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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an 05. 2024

감자탕과 커피

#2

”정대리, 점심 먹으러 갈까?”

”오부장님, 식사하시죠?”

”이 과장님, 저 오늘은 점심 따로 먹을게요. 약속 있어요.”

”그래? 알겠어. 부장님 오늘 뭐 먹을까요?”

”글쎄? 나 어제저녁때 술 좀 마셨더니, 속이… 감자탕 어때?”

”좋아요. 그럼 요 앞 사거리에 왕가네 감자탕으로 갈까요?”

”그래, 가지.”

가족들이 모두 캐나다에 가 있는 오 부장님은 요즘 흔한 기러기 아빠다. 가끔 대학 동창 중에 같은 처지에 있는 동기들을 만나 술을 마신다. 어제가 그날이었나 보다. 그럴 때면 그는 늘 감자탕을 점심 메뉴로 고른다.

지갑과 핸드폰을 챙겨 회사 건물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가 목덜미를 타고 셔츠 안쪽까지 스며 들어온다. 목이 따뜻해야 한다며 목도리를 여며주던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또 한 번 목도리를 집에 놓고 온 것을 후회했다. 오 부장과는 전혀 대화가 없다. 간간히 하품이나 하고 있다. 점심시간 누구나 그렇듯 다들 칼바람에 잔뜩 움츠리고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횡단보도 앞에서 떨고 있다. 다들 누구와 그렇게 얘기하는 것일까? 온종일 조용한 내 스마트폰이 갑자기 멋쩍기도 하다.

”몇 명이세요?”

”두 명이요.”

”저기 안 쪽에 앉으세요. 치워 드릴게요.”

우리보다 먼저 재빠르게 점심식사를 하고 자리를 뜨는 사람들에 뒤이어서 자리를 잡았다. 식당 종업원이 와서 먼저 식사를 한 사람들의 흔적을 치운다. 점심시간이라 바빠서 그런지 조금은 더러워 보이는 행주로 대충 닦아낸다.

”감자탕 두 개요.”

”네. 물은 셀프예요.”

손을 닦으라고 준 물티슈로 조금은 지저분한 테이블을 연신 닦는다. 깔끔을 떠는 성격은 아니지만, 식당의 지저분한 테이블은 참기가 어렵다. 물수건으로 테이블을 닦고는 자리는 조금 더 떨어져 있지만, 직급도 나이도 아래인 내가 움직인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냉장고에 든 차가운 물병과 컵을 가져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팔 끓는 감자탕이 나왔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라 모든 메뉴는 늘 주문을 하자마자 나온다. 비록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오 부장과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게임을 나는 웹툰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음식이 나왔다. 정갈하지는 않지만, 감자탕에는 조금 과하다 싶은 푸짐한 반찬들도 함께 나왔다. 이 집 깍두기는 정말 최고다. 얼큰한 감자탕에 조금은 짠듯한 깍두기는 최고의 궁합인 것 같다.

”아주머니, 여기 공깃밥 하나 더 주세요!”

”부장님, 배 많이 고프셨어요?”

”혼자 사니까, 아침은 잘 안 먹게 되더라고.”

오 부장은, 뜨거운 공깃밥을 뚝딱 감자탕 국물에 말아서 마신다. 먹는 게 아니라 마신다. 가끔은 오 부장의 위장이 걱정되기도 한다.

밥을 먹고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아! 부장님,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그래. 좋아. 어디로 갈까?”

”사무실 뒤에 새로 생긴 곳이 있는데, 지난주에 가봤더니 커피가 맛있어요. 거기로 갈까요?”

”그러지 뭐. 난 도통 커피맛은 모르겠더라고. 다 비슷해.”

카페 누, 사무실 뒤 낡은 건물에 새로 문을 연 카페는 요즘 유행인 북유럽 스타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다. 깔끔하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매장 안의 공간은 넓지 않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커피를 사서 들고 간다. 

”부장님 뭘로 드시겠어요?”

”나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 둘 하고요. 하나는 얼음 두 개 넣어주세요.”

커피값이 저렴하고 (특히 아메리카노의 가격이 저렴하다.) 사무실 밀집지역에 있는 가게라 그런지 비슷한 차림의 직장인들로 가게 안이 북적거린다. 날씨가 춥지 않았더라면 그렇지 않아도 좁은 매장 안이 덜 좁았을 텐데 오늘따라 바람까지는 부는 추운 날씨라 다들 매장 안에서 각자가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고 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진동벨이 울린다. 왠지 피곤해 보이는 오 부장님을 남겨둔 채,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가져왔다. 뜨거운 커피 속으로 떨어진 얼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나는 뜨거운 것을 잘 마시질 못한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월요일의 피로가 싹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갈까요?”

”그래. 근데 갑자기 커피는 왜 샀어?”

”아! 저 스웨덴 커피 원두 수입 건이요. 협상 됐어요. 이제 계약서만 작성하면 되거든요.”

”오~ 그래?”

”신경 쓴 보람이 있네요. 있다가 계약서 초안 만들어지면, 품의 올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이 과장이 한 건 손 볼 필요가 없어서 좋아.”

”지금 겨울 방학 아니에요? 캐나다에서 가족들은 안 들어와요?”

”무슨 스키캠프 간다고 이번 겨울엔 안 들어온다네. 어휴,, 파트타임이라도 일을 하던가 해야지.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스키캠프 비용도 얼마나 비싼지 진짜 저녁에 뭐라도 해야겠어.”

말없이 걷는다. 아직 미혼이라서 그런지 잘 이해가 가진 않는다. 그저 요즘 기러기 아빠들이 많다는 얘기를 매체를 통해서 계속 보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나니 으슬거리던 기운이 조금은 가신 것 같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품의를 올리고 짧은 회의에 참석하고 살짝 졸려 동료들과 살짝 잡담을 나눴더니 벌써 5시가 넘었다. 오늘 하루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지나갔다. 슬슬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야겠다. 오늘 저녁은 뭘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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