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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아 SSunalife Dec 10. 2021

추측하지 말고 물어보세요.

의사소통을 하세요.

직장 생활이나 인간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필요하겠지만 그중에 의사소통 능력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민자들에게 성공적인 의사소통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언어학에서 의사소통 능력(Communicative competence)이라는 말은 미국의 언어학자이며 인류학자이기도 했던  하임즈 (Dell Hymes) 의해 1966년 처음 사용되었다. 언어학자이면서 사회비평가이기도 한 노엄 촘스키 (Noam Chomsky는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언어학자이며 아직도 가끔 매스컴을 통해서 그의 정치적 비평을 접할 수 있다)는 언어능력(언어구조에 대한 지식)과 언어수행(언어능력이 상황에 따라 사용되는 것)으로 구분하며 언어학은 언어능력에 초첨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임즈는 촘스키의 언어능력이 언어의 사회적 기능적 역할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사회적 맥락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필요한 지식 (의사소통 능력) 개념 언어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의사소통 능력을 구글이나, 다음,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어떻게 하면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나에 대한 정보가 차고도 넘친다. 대체적으로 의사소통 능력이란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거나 문서를 통해 의견을 교환할 때 상대방이 뜻한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우리가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한다면 오해나 다툼이 생기지 않을 텐데 실제 생활에서는 언어뿐만 아니라 언어 외적인 여러 요인들로도 부딪칠 때가 많다.


나는 딸아이와 상당히 깊이 있는 대화를 할 때가 많다. 그것은 딸아이가 한국말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한국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은 꽤 가능하다. 반대로 나 역시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지만 영어로 생활하는 데에 불편함이 거의 없다. 딸아이와 나는 주제에 따라서 한국어나 영어를 택하거나 또는 필요에 따라서 코드 스위칭(code switching 하나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함)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의사소통은 대체적으로  틀에서 어려움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여름 딸아이가 캐나다 동부에서 서부로 이사 올 때 비행기를 타는 대신 우리 모녀는 퀘벡에서 밴쿠버까지 장장 5000KM 운전해야 하는 캐나다 대륙횡단 하기로 했다. 남편은 코비드로 모든 것이 불편하고 위험하니 그냥 비행기로 빠르게 오는 것이 낫겠다고 했으나 우리 모녀는 차로 하는 여행이니 안전할 것이라고 빡빡 우겨서 대륙 행단을 계획했다. 멋진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든지 하는 호사로운 여행은 코비드로 인해 즐길 수 없었지만 캐나다에서 가장  도로인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The Trans-Canada Highway) 따라서 일주일 여정을 나의 베스트 프렌드인 딸과 함께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전율이 일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이틀 동안은 오고 가며 나눈 왕수다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낮에는 눈에 들어오는 절경들을 사진이나 비디오로 담기에 정신이 없었고 밤이면 운전하는 딸아이를 위해서 발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러나 삼일 째 되던 날 새벽부터 딸아이는 열이 나고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단순한 감기 몸살에서 온 것인지 코비드 때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온타리오 선더베이(Thunder Bay)라는 곳에 멈춰 예약을   딸아이도 나도 코비드 검사를 했다. 요즘은 캐나다도 이틀이면 검사 결과가 나오지만 선더베이가 대도시도 아니고 또 그때만 해도 캐나다에 코비드 검사 키트나 마스크 등 의료 용품들이 부족해서 모든 것이 더디고 더뎠다. 코로나 검사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며 그동안 자아 격리를 하라고 권고했다. 오호통재라! 

 

우리는 중앙 입구를 통하지 않고도 밖으로 문이 나 있는 호텔을 찾아 숙박을 했다. 여행 계획이 일주일이나 지연되게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혹시나 딸아이가 (아니 나까지도) 코비드에 걸렸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날부터 아픈 딸아이와 나는 마스크를 쓰고 접촉을 최대한 줄이고 시간 가기를 기다렸다. '우리가 기다리고 고대하던 이 여행의 과정이 이렇게 엉망이 될 줄이야!' 밴쿠버에 있는 남편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문자를 보내왔다. 얼마나 걱정이 컸으면 하루는 통화하다 남편이 울먹거리는 거다 (내가 그때 왜 울라했노? 라고 물으면 울 남편은 본인은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단다 ㅎ). 설령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젊은 딸아이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지만 내가 큰 문제라고 걱정에 걱정을 거듭했다 (절대로 울먹인 적이 없다니 진짜 걱정을 했는지 걱정하는 척했는지는 본인만이 알겠지 ㅋㅋㅋ). 남편과 통화를 하고 나면 위안이 되기보다는 걱정이 배가 되어 머리까지 아팠다.

