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총 속에 빛나는 개성과 질서
“그래서 난 사물들을 좋아하네. 사물, 물건, 공예품, 그림. 그것들은 보이는 그대로거든. 변하지도 실망시키지도 않지. 아름다운 것에 있는 순수성은 어느 인간에게도 찾아볼 수 없었어.”
- 리들리 스콧의 영화 <올 더 머니>에서 폴 게티
전날 집에 온 친구들이 준 컵에 커피를 내려 영화를 골라 보았다. 미국의 석유 사업가 진 폴 게티(Jean Paul Getty, 1892~1976)의 삶을 그린 영화인데, LA에 있는 게티 미술관의 설립자가 궁금하기도 했다. 영화는 게티의 말년(1973)에 로마에서 손자를 유괴한 범인들이 엄청난 몸값을 요구하지만 타협을 거부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게티가 그를 위해 일해온 협상가에게 했던 (위의) 말은 그날 긴 여운을 남겼다. 마음에 쏙 드는 컵이 없는 와중에, 선물 받은 머그컵의 특별한 모양새와 색감, 질감에 감탄하던 차였다. 그리고 내 노트북의 바탕 화면이 떠올랐다.
5년 전인가 새로 산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나가 살펴보던 중, 이 그림을 만났다. 특별할 것도 없는 정물화였는데 깊은 어둠이 시선을 붙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하염없이 그릇 하나하나를 바라보는데, 서서히 마음이 차분해지고 단단해지고 반짝거렸다. 그렇게 이 그림은 노트북에 자리 잡아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우연히 이 그림에 끌리고 긴 시간 함께하고 있는 것이 큰 인연처럼 느껴졌고, 해가 가기 전에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나무 탁자 혹은 선반 위에 가지각색의 그릇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소장처에 따르면 맨 왼쪽에는 백랍(주석과 납의 합금) 접시 안에 도금한 포도주잔 고블릿이 있다. 그 옆으로 마치 긴 드레스 차림에 두 팔을 허리춤에 올린 듯한 유백색의 도기가 서 있다. 세비야 근교 트리아나(Triana)에서 제작된 이 에그쉘(eggshell)은 얄팍한 다공성 도기로 물을 시원하게 하는 항아리다. 그 옆에 기린 마냥 좁고 긴 목을 가진 벽돌색의 꽃병은 당시 뉴 스페인, 멕시코 토날라(Tonalá) 지역의 특산품으로, 보기와 다르게 무척 귀하고 값비싼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백랍 접시 위에 물결무늬가 있는 불룩한 배를 가진 항아리가 놓여 있다.
깊은 어둠 속에서 각기 다른 모양과 재료, 색과 용도의 그릇을 드러내는 것은 다름 아닌 빛이다. 시각만큼이나 화면을 장악한 것은 또한 시간을 초월한 고요의 감각이다. 이 정물화는 검은 배경과 대비되는 강렬한 조명, 단순하고 엄격한 구성, 대상의 양감과 질감을 섬세하게 살려낸 사실주의로 요약되는 수르바란의 언어를 잘 보여준다.
(프라도 미술관이 제공하는 위의 이미지는 노란빛이 돌고, 제 바탕화면에 있는 대표 이미지는 좀 더 차가운 느낌이네요.)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án, 1598~1664)은 16살에 세비야로 와 그림을 배우면서 한때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와 교류하기도 했다. 수르바란은 명상 중인 성인이나 성직자, 수도 생활을 주제로 한 종교화를 주로 그렸다. 성인이나 성물 숭배에 비판적이었던 신교와 대조적으로,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지의 가톨릭권에서는 대중의 신앙심을 자극하는 도구로 미술을 활용했고, 덕분에 종교화의 수요가 많았다.
수르바란은 특히 프란체스코 성인을 많이 그렸다. 성 프란체스코(Saint Francis of Assisi, 1181-1226)는 아시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20세에 회심하여 모든 소유를 버리고 복음을 전파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한 성인이다. 내셔널 갤러리의 <명상하는 성 프란체스코>는 최소한의 수사와 색채로 명상의 고요와 영성을 담아낸 걸작이다. 무릎을 꿇고 몸을 세운 프란체스코는 두 손의 깍지를 낀 채 해골을 안고 있다. 그는 해골이 상징하는 죽음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을 묵상 중이다.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빛은 그의 묵직한 의복을 비춘다. 여기저기 덧대고 해진 가운은 그가 설립한 프란체스코회의 청빈의 삶을 암시한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망토 후드의 그림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관람자는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보일락 말락 넉이 나간듯한 두 눈과 벌어진 입은 프란체스코의 종교적인 열망을 전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질서는 그 자체로는 사소한 것들을 무작위로 모아 놓은 것이다.”
