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행복을 주는 반려식물들
딸아이가 캐나다 동부에 있는 퀘벡(Quebec) 세거네이 배고트빌(Saguenay Bagotville)이라는 공군기지에서 3년 가까이 근무를 하였는데 그때 참 많이 힘들어했다. 퀘벡은 같은 캐나다 안에 있어도 언어와 문화가 캐나다의 다른 지역과 다르다. 캐나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영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퀘벡 주는 불어화자가 다수다. 특히나 딸아이가 근무하던 세거네이 배코트빌이라는 곳은 퀘벡 주 안에서도 몬트리올(Montreal) 같은 큰 도시와 달리 불어권 화자가 거의 전부이다.
캐나다가 영어와 불어 이중언어 정책을 쓰고 있지만 캐나다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두 가지 언어를 다 능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생활에서 불어를 사용하는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있고 심지어 퀘벡에서도 영어 능력을 갖춘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캐나다 연방 공무원이 되려면 이중 언어 구사능력을 갖춰야 하는 분야들이 있다. 딸아이가 졸업한 캐나다 사관학교는 불어 실력이 일정 수준이 되어야 졸업을 할 수 있다. 딸아이의 불어는 읽기, 쓰기는 모국어 수준이었으나 듣기 말하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중고등학교 때 불어 집중 프로그램(French Immersion Program)에서 공부한 것도 아니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불어를 익힌 정도이니 본인의 노력으로 읽기, 쓰기는 잘할 수 있었으나 불어권에서 전문적인 일을 하기에는 듣기 말하기 부분이 많이 부족했다.
그런 딸아이가 퀘벡으로 발령이 나고 퀘벡콰(Quebecois)라고 하는 불어로 모든 일을 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퀘벡에서 사용하는 불어를 퀘벡콰라고 부른다. 퀘벡콰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정통 프랑스어와 조금 다르다. 한국어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듯이 퀘벡에서 사용하는 불어 사투리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딸아이는 퀘벡에서의 3년 간의 시간을 새로운 나라로 이민 간 것에 비유했다. 나라만 캐나다일 뿐 언어가 유창하지 못해서 많은 어려움들을 겪어야 했고 동양인들이 거의 없는 곳에서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많은 불쾌함들을 참아내야 했다. 힘이 들었던 고통만큼 딸아이의 불어 실력은 늘어갔다. 3년이 지나 비씨주 빅토리아로 근무지가 바뀔 때 딸아이는 '나도 불어를 배우고 싶다'할 정도로 듣기 좋고 멋진 불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어 실력이 유창하게 되기까지 딸아이는 외로움과 우울증이라는 무서운 놈과도 싸워야 했다.
드디어 내가 살고 있는 비씨주로 오게 되어 이제 딸을 자주 볼 수 있겠거니, 그 아이가 힘들고 외로우면 내가 곁에 있어줘야지 하고 기대를 잔뜩 했는데 코비드-19으로 인해 가까이 있으나 생각만큼 자주 볼 수 없게 되었다. 불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본인에게 가장 편한 언어인 영어로 일을 하게 되니 그만큼 스트레스도 적고 한결 나아 보였다. 그러나 퀘벡에서 가져온 우울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늘 혼자서 부단히 노력해가는 딸아이가 가끔은 너무 안쓰러워 남자 친구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저 자식이 하나 생겼어요(I have a baby)!
이런저런 생각들이 지나갔다. 그래서 물었다.
무슨 일(What happened)?
엄마, 제 아이 보고 싶어요(Do you want to see my baby)?
그래(Yes, please)!
갑자기 딸아이가 뜸을 들였다. 나는 그 사이에 가슴이 벌렁벌렁 했다. 딸아이를 믿지만 그래도...
그리고 딸아이는 미니 화분에 들어 있는 작은 반려식물 사진을 보내왔다. 친구가 급하게 다른 주로 이사를 가게 되어 화분들을 이미 다 처분했는데 베란다 귀둥이에 홀로 남은 새끼 슈퍼바라고 하는 식물이 어찌어찌하여 딸아이 손에 넘어오게 되었단다.