 

이틀 동안은 목이 아픈 딸아이에게 수프와 부드러운 것만을 주었는데 삼일 째 되던 날 조금 회복되어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반 메뉴를 사 왔다. 우리는 바람도 쐴 겸 밖으로 통하는 호텔 방문을 열고 나가 밖에서 먹기로 했다. 음식을  먹으려는 순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딸아이에게 묻지도 않고 일회용 케첩을 집어 들어 딸아이 그릇 쪽으로 손을 뻗었다.

 

딸아이가 "제가 할게요"라고 한국말로 했다.

나는 아픈 딸을 위해 "왜, 엄마가 해줄게" 하면서 케첩을 뜯어서 감자튀김 옆에 짜주었다.

그런데 잠시 후 딸아이가 훌쩍대기 시작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서 "왜 그래?"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딸아이가 "You hurted my dignity"라고 영어를 쏟아냈다. 이걸 한국말로 그대로 옮기자면 "당신이 나의 존엄성에 상처를 주었다" 뭐 그런 정도. 다시 말하면 "내가 아파도 이 작은 일 정도는 할 수 있는데 당신이 나를 존종하지 않는다"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케첩 하나를 가지고 거창하게 존엄성이 어쩌고저쩌고 하나' '내가 지가 아프니까 케첩 하나라도 뜯어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도리어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불쑥 "dignity는 다른 데에서 찾지  이런 일에 디그니티가 어쩌고저쩌고 하니 너도 " 나도 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딸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몇 점을 먹더니 반도 채 못 먹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모녀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무엇이 잘못된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 "Dignity"는 거창한 인간의 존엄성 등에 맞는 단어라서 이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도리어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는 딸아이가 야속하기만 했다. 나도 음식이 더 이상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걸었다.

 

걷는 동안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아픈 딸도 옆에서 간호하는 나도 지쳐서 인가? 비행기로 오라는 남편의 말을 안 들었던 벌인가? 내가 알고 있는 Dignitity라는 단어가 다른 뜻이 또 있나? 아이들이 크는 만큼 거리감도 커진다는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이 무엇인가? 정답이 있는 걸까? 그래 늬들이 다 컸으니 부모 자식도 이제는 덜 보고 덜 부딪치며 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마음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그러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기회를 봐서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듯 그다음 날을 맞이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그렇게 한 나절 지나고 나는 딸아이에게 "아픈 너를 배려한다고 한 것이 너의 맘을 상하게 했구나"라고 "미안해"라고 사과를 했다. 솔직히 맘에 없는 사과였다. 왜냐하면 난 그때도 딸아이가 왜 화를 냈는지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자기도 엄마에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자기를 사랑해서 그런다는 것을 알지만 엄마는 항상 자기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했다. 보통 때 같으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자기도 힘들어서 짜증이 나고 슬퍼졌단다. "!" "내가?"

 

'보통  같으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가 내 맘에 더 꽂혔다. 내가 경청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기분이 좋을 리 없었겠지만 지금까지 딸아이는 그냥 이해하고 넘어갔던 거였구나. 딸아이는 엄마를 이해하기 때문에 또 이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불편하고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넘어갔던 것인가? 내가 내 어머니로부터 받아오고 배워왔던 사랑과 배려가 내 딸에게는 다른 의미일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맛있는 것이 있으면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어 그만 먹겠다 되었다 해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더 먹기를 강요하고 억지를 부린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내 방식으로 '이게 사랑이야'를 가르치고 훈련시켰나 보다. 나는 딸아이와 상당히 깊은 대화가 통하고 나의 베프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딸아이가 많은 부분 엄마를 이해했기에 가능했던가 보다. 이제부터는 나도 딸아이를 더 이해해야겠구나라고 맘먹었다. 

 

우리 모녀는 그날 이후로 서로가 생각이 다르거나 서로의 마음을   없으면 추측(Guess) 하지 말고 묻기(Ask) 했다. 그날의 케첩 사건이 없었다면 나는 내가 내 아이들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존중하지 않는 어머니였다기 보다는 내 방식으로 하는 존중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아무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어 안달 나도 먼저 아이들 의견을 묻고 만약 "노우(No)"라고 대답하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이 아무리 소중하더라도 원치 않는 사랑, 과한 사랑은 결국 상대를 병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회복이 되고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일주일이 지났다. 검사 결과를 알아보려고 전화를 하니 내가 다른 주에서 왔기 때문에 일주일을 또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럼 처음부터 결과가 2주 후에 나온다고 하든지. '이럴 땔  느린 캐나다가 싫어진다...'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틀 후에 혹시나 해서 다시 전화를 걸어봤다. 그랬더니 결과가 나왔단다. 다행히 모녀가 건강했다. 그리고 우리는 대륙횡단을 이어갔다. 남은 일정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더 자주 묻고, 더 많이 웃고, 함께한 시간들을 맘껏 즐겼다.

사진: 캐나다 록키 레이크 루이스

캐나다에서 가장  도로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The Trans-Canada Highway) 잠깐 맛만 보셔요! 

https://youtu.be/DbUehZCca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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