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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an 05. 2024

겨울 출근길과 따뜻한 라떼

#1

따라라라 따라라라 아침 6시. 핸드폰의 알람이 울린다. 너무 일상이 되어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만큼 몸이 먼저 반응한다. 오늘은 조금은 피곤한 월요일 아침이다. 이번 주는 어떤 한 주가 될까? 늘 그렇듯이 시간만 잡아먹는 아침회의로 시작하겠지. 아! 제발 오늘은 같은 얘기 한 번만 들었으면 좋겠다.

정대리가 오 부장님을 자극하지만 않으면 좋을 텐데. 이제 막 대리로 진급한 김준영 대리는 가득 찬 열정에 비해 일을 잘하지는 못한다. 아직 업무의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 걸까? 이런 생각도 잠시 들었다. 

알람이 한번 더 울린다. 10분이 지났다는 뜻이다. 이불속의 따스함에 비비적거리느라 10분의 시간은 10초도 채 되지 않는 느낌이다.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이다. 두 번째 알람은 경고다. 얼른 씻고 준비해서 집을 나서야 한다. 지하철 역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리는 살짝 언덕배기에 살고 있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에는 눈이라도 와서 얼어 버리면, 차라리 눈썰매를 타고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가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언덕이다. 서울생활 벌써 15년째, 조금 나아진 것이라곤 조금 올라간 월급과 학생 때와는 달리 방이 2개나 되고, 거실과 부엌이라고 구분될 만한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것. 더 나빠진 것인지 아니면 이제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가난하긴 했어도 꿈과 열정이 넘쳤고, 생각과 몸이 자유로웠던 그때와는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에서 월급날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일어나야지. 얼른 씻고 나가자! 엄청난 2호선의 인파에 몰려서 출근을 하느니, 차라리 조금은 일찍 나가는 편이 나으니까. 아직은 2월 초. 겨울이다. 꽤나 쌀쌀하다. 몇 만 원 되지도 않는 난방비를 아껴보겠다고 핑크색 돼지가 그려진 수면잠옷에 제대할 때 들고 나온 깔깔이를 입고 자는 모습은 영락없이 멍청해 보인다. 따스한 이불이 나를 너무 노곤하게 만들지만 어쩔 수 없다. 씻자!! 후다닥 씻고 옷을 입고 넥타이도 맸다. 핸드폰을 열어 날씨를 보니 날씨가 조금은 풀릴 것 같다. 지난 토요일에 50 퍼센트나 할인된 가격으로 산 새 코트를 입고 집을 나섰다. 날씨 앱에서는 분명히 오늘은 날이 풀린다고 했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꽤 쌀쌀하다. 슬슬 몸이 으슬으슬 거리는 것 같다. 그래도 이번 주 금요일은 창업기념일이라, 나흘만 출근하면 주말이다. 기운 내자! 


