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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연희 Jun 08. 2024

조안 미첼의 나무

: 몸짓으로 새긴 느낌의 풍경

 

조안 미첼, <피나무 Tilleul>, 1978년, 캔버스에 유채, 280 x 180cm


나무를 노래한 화가들 가운데 조안 미첼은 가장 자유롭고 거침없이 나무를 표현한 화가다. 첫눈에 이 그림은 대담한 붓질이 인상적인 추상화로 보인다. 제목을 확인하면 어느새 눈부신 햇살 속에 하늘로 가지를 뻗어낸 나무가 보인다. 아우성치는 듯한 검은 가지들 사이로 파랑과 초록 자취에는 하늘과 잎의 기운이 서려있다. 피나무를 검색해 봐도, 실비아 플리맥 맨골드가 그린 우아한 연둣빛 피나무(1988)와도 무척 다른 모습이다. 미첼은 반평생을 보낸 프랑스 베퇴유 집 앞의 거대한 피나무를 종종 그리곤 했는데, 노랑이 인상적인 이 그림은 초봄의 모습처럼 보인다. 화가는 분명 나무 앞에서 하늘로 솟구치며 잎을 틔어 내는 생명력과 주변의 따듯한 기운을 느꼈을 것이다.          




파리 작업실에서 조안 미첼, 1956년

조안 미첼(Joan Mitchell, 1925~1992)은 1925년 시카고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시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예술을 가까이했고, 피겨 스케이트와 다이빙으로 다져진 몸놀림은 향후 작업에 반영되었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고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 그녀의 그림은 점차 추상화된다.


1949년 미첼은 결혼과 동시에 뉴욕으로 이주한다. 제2차 세계대전(1939~45) 이후 뉴욕은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추상 형식에 감정과 표현의 언어가 강조된 추상표현주의는 크게 두 부류로 나타났다.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과 같은 액션 페인팅 화가들은 몸짓과 붓질을 효과, 물감의 물성을 중요시했다. 반면 마크 로스코와 로버트 마더웰, 클리포드 스틸 등의 색면 화가들은 정신성의 표현에 집중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커다란 캔버스에 이미지를 거부하고 전면을 균일하게 채우는 작업 행위로 표현을 완성했다.

  


조안 미첼, <도시 풍경>, 1955년, 리넨에 유채, 203.2 x 203.2cm, 시카고 대학교

1950년대 미첼은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리듬감 있는 붓질과 색면을 활용한 언어를 구축해 나간다. 특히 공격적인 붓질과 강렬한 색채를 구사한 윌렘 드 쿠닝(1904~1997)의 영향이 지적된다. 미첼은 추상표현주의자들과 ‘9번가 쇼’ 전시(1951)에 초대되었고, 남성 위주의 클럽에도 참여해 토론과 교류를 이어나갔다.


미첼의 추상화는 대부분 '무제'가 제목이지만, <허드슨강>이나 <무당벌레>, <정오> 등 특정 대상이나 장소, 시간 등도 다루어졌다. <도시 풍경>을 보면 빽빽한 도시의 화려함과 에너지는 물론 도시 생활의 우울함과 스트레스까지 전해진다. 미첼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말로 구사할 수 없는 그런 경험과 느낌, 분위기를 정의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붓질과 색채라는 시각언어로 미첼은 그 느낌을 포착하고자 노력했다.   



조안 미첼, <솔송나무>, 1956년, 캔버스에 유채, 231.1 x 203cm, 휘트니 미술관, 뉴욕


1955년부터 미첼은 파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작업한다. 결혼은 몇 년 만에 파경을 맞았고, 파리에서 캐나다 화가 장 폴 리오펠레를 만나 격동의 관계를 20년 넘게 이어간다. 이 시기 <솔송나무>는 처음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흰 색면들 사이로 초록이 슬쩍슬쩍 드러나 있어 마치 눈에 뒤덮인 것처럼 보인다. 종잡을 수 없는 빠른 붓질로 인해 나뭇가지가 서로 엃혀 춤을 추는듯하다.


