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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Jan 09. 2024

양가 부모님 모두 치앙마이에 모시고 살면 좋겠다

오직 나만의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이번주면 끝이 나는 치앙마이 두 달 살기, 아니 두 달 반 살기. 약 80일의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중간 한 달은 나의 부모님과 함께 한 달 살기를 하기도 했고, 약 2주는 부부가 둘 다 아파서 끙끙 앓기도 했다. 이사도 4번이나 했고, 치앙다오와 람푼/람빵 등 근교 소도시도 다녀왔다.



 한가로울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정신 없이 살았던 치앙마이에서의 80일. 나름 회사 일을 하면서 브런치 글도 쓰고 유튜브까지 했으니, 꽤나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왠지 게으르게 살았다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한국과의 시차 덕분에 좀더 늦게 일어나도 괜찮은 덕분이었을까. 오전에는 게으르고 오후부터 바쁘게 살아도 충분했던, 치앙마이라서 가능했던 80일의 날들.



치앙마이에 오고 며칠 만에 생각했다.
양가 부모님 모두 치앙마이에서
함께 살면 좋겠다고.



 그렇다면 진짜 양가 부모님을 모두 모시고 치앙마이에 살면 어떨까. 실제로 일어날 일이라고 가정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려고 한다. 어쩌면 현실로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뭐든 꿈은 구체적으로 꿀수록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이 글은 미래의 나, 그리고 신랑과 부모님들이 읽을지도 모르는 글.






먼저 한국에서

 양가 부모님의 건강검진부터 할 것 같다. 미래의 나는 엄청 잘 살고 있을 테니까(?) 대형 병원에서 VIP 검진을 해드리는 거다. 양가 부모님 네 분을 다 하면 천 만 원쯤은 우습게 나가겠지만, 미래의 나야, 할 수 있지?ㅎㅎ



 기간에 따라 비자 준비가 필요할 수도 있다. 여행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비자런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게 무슨 말인가 찾아본 기억이 있다. 찾아보니 무비자 입국 기간에 맞춰 비자를 갱신하기 위해 가까운 타국을 다녀온다는 뜻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 같은 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을 방법 같았다. 부모님은 머무시는 기간에 따라 은퇴 비자를 얻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어학 비자를 얻지 않을까 싶고. 사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다 어학원에 등록해서 어학 비자를 받으시면 좋겠다는 생각. 꼭 태국어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배우는 어학원을 등록할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배운 게 아까워서라도 더욱 열심히 외국인들과 소통하며 재미를 느끼고 오래 사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치앙마이의 콘도들은 대부분 수영장이 있어서 좋다 :)



 가장 중요한 건 뭐니뭐니해도 집이다. 숙소는 양가가 너무 가까워도 불편할 수 있으니 6개월씩 지역을 바꿔보면 어떨까 싶다. 위치는 오직 님만해민과 센트럴 페스티벌 근처로 해서. 차량을 렌트하면 치앙마이 어디에 살아도 큰 불편함은 없다. 하지만 이번에 부모님과 한달살기를 하면서 역시 큰 쇼핑몰이 근처에 있는 게 어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기에. 나의 선택은 오로지 님만해민과 센트럴 페스티벌 근처뿐. 구체적인 콘도는 뭐, 이번에 정말 돈을 들인만큼 좋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비싼 것으로 할 것 같다. 역시 미래의 내가 힘써줘야 한다 :)




치앙마이에 도착하면

 우리 부모님은 와보셨지만 시부모님을 위한 일 주일의 투어를 시작한다. 일 주일이면 치앙마이 시내를 돌아볼 수 있는 기간이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어떤 일정으로 보여드리는지도 영향이 있겠지만, 최소 1년을 살아간다는 관점에서 정확하게 아시는 건 필요하다. 부모님들의 성향상 아빠들은 도로 사정을 위주로 보시고 엄마들은 일상을 무엇으로 채워 나갈지 위주로 보시지 않을까 싶다.



