것이 된다. 웨이터가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지나가는 웨이터와 눈을 맞추며 손을 살짝만 들어서 사인을 주어야 한다.


젊은 날 나는 늘 바빠서 빨리 걷곤 했다. 그래서 그 걸음걸이가 몸에 배어버렸다. 어느 날 나를 보니 그리 바쁜 일이 없는데도 내가 급하게 걷고 있었다. 나와 같이 걸을 때면 내 아이들은 묻는다.


엄마 바쁜 일이 있나요?
왜 뛰나요?  


몇 해 전에 나랑 친한 직장 동료가 나에게 농담하면서 "선아는 항상 뛴다(Sunah is always running)"라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아들은 내게 엄마가 이상하단다. 상체는 분명히 뛰고 있는데 내 다리는 걷고 있단다. 그러니까 천천히 느긋하게 걷는 아들이나 빨리 가자고 재촉하고 서두르는 엄마나 보폭은 차이가 없으니 아들 눈에는 상체는 뛰고 하체는 걷는 엄마로 보였나 보다.


아들 얘기를 듣고 보니 솔직히 처음에는 기분이 좀 상했다. '아들놈이 엄마를 보고 레노베이션이 필요하다니! 이 놈이 컸다고 엄마를 뭘로 보고' 괘씸한 생각도 들고. '일 년 더 컸다고 이 쒜끼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들이 엄마에게 어울리는 색상과 스타일을 말해주는 것은 엄마에게 그만큼 관심을 두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공공장소에서의 나의 행동에 대한 지적은 엄마가 더 우아한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는 아들의 바람이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 이제는 내가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여유를 좀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은 옷 가지를 고르며 옆에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귀찮아하지 않고 솔직한 의견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식구들만 생각하지 말고 이제는 엄마가 원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가지라고, 돈을 더 쓰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주지도 않으면서 쓰라고만 하는 내 아들 ㅎㅎㅎ). 그렇게 아들과 함께 쇼핑을 하면서 나는 이미 성큼 커버린 내 아들이 조금 멀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이젠 좀 천천히 걷고 손도 마구마구 흔들지 않을게.

아들은 답했다.


엄마는 이미 충분히 멋져요. 그런데 조금만 신경 쓰면 더 멋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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