이 작품은 밤이 올 때 어둡고 쓸쓸한 느낌을 솔송나무의 색채와 비교한 월리스 스티븐슨의 시 <검정의 지배>(1916)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시를 썼던 미첼은 뉴욕과 파리에서 프랑크 오하라, 사무엘 베케트 등 유명 시인, 작가들과 가까이 지냈다. 를 낭송하거나 음악을 듣는 일상에서 떠오른 특정 시공간의 기억과 감성은 이렇듯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로 번역되었다. 잭슨 폴록이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즉흥적으로 물감을 붓고 흩뿌렸다면, 미첼은 캔버스를 세우고 천천히 숙고한 후에 붓질을 더했다. 어려서부터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과 능숙한 몸놀림은 붓질을 더욱 다채롭고 자유롭게 했다.



조안 미첼, <첫 사이프러스>, 1964년, 캔버스에 유채, 224.1 x 197.4cm


1960년대 초반에 미첼의 그림은 위의 작품처럼 침울한 색조와 중심에 덩어리가 등장하는 양식으로 변화한다. 캔버스에 내던져지고 손으로 뭉갠듯한 암녹색의 물감 덩어리와 주변에 신경질적으로 뻗어나간 선들, 흘러내리거나 흩뿌려진 물감도 보인다. 사이프러스 나무 앞에서 화가는 왜 응어리진 답답함과 분노를 느꼈던 것일까. 아버지의 죽음, 이어 어머니가 암에 걸리면서 미첼은 이 시기 ‘매우 폭력적이고 화가 난 그림들’이 나왔다고 말한다.  


조안 미첼, <나의 풍경>, 1967년 캔버스에 유채, 261.3 x 180.9cm 스미소니언 미국 박물관, 워싱턴


우울함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미첼은 도시를 탈출해 프랑스 바다와 해변 마을에서 시간을 보낸다. 작은 배로 항해하며 바라본 바다와 절벽, 작은 마을과 자연은 화가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자리 잡았다. <나의 풍경>은 자연의 수혈을 받은 화가의 내면 풍경이다. 푸른 바다, 군데군데 초록 나무와 꽃이, 그녀를 스친 바람과 찬란한 햇살까지 느껴진다. 그 풍경은 고요하고 잔잔하진 않지만, 꿈틀거리는 활기찬 자연의 기운으로 가득 차있다. 내 마음속의 풍경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그림을 그릴 때 나를 자극하는 것은 한 색이 다른 색에게 미치는 것, 그리고 공간과 상호작용의 차원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 조안 미첼



조안 미첼, <해바라기>, 1969년, 캔버스에 유채, 259 x 179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7년 동안 암과 사투를 벌였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1968년 미첼은 지베르니 근처 베퇴유(Vétheuil)에 토지를 매입해 정착한다. 센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에는 한 때 클로드 모네가 거주했던 집도 위치해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13마리의 반려견과 누리는 기쁨은 점차 그녀의 작품에도 반영되었다. 정원에 다양한 식물과 꽃들 중에서도 미첼은 특히 해바라기에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미첼은 말년까지 커다란 캔버스에 해바라기를 계속 다루었다. 초기작(1969)을 보면 미색 바탕에 노랑 물감 덩어리가 눈에 띈다. 상단에는 핑크와 보라, 파랑 등이 더해져 꽃다발처럼 화려하다. 아래쪽엔 잎을 떨구고 갈변한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미첼은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어느새 생을 다해가는 그 모습에서 생의 유한함을 절감했다. 물론 좋아했던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미첼은 눈부신 모양새와 희망이라는 상징을 받아들였다. 이후 병환이 짙어가던 말년에 해바라기는 주황과 빨강, 파랑과 검정까지 다양한 색채로 등장한다. 초기의 섬세한 묘사와 다른 굵고 단순한 붓질의 자취는 생의 마지막 에너지를 전달한다.