- 헤라클레이토스
수르바란은 ‘수도사들의 화가’로 불릴 만큼 종교화 전문이었지만, 그의 언어는 몇 점 안 되는 정물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물컵과 장미>는 30대 초반의 수르바란이 그린 (A4 크기의) 작은 정물화다. 백랍 접시 위에 놓인 앙증맞은 커브 손잡이가 달린 유백색의 물컵, 그리고 접시 한편에 걸쳐있는 분홍 장미가 화면을 가득 메웠다. 반질반질한 금속 접시에서 유영하는 빛, 부드러운 도기컵 안에 가득 담긴 맑은 물, 우아하고 섬세한 장미 꽃잎까지, 일상의 작은 물건이 지닌 아름다움과 균형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계속 바라보다 보면 마음은 단정하고 맑아진다.
가톨릭의 권위와 종교가 삶을 지배했던 17세기 스페인에서 일상의 사물은 종교적 의미도 전달했다. 물이 가득 찬 컵은 예수를 잉태하기 위해 선택된 동정녀 마리아의 순수를 상징했다. 가시 없는 장미는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믿음(무염시태, Immaculate Conception)을 의미했다. 이처럼 수르바란의 정물화는 보는 이를 사물 자체에 대한 명상과 함께 종교적 묵상으로 이끌었다.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이 그림을 활용한 5분 명상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Klxy1Yc-jo
몇 년 후의 <레몬과 오렌지, 장미가 있는 정물>은 수르바란의 정물화 가운데 가장 크고 유일하게 서명이 남아있는 작품이다. 나무 탁자 위에 세 그룹의 정물이 나란히 놓여 있는데, 위에서 살펴본 물컵과 장미가 다시 등장한다. 검은 배경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물론 따듯한 색감의 과일들이다. 백랍 접시 위에 레몬, 바구니 안에 풍성하게 담긴 오렌지는 관람자의 감각을 일깨운다. 신 레몬과 상큼한 오렌지는 침을 고이게 하고, 오렌지꽃과 장미향이 코끝으로 전해진다. 감귤류 과일의 거친 껍질, 차고 단단한 접시, 촘촘하게 짜인 버드나무 바구니도 만져질 듯하다. 종교적인 맥락에서 세 정물의 배열은 성 삼위일체(Holy Trinity)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혹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리스도를 잉태한 마리아에 대한 경배와 묵상으로 이끈다. (장미와 물컵이 마리아의 순수를 의미하듯이 오렌지나 레몬은 성모와 천국을, 오렌지꽃은 순결을 상징한다.)
『스틸라이프』(2023)의 저자 가이 대븐포트는 정물화의 기원을 이집트(무덤에 죽은 자를 위한 음식 그림)와 이스라엘 구약의 전통에서 논했다. 수르바란의 그림은 물론 구약의 전통과 연관된다. 기원전 8세기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이스라엘 왕국의 영적 타락과 부패가 판치자 하느님은 아모스에게 ‘여름 과일 한 바구니’를 보여주신다. 아래 말씀처럼 먹음직스러운 풍성한 과일은 이스라엘의 종말이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정물은 하느님의 자애와 자연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우리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상징’(p. 32)하며 다양한 묵상을 이끌었다.
“아모스야, 무엇이 보이느냐?”, “여름 과일 한 바구니입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종말이 다가왔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으리라. 그날에 성전의 노래가 통곡으로 바뀌리라....” (아모스 8:2-3)
정물화는 17세기에 황금시대를 맞은 네덜란드에서 부유한 시민들의 수요와 취향에 따라 크게 발전했는데, 스페인에서는 조금 다른 ‘보데곤(bodegón)’이라는 전통이 자리 잡는다. 보데곤은 식료품 저장실(pantry), 선술집을 의미하는 보데가(bodega)에서 온 용어로, 일반적으로 다양한 식료품과 사냥감, 그릇 등을 그린 정물화를 가리킨다. 때론 벨라스케스의 <계란 부치는 노파>처럼 부엌이나 선술집을 배경으로 한두 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 풍부한 음식과 사치품이 등장하는 네덜란드의 정물화는 감각적인 쾌락을 자극하지만, 스페인의 보데곤은 이처럼 어두운 배경에 개개의 특질에 집중하며 전체적으로 허식이 없고 엄격한 분위기다.