 일주일이 지나면 바로 받을 수 있는 차량을 렌트한다. 이번에 부모님이 오시면서 한 달의 차량 렌트를 준비하며 많은 업체와 연락을 했었다. 정말 한 곳도 빠짐없이 성수기라서 비싸다는 말을 했는데, 일반 세단 기준 3주 렌트비용은 보증금 제외 80만 원 정도였다. 그렇다면 장기로 하게 되면 훨씬 저렴하지 않을까. 어차피 치앙마이 내에서 움직이려면 기동성이 꽤 중요하고, 부모님들이 걷기에는 매연이나 인도 사정이 조금은 아쉬우니까.



 그러나 우리는 차를 빌리지 않는다. 양가 부모님께서 모두 차량이 있을테고 우리는 차량이 필요할 일이 많지 않으니까. 가끔 필요할 때면 부탁드려서 차를 이용할지도 모르겠다ㅎㅎ  




걱정되는 부분은

 우리 아빠의 더위 못 견딤과 시어머니의 향신료 힘듦이다. 아빠는 항상 잘 걷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으셨는데 이번에 보니 대낮에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셨다. 10분도 걷기를 힘들어 하셔서 이상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다. 30년간 회사생활을 하고 쉬는 날이면 자차를 몰고 다니셨으니, 굳이 더운 날 걸을 필요가 없으셨던 것. 또 시어머니는 여행을 좋아하시지만 외국 음식을 먹기 힘들어 하신다. 일본식은 괜찮았지만 동남아나 유럽/미주 음식은 영 입맛에 맞지 않으신다고. 한국식으로 탈바꿈한 프랜차이즈 쌀국수도 어려워하시니, 사실 아빠보다 시어머니가 더 걱정이다.


 

 모든 해결책은 다 원인을 들여다보면 되는 것 같다. 일단 치앙마이에 오기로 결심했다면 해결되지 못할 것은 없다. 아빠가 더위를 못 견뎌하시는 건 오직 대낮뿐이고 치앙마이의 한낮은 워낙 뜨겁기는 하니까. 그 시간에는 무조건 차를 타거나 실내에만 있으면 된다. 점심을 좀 길게 먹거나 시원한 곳에 가면 되기도 하고.



밤거리는 잘 걸었던 / 앞에서부터 신랑, 엄마, 아빠 :)



또 시어머니와는 한식이나 일식집을 가면 된다. 어차피 한국에서도 외식을 하면 아쉬울 때가 많으니까, 아쉬울 때는 집에서 우리가 해드리면 되고 또 워낙 한식 재료도 다 판매하고 있어서 어려울 게 없다는 생각. 실제로 여행 초반 아무것도 못 하던 아빠는 향수병을 호소하셨고, 덕분에 우리는 각종 한식집을 다녀볼 수 있었는데. 확실히 해외에서 먹는다는 느낌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한국에서 외식할 때보다 더 맛있는 집도 있어서 놀라기도 했다. 수십 년이라면 힘들 수 있지만 1년 정도라면 괜찮을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내가 걱정되는 부분은 벌레인데. 이건 비싼 숙소를 잡으면 해결될 테니까 역시 지금부터 돈을 부지런히 벌면 될 거라고 믿는 중이다 :)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기본적인 것과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어찌저찌 가능할 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해외에서 살기의 즐거움을 찾는 것일 것 같다. 단순하게 관광을 하는 여행과 살기를 하는 여행은 다르다는 걸 한달살기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뭐 엄청난, 완전히 다른,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빨리빨리 관광을 하는 것과 느린 호흡에서 좀더 일상에 스며든다는 것은 내가 느끼기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중요한 건 단순하다. 좋은 걸 더 오래, 더 여유롭게 즐기는 게 아닐까.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해외에 온 이상 한국에서의 번뇌와 잡다한 일은 반강제적으로라도 내려놓으실 수 밖에 없다.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고 좋아하는 것을 즐겨보시게 하는 거다. 좋아하는 걸 모르신다면 뭐든 다 해보시면 된다. 쿠킹 클래스도, 트래킹 코스도, 비건 레스토랑도, 골프도, 테니스도, 수영도, 정말 치앙마이에서는 해볼 수 있는 게 너무나도 많다.