그 후로 한참이 지나 딸아이 집을 방문했더니 그 작은 반려식물은 딸아이 말에 의하면 거의 자라지 않고 그대로였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인터넷을 찾아보고 물도 적절히 주고 햇빛도 보게 하는데 왜 안 자라는지 모르겠다고 속상해했다.
저는 좋은 엄마가 아닌가 봐요. 얘가 날 싫어하나 봐요.
그래서 나는 딸아이에게 햇빛과 물만 말고 사랑도 주라고 했다. 좋은 엄마가 되려면 밥만 주는 게 아니라 사랑도 주고 대화도 하라고 했다. 그날 이후 딸아이는 출퇴근할 때마다 반려식물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회사 갔다 올게!
엄마 왔다! 오늘 잘 지냈니?
아프지 말고 잘 자라야 해! 필요한 거 있으면 엄마한테 다 말해. 엄마가 다 해줄게. 엄마 이래 봬도 부자야!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밥을 먹을 때도 밥 먹는다고 하고 화장실을 갈 때면
나 X 싸러 간다. 좀 급하다 나!
그리고 돌아와서는
엄마 냄새나지? 오늘 냄새가 좀 고약한 것을 먹었거든. 미안해!
딸아이와 반려식물 간의 대화 내용은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어떨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엄마인 나는 이제 딸아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딸아이가 일하러 간 사이에 나 역시도 그 반려식물과 대화도 하고 때론 '우리 딸 좀 잘 지켜다오'하며 부탁도 하고, 햇빛이 잘 들도록 거실 문도 잠시 열어두고 위치도 바꿔주곤 했다. 그 슈퍼바 반려식물은 신기하게도 눈에 띄게 커가고 있었다. 딸아이는 반려식물은 하나인데 그리고 아직 분갈이 때도 아닌데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큰 크기의 흙을 두 포대나 사서 짊어지고 들어왔다.
졸지에 엄마가 되어버린 우리 딸의 정성 때문인지 그 슈퍼바 반려식물은 쑥쑥 자라더니 그새 누구랑 결혼까지 했는지 옆에 아이도 하나 만들었다 (위의 분갈이 사진 참조 ㅎ). 우리 딸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오 마이 갓, 내가 벌써 할머니가 되었네! 나 이렇게 빨리 늙으면 안 되는데엥~
그러면서 이제 반려식물 대가족을 만들어 갈 심산인가 보다. 고무나무 묘목을 사 오고 알로에도 사 오고 그렇게 집안을 키워갔다. 나 역시 옆 마트에 가서 다육이란 아주 작은놈을 입양했다. 그리고 "서프라이즈~"하며 딸 앞에 내놓자 밥을 먹다 말고 딸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와락 안았다. 나는 딸아이가 이렇게 까지 기뻐할 줄 몰랐다. 아마도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던 것이라 생각했다.
딸아이 집에 있는 아기 반려식물들은 딸아이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쑥쑥 커나갔다. 사랑을 주는 딸아이 역시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밖에 오래 나가 있을 때면 아이들이 엄마를 보고 싶어 할 거라며 집에 빨리 돌아가자고 나를 부추기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어김없이 반려식물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옆에 있으면 한국말로 하다가 영어로 쏠라쏠라 했다가 그러다가 킥킥 웃는다.
엄마(mom), 얘네들도 바이링궐(bilingual 이중언어를 하는)이야! 하하하.
내가 내 집으로 돌아와 있어도 딸아이는 새끼 반려식물들이 하루하루 어떻게 커나가는지 사진을 통해서 부지런히 업데이트를 해준다.
딸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다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식물이 주는 기쁨과 행복은 딸아이 주변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 보다도 더 크고 귀한 존재로 다가왔다. 연말에 우리 집에 나흘이라는 짧은 시간을 머무는 동안에도 딸아이는 자기 아이들(반려식물들) 자랑과 걱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영락없는 아이들 여럿 둔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런 딸아이에게서 참 오랜만에 편안하고 행복한 미소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