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치앙마이도 모두 변했지만
치앙마이 두달 반 살기를 시작하고 5일차, 나의 감상을 딱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랬다.
치앙마이, 너 좀 변했다
그리고 지난 주를 마지막으로 치앙마이를 떠나온 나의 감상은 이렇다.
그래도 여전히, 치앙마이
4년 간의 세월이 흘러 마주한 치앙마이는 예상과는 조금 많이 달랐다. 아마 못 본 사이에 나도 핑크빛 꿈을 꾸었고 또 다른 사람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제주 한달살이를 겪으며 기대감을 충분히 내려놓았다고 생각했건만, 실은 그러지 못했었나보다. 신랑을 데리고 오면서 좋은 것들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어느 정도 한 몫했다.
어딜 가도 맛있었던 커피
하루에 만 원을 다 쓰기도 어려웠던 물가
누구에게든 잘 웃고 행복해보였던 사람들
열두 시가 넘으면 거짓말같이 조용해졌던 거리
단기 여행자보다 장기 여행자들이 대부분이었던 모습
그 외에도 관광객의 폭증으로 인한 교통 대란과 많아진 차량 때문에 더욱 심해진 매연까지. 사람이 많아진 만큼 치앙마이에서 겪는 불편한 사건도 늘어서인지 예전보다 안 좋은 후기가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에 또 올 것을 약속했다
여행 초반, 한국에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와 낯선 환경에 당황도 했었다. 치앙마이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택시 어플 볼트 기사의 반복되는 승차 거절로 지친 신랑은 첫날부터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켓이 끝난 시간이라 더욱 황량한 밤거리에서 먹을 것에 없어 헤매던 순간이었다. 아직 첫날이라 그렇다며 안심시켰지만, 남은 기간을 잘 지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내심 컸다.
하지만 따사로운 햇살, 입맛에 잘 맞는 다양한 음식들, 여행객이 가득한 만큼 오직 노는 분위기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신랑은 차차 안정을 찾아갔다. 나도 달라진 치앙마이에 적응하며 점차 좋아했던 것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변하지 않은 치앙마이도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여전히 사랑스러웠던 치앙마이의 면면들.
치앙마이의 메인 도로에서는 매연이 심할지라도 한 골목만 쏙 들어가면 아기자기한 상가들이 즐비하다. 작은 골목일수록 낭창낭창 늘어진 식물들이 진가를 발휘하는데. 오직 나무색으로만 가꿔진 카페들 사이를 나누는 녹색 벽을 본다면 치앙마이가 분명하다. 차가운 회색 벽이 아닌 촘촘하게 서로를 지탱하며 가림막이 되어주는 식물들은 화분이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다. 내부는 슬레이트로만 이루어진 가게들도 녹색 벽만 있다면 낭만적인 장소가 되곤 하니, 어딜 가도 플랜테리어가 가득한 치앙마이만의 멋이 있다.
덥고 습한 나라들에서 볼 수 있는 어마무시하게 거대한 나무들. 왜인지 위압적이라는 느낌보다는 풍경과 어우러져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곁을 지날 때는 나무가 큰지 몰랐는데, 막상 고개를 들어보면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은 그저 '멋지다'는 감탄사만 연발하게 한달까. 치앙마이만의 분위기가 모든 자연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하는 느낌이다.
치앙마이의 유명한 사원들은 많지만 꼭 알려진 사원이 아니더라도 접할 수 있는 사원들이 굉장히 많다. 올드타운 속 거리를 누비다보면 이름을 아는 사원도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원들도 만나게 된다. 워낙 사원이 많다보니 때론 이 사원이 저 사원 같고, 저 사원이 이 사원 같은 느낌을 받곤 하는데. 그만큼 사원을 접할 기회가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원의 분위기에 녹아들게 되는 것 같다. 관광객의 숫자가 해가 지날수록 폭증하는 도시임에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좀더 분위기있는 곳으로 느껴지는 건 사원 덕분이 아닐까. 늘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스님들과 각종 불상을 보는 환경이 여행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느낌이다.
동남아 도시를 가면서 물가가 저렴하지 않다는 건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인데. 태국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동남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전세계적으로 물가가 오른 시기이니만큼 예전만큼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저렴한 건 사실. 치앙마이는 식음료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한국의 반도 안 되는 금액으로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알에 기본 만 원은 넘어갈 열대 과일들도 세네 알 정도가 깔끔하게 잘라진 과육을 1/4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지. 게다가 원두 산지이니만큼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커피집에서도 유기농 원두를 사용하고, 그 맛 또한 굉장히 훌륭하다.
치앙마이에는 다채로운 클래스와 투어가 많다는 장점도 있다. 한국에서도 해볼까 고민하지만 비싸서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치앙마이에서는 낮은 물가 덕분에 부담을 덜고 해볼 수 있다. 태국요리나 커피 등 쿠킹 클래스부터 트래킹이나 하이킹 등의 투어 코스, 또 전통 의상 체험까지. 각종 투어 사이트가 많은데 한 가지 사이트만 보기보다는 여러 사이트를 비교해서 이용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현지에서 클래스/투어를 진행하는 업체와 직접 컨택하는 것도 가능하니 시간 여유가 되시는 분들한테는 이쪽이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치앙마이에서 생활이 편리한 것에는 인터넷도 한몫한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인터넷이 정말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인터넷 속도 빠른 거야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인터넷 속도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발전 속도는 정말이지 독보적이다. 발전하는 속도마저 비약적으로 빠르기에 어지간한 외국에 가면 인터넷의 답답함은 고질적으로 안고 가야하는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치앙마이는 여타 나라들과 비교해도 매우 좋은 속도의 인터넷을 가진 나라다. 당연히 한국만은 못하지만 충분히 빠른 인터넷은 치앙마이의 매력적인 장점이다. 괜히 디지털 노마드가 많은 나라가 아니다.
적고보니 다시금 그리운 치앙마이. 사실 변한 건 치앙마이 뿐만이 아니다. 나도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 치앙마이에 사는 사람들, 놀러오는 사람들 모두가 변했기에 변화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도착한지 고작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어제 신랑은 이런 말을 했다. 이상하게 치앙마이가 언제든 갈 수 있는 곳 같은 느낌이라고. 반나절이면 갈 수 있다는 게 굉장히 가까운 느낌이라고. 제주도 한달살기를 다녀왔을 때는 그렇지 않았던 신랑이 이런 말을 했다니. 지난 80일간 차곡차곡 쌓은 친근함과 익숙함이 그를 편안하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치앙마이가 그렇게나 매력적인 탓일까.
난치병 때문에 해외살이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그를 설득해 시작한 치앙마이 살이. 따뜻한 나라에서 이방인이지만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던 치앙마이. 커피와 마실 것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천국과도 같았던 치앙마이. 부모님과 한달살기를 함께 한다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도 만들어준 치앙마이는 여전히, 아직도 좋다.
✨본 브런치북은 신랑과 함께 하는 치앙마이 살이를 담고 있습니다. 발행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