 클래스라는 점에서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돈도 돈이고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이런저런 이유들이 생기기 마련이라서. '잘 노는 것'이 1순위가 되는 삶에서의 기준은 아무래도 바뀔 수밖에 없다. 한국 돌아가면 자랑하셔야 하니까 이것저것 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싶고 :)




이번에 간 치앙다오의 밤하늘



아마 양가 모두 골프와 수영은 당연히 하시게 되지 않을까 싶고 추가로 한두 가지를 더 하시면 좋겠다. 한 달에 한 번은 치앙다오나 람빵 같은 근교에도 가면 좋겠다. 수코타이도 이번에 가보시려다 못 갔는데 다음에는 가면 좋겠고. 또 1년 이상 거주하게 된다면 6개월에 한 번은 근처 국가에도 나가보는 거다. 언어 공부도 하셨으니(ㅎㅎ) 여기저기서 써보시도록 하고 더 많은 곳을 자유롭게 다니시게도 하고.



더이상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는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으니 여기서 그만. 하지만 상상 속에서라도 나는 돈을 잘 벌고, 양가 부모님들은 행복하시고, 또 신랑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 물론 이건 모두 양가 부모님에게 동의되지 않은 사항이다. 아빠는 더위에 지쳐했고 엄마는 매연에 두통을 호소했으며, 시부모님은 아직 와본 적도 없으시니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꼭 치앙마이가 아니더라도 양가 부모님들을 모시고 해외에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또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2023년의 마지막 밤, 번잡스러움이 싫어 집안에서 조용히 새해를 맞기로 한 우리 부부는 운좋게도 집안에서 보이는 각종 불꽃놀이들에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통창으로 보이는 700주년 경기장쪽, 도이사켓쪽, 센트럴 페스티벌쪽에서 각기 다른 화려한 불꽃들을 쏘아올리는 통에 영상까지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계단처럼 하늘을 오르는 도이사켓의 풍등과 700주년 경기장의 화려한 조명과 뒤섞여 아름답게 수놓이는 불꽃들까지. 센트럴 페스티벌도 지지 않겠다는 듯 마구 터지는 색채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러이끄라통 때 직접 본 불꽃보다 훨씬 예뻐서 가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한창 불꽃을 보다가 다리가 아파 침대에 걸터 앉았는데 갑자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나보고 잘못 건 게 아니냐며 말을 꺼냈지만 사진만 찍고 있던 내가 잘못 누를리 없는 통화. 엄마에게 스킬을 배운 건지 아빠도 이 수법을 써먹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솔직하지 못한 우리 가족들이다ㅎ 굳이 따지지 않고 모른 척하자 아빠도 모른 척 대화를 시작했다. 잘 지내냐는 이야기와 지금 치앙마이에서 사온 술을 한 잔 하고 있는데 맛있다는 이야기 등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사실 아빠는 치앙마이에서 지낼 때는 쌩쏨이 맛없다고 했었다. 음식도, 사람도, 풍경도 특별할 것 없는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막상 떠나고 난 후부터는 이곳을 엄청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전 가족끼리 중국에 갔을 때도 3박 4일 내내 불평만 하다가 돌아가는 길에 다시 여행을 오면 좋겠다고 했었다. 대학 다니면서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3박 4일 내내 불평불만만 들은 나로서는 너무 서운했었다. 나이도 먹고 결혼도 해서일까, 더이상 아빠의 말이 불만으로 들리지 않았다.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곳에 대한 아쉬움으로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내 삶을 만들어준 것이 부모님이라서, 이런 이유보다는. 그냥, 그냥 아쉬워하시는 게 싫다. 다시는 못 올 것처럼 말하는 것도 그런 표정도 보기 싫고, 당연히 올 수 있고 다음에는 뭔가를 더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고 살면 좋겠다. 엄마도 아빠도, 그리고 시어머니도(시아버지는 우리 신랑보다 더 젊은 마음을 지니고 계시기에 괜찮다). 그래서 나는 네 분이 싫어하지 않는 한 자꾸 요구하게 될 것 같다. 같이 어디 가자고, 어디 가서 살아보자고, 여기 괜찮다고. 다음에는 더 좋은 데를 가자고.





✨본 브런치북은 신랑과 함께 하는 치앙마이 살이를 담고 있습니다. 발행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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