그 선구자인 후안 산체스 코탄(Juan Sánchez Cotán, 1560~1627)의 <마르멜로, 양배추, 멜론과 오이>을 살펴보자. 그의 정물화는 보통 이렇게 검은 배경 창틀에 몇 개의 과일과 야채, 사냥감 등이 묘사된다. 마르멜로(quince)와 양배추는 당시 관습대로 부패를 막기 위해 실에 걸려 있다. 멜론은 먹음직스럽게 잘려 있고 돌출된 오이는 만져질 듯하다. 16세기 톨레도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가톨릭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은 코탄은 엄격한 금욕생활 속에서 하느님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카르투지오 수도원에 들어가 작업하기도 했다. 보잘것없는 음식 재료도 그가 설정한 무대에서는 신이 창조한 피조물의 아름다움과 세계의 질서를 드러내며 강렬한 존재감을 갖는다. 흙암의 배경과 강렬한 빛, 엄격한 구성과 만져질 듯한 그의 사실주의는 수르바란에게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수르바란의 정물화는 코탄의 보데곤처럼 당시 스페인 가톨릭의 영성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수르바란은 50세경에 그린 위의 <그릇이 있는 정물>을 이후 다시 한번 그렸다. 카탈루냐 미술관에 소장된 아래 작품은 이전 것과 비슷하지만 색채가 더 어둡고 질감도 거칠어졌다. 젊어서부터 금욕적이고 엄격한 언어로 수많은 종교화 주문을 받았던 수르바란은 1640년대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 1617-1682)라는 화가의 등장으로 점차 하향길을 걷게 된다. 신대륙 무역의 중심지로 융성했던 세비야는 17세기 중반 중심지가 카디스로 옮겨간 데다 흑사병의 유행(1649)과 기근(1651)까지 이어져 쇠퇴하게 된다. 어두운 시대에 무리요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종교화가 큰 인기를 끌면서, 주문을 받지 못한 수르바란은 1658년 마드리드로 이사했다. 안타깝게도 무리요처럼 부드러운 양식을 시도하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1664년 결국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두 번 그린 이 정물화는 잘 나가던 수르바란이 유행에서 뒤처진 침체기 동안 제작되었다. 이후에 그린 것이 더 어둡고 거친 것은 화가의 암울한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 작품의 주문과 관련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여기에 등장하는 그릇들은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되기보다 찬장이나 선반 놓여 소유자의 부유함을 드러내는 용기에 가깝다. 부인과 사별하며 두 번에 걸쳐 부유한 여인과 결혼했기에 화가가 소유한 물건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정물화는 시간의 일시성과 덧없음을 전하는 꽃이나 과일, 음식 등이 등장하지 않는다. 단단하고 반들반들한 그릇만 단출하게 배열된 구성으로 별 상징 없이 느린 관조와 평온으로 이끈다고 여겼다.
수르바란을 알아가면서 결국 나는 이 정물화에서 세상과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과 섭리를 읽게 되었다. 5년 동안 보면서 종교적인 의미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적지 않게 놀랐다. 각각 고유한 형태와 용도의 도기는 세계에서 만나는 가지각색의 사람들로 보인다. 키 작은 부자와 멋쟁이 여성, 이국적인 외국인, 푸근한 아저씨가 떠오르는 그들은 외모도 차림도 피부도 출신도 다양하고 세상에서의 쓰임과 평가 가치도 다르다. 하지만 모두 예외 없이 빛(신의 은총)을 받는 존재다. 세상 가운데 죄성에, 절망에 물든 인간에게 은총의 빛은 어둠을 물러가게 하고 각자의 고유함을 드러낸다. 자세히 보면 그릇들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배치되지 않고 축을 조금씩 벗어나 자연스럽게 놓여 있다. 그림자의 방향이 조금씩 다른 것도 흥미롭다. 다시 말해 은총의 빛은 각각의 고유한 개성과 조화로운 질서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비추고 있다.
수르바란과 함께 17세기 세비야를 대표했던 화가 무리요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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