그래도 역시 목도리는 두르고 나왔어야 했나 보다. 아직은 밤이 길다. 7시 15분 전, 캄캄하다. 나만 깨어있겠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캄캄하지만, 세상은 이미 내가 늦은 것처럼 보일 만큼 깨어있다. 서울대입구역. 2호선 출퇴근 시간이 끔찍하게 느껴질 만큼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노선이다. 바삐 움직인 탓에 아직은 한산하게 느껴진다. 처음 대학에 입학하고 살기 시작한 동네, 신림동.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 이 동네를 떠날 줄 알았는데, 서울에 올라온 지가 벌써 15년 째다. 아직도 여전히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역삼역, 회사가 있는 곳이다. 이제 막 7시 30분이 조금 넘었다. 회사 근처 작은 카페에서 뜨거운 라떼에 시럽을 듬뿍 넣었다. 달다 못해 쓴 맛이 나는 라떼가 수년째 나의 아침식사이다. 뜨거운 라떼 컵을 들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지난주 금요일에 대충 마무리하고 간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좋은 아침이에요.” “네! 주말 잘 보냈어요?” 상냥한 한나라씨의 목소리의 톤이 높다. 지난주에 급하게 스웨덴 업체에 이메일을 썼다. 과연 어떠한 답변이 와 있을까? 성격 탓인지 업무 메일을 보내고 나면 답변이 기다려져 주말이고 새벽이고 핸드폰 앱으로 메일을 확인했었다. 직장 생활의 연차가 쌓여서 인지 아니면 이제 업무와 내 사생활을 분리시키고 싶어서인지 그렇게 24시간 업무 모드로 지내지 않는다. 컴퓨터를 켜고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치고 가방을 정리하고 구두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아직 업무시간이 시작하지는 않았다. 스웨덴 업체와 일을 해서 그런지.. 아침이면 스웨덴어를 공부한다. 중국어는 학부 때 지겹게 해서인지 더 이상 보기도 싫다. 그렇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은 다 영어 공부할 때 나는 스웨덴어라니! 조금은 엉뚱한 것 같지만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금은 특별한 언어로 느껴졌다. 나도 가끔은 나름 독특하다는 소리 좀 듣고 살았다. 아마도 내 개인적인 얘기를 거의 공유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친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Idag är det kallt.” 블라블라,,, 아침부터 이국적인 글자에 집중하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국적인 소리와 함께 시럽을 듬뿍 넣어 달짝지근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이면 내가 역삼동 사무실의 한 평 남짓한 내 책상 앞이 아니라 약간은 을씨년스러울 것만 같은 북유럽의 작은 카페에 앉아서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 스웨덴어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우연히 들른 서점 어학코너에서 무심코 집어 든 책이 스웨덴어 책이었을 뿐이다. 그 후로 나는 6개월째 매일 아침 공부를 하고 있다. 영어와 비슷하기도 독일어와 비슷하기도 한 것 같지만 특유의 발음과 느낌이 있는 언어이다. 스웨덴인구 1천만이 되지 않는다. 스웨덴어를 쓰는 인구는 1500만 명 정도? 노르웨이가 스웨덴어와 거의 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요즘 광고에 나오는 말처럼 100세까지 산다고 하면, 앞으로 남은 인생이 60년 정도이다. 그 남은 기간 동안에 나는 스웨덴어를 입 밖으로 꺼내서 내 의사를 전달할 기회가 올까?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늘 똑같은 하루에서 조금이나마 색다른 경험을 하기에는 딱 좋다. 


벌써 8시 40분 사람들이 하나둘씩 오더니 어느새 텅 비었던 사무실이 꽉 들어찼다. 서로들 인사하느라 바쁘다. 다들 주말에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댄다. 다들 뭐가 그리 재밌고 할 얘기가 많은 걸까? 9시. 드디어 본격적인 업무의 시작이다. 드디어 금요일 부랴부랴 보낸 스웨덴에서 온 답메일을 확인한다. 요즘 내가 맡은 일 중에 하나는 스웨덴에 있는 커피회사에서 원두를 수입해 오는 일이다. 세상에! 스웨덴에서 커피 원두라니! 드넓은 아프리카대륙이나 남미대륙도 아니고 적어도 베트남도 아니고, 이탈리아도 아닌 스웨덴이라니! 물가도 비싼 스웨덴에서 원두를 수입하는 일이라니 아마 다들 이해가 안 간다고 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었고. 스웨덴은 세계 최대 커피 소비국 중에 하나이다. 사람들이 커피를 엄청 좋아한다고 한다. 새로 시작한 스웨덴어 공부와 맡게 된 스웨덴 커피 원두의 수입 건으로 인해서 조금은 스웨덴 커피에 관심을 가지려고 주말에는 스웨덴 커피를 판다는 가로수길의 카페를 가기도 했다. 나는 스웨덴과 관련된 무역일을 하고 있다. 물론 중국과 관련된 업무도 하고 있다. 여하튼, 스웨덴 커피 회사에서 온 답변은, 그 정도 가격이면 오케이라는 것이다. 간단하다. 이제 계약서만 작성하면 끝이다. 생각보다 오래 끌어온 일의 마무리는 참 쉽다. 이제 간단히 서류를 작성해서 승인을 받고 계약서만 쓰면 끝이다. 정식으로 스웨덴의 커피가 서울로 들어온다. 아마 우리 회사가 가장 많은 커피를 수입하게 될 것이다. 책상 앞에 붙어 있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스웨덴 말뫼의 거리 사진을 본다. 한없이 슬프고 차가워 보인다. 그 차가움 속에 뭔가 따뜻함이 있는 거리다. 언젠가 저 거리 한 켠에 있는 카페에 앉아 있으리라. 살짝 한숨을 쉬고 오늘의 업무를 시작한다. 여기저기 시끄럽다. 블라 블라 블라…. 여기저기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막 섞여서 들려온다. 오늘 목도리를 두르지 않은 탓일까 살짝 두통이 생기면서 어지러운 느낌이 든다. 살짝 미뤄 놓은 업무를 마치고 나니 벌써 11시 45분 점심시간 15분 전이다. 12시 정각엔 너무 붐빌 테니, 지금쯤 나가야 조금이라도 덜 기다리고 점심을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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