“음악, 시, 풍경, 나무, 개들은 붓을 들게 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를 생존하게 한다.”  - 조안 미첼(1974)


조안 미첼, <피나무 Tilleul>, 1977년, 타원형 캔버스에 유채, 94 x 73cm/종이에 파스텔, 48.9 x 34.9cm
조안 미첼, <피나무 Tilleul>, 1978년, 캔버스에 유채, 260 x 180cm, 240 x 179.7cm


미첼이 집 앞마당에서 매일 보았던 피나무는 이렇듯 다채로운 경험과 감정을 선사했다. 타원형 캔버스 안에 나무는 한 여름의 싱그러운 잎사귀를 창문을 통해 보는 듯하고, 검정과 갈색, 청록이 더해진 파스텔 색면화는 나무의 푸르름 속에 둘러싸인 느낌을 준다. 주황과 보랏빛이 도는 장면은 가을에 변신한 나무임을, 색이 사라진 마지막 작품은 잎을 모두 떨군 겨울나무임을 짐작할 수 있다.

    

미첼이 어린 시절부터 미술관에서 보고 영감을 받았던 화가들, 즉 세잔 고흐, 마티스, 칸딘스키 등은 구성에 추상의 요소를 더했고 풍부한 색과 선, 제스처로 그림에 시각적 리듬과 감정을 불러일으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첼에게 대상이나 풍경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남긴 느낌이었다. 물론 기억된 감정은 시간에 따라 변화했고, 같은 풍경도 계절과 시간, 자신의 상태에 따라 이렇듯 다른 분위기와 감정을 남겼다.



조안 미첼, <장밋빛 인생>, 1979년, 캔버스에 유채, 280.3 x 681.3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1970년대 후반 언니와 절친한 비평가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미첼은 대형 파노라마작을 그리면서 그들을 추모했다. 1979년 오랜 연인 리오펠레와의 관계도 종지부를 찍으면서, 미첼은 네 폭으로 구성된 <장밋빛 인생>을 남긴다. 연보라와 연핑크 바탕에 굵은 검정 붓질, 파랑과 보라의 흔적은 변화하는 인생의 단계들을 이야기한다. 사랑에 빠진 남녀의 황홀한 첫 만남에서부터 잔잔한 안정기, 사랑이 허물어져가고 결국 이별의 저항과 고통의 단계에 다다른다. 애정하는 가수 에디트 삐아프의 <La Vie en Rose>에서 영감을 받아 미첼은 캔버스에 찬란한 사랑과 그 변화의 슬픔을 담아낸 것이다.   


조안 미첼, <사이프러스>, 1980년, 캔버스에 유채, 220.3 x 360.9cm,


조안 미첼, <나무>, 1991년경, 캔버스에 유채, 240.3 x 401cm,


1984년 구강암에 걸린 미첼은 치료 중에 턱을 못쓰게 되었고, 불안과 우울증에 빠지며 지독하게 술을 마셨다. 이후의 그림은 약해진 몸과 정신을 반영하듯 붓질이 투박하고 엉성해진다. 고관절에 문제가 생기면서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수채화, 파스텔화와 같은 소형 작품을 주로 그렸다. 특히 말년에 그린 나무들에서는 위와 같이 굵은 몸통이 강조되었다. 자연과는 다른 화려한 색채의 팔레트, 힘을 다한 스타카토 붓질로 구축된 나무는 생의 에너지와 활기로 충만하다. 아래와 같이 거대한 석판화로도 제작된 나무 시리즈는 자유롭고 반항적이면서도 우아하고 강렬한 구성을 보여준다. 1992년 사랑하는 화가 마티스의 전시를 보러 뉴욕에 왔던 미첼은 폐암까지 걸린 것을 알게 되고 베퇴유 집으로 돌아간다.   



조안 미첼, <나무 VI>, 1992년, 석판화, 144.8 x 208.9cm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을 때 미첼이 완성한 마지막 작품은 <고마워 Merci>다. 군청과 주황의 강렬한 대비, 긴박하면서도 힘찬 붓질로 간결하게 감사를 표현했다. 유언과도 같은 이 그림을 그리면서 화가가 느낀 자유와 해방감도 전해진다. 미첼은 고흐의 아름다운 편지에서 그가 해바라기의 존재 자체에 감사를 느꼈던 것처럼 나무가 존재하기에 감사하다고, 나무를 비롯해 개, 강, 꽃까지 그 존재에 대한 감사가 그녀 그림에 관한 모든 것이었다는 말을 남겼다.  



조안 미첼, <고마워 Merci>, 1992년, 캔버스에 유채, 280 x 359.4cm



(작품 이미지 출처)

https://www.joanmitchellfounda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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