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보내는 평온한 일상의 조각
우리는 부부가 함께 치앙마이에 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달살기를 하는 곳에서 우리는 세달살기를 계획했고 약 80일 정도를 살고 있는 중. 예전에 혼자 치앙마이 한달살기를 하며 아쉬웠던 만큼 기간을 길게 늘려보았고, 늘린 기간만큼 우리는 여유로워졌다.
뭘 해도 빨리빨리가 몸에 배어있는 나와 뭘 해도 완벽하게 시간보다 미리미리 해두지 않으면 불안한 신랑은 환상의 조합이었다. 우리 둘이 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아마 왜 저렇게 사나 싶겠지만, 나름 빨리빨리 미리미리로 살다가 스위치를 끄면 탁 하고 늘어지는 사람들이다. 우리끼리 행복하면 된 거니까. 나는 이런 성격을 가지고 느긋하게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치앙마이를 가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또 신랑에게도 이런 여유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장기 여행을 불안해하는 그를 데리고 결국 치앙마이에 왔다. 다행히 신랑은 치앙마이를 꽤 마음에 들어했다. 초반의 어수선했던 적응 기간을 거쳐 이제 두 달 정도 산 지금, 게을러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여유로운 요즘이다.
치앙마이 살이를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치앙마이에서 저희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라고 :)
뜬금없지만 치앙마이의 콘도들은 대부분 암막 커튼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암막 커튼이 아니기도 하다. 왜냐하면 커튼봉이 고정되어야 할 천장이 우리나라처럼 홈이 파여있는 게 아니다보니, 커튼봉이 일반 벽에 붙어 있어서 무조건 빛이 새어 들어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일까, 콘도들의 커튼은 딱 불평하기에는 애매할 만큼만 가로 길이가 짧다. 딱 한 뼘만 더 길었으면 좋겠는데 대체 왜 이 한뼘을 더 길게 안 만들어서 빛이 새어들어오게 하는지.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어 자칭 암막 커튼을 뚫고 들어오면 눈이 부셔서 잠에서 깬다. 사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다(ㅋㅋㅋ). 바로 일어나지 못해 뒹굴거리다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벌떡 일어나서 바로 커튼을 걷어버리는데. 눈이 부신 것도 잠시 맑디 맑은 파란 하늘을 보면 아무리 피곤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치앙마이의 콘도들은 모두가 통창이고 부엌 쪽으로 연결된 세탁실까지 통창이라서, 옷 갈아입을 때면 내 집인데도 숨어서 갈아입어야 할 정도지만. 그래도 하늘 보기에는 정말 이만한 것이 없다.
일어나자마나 찬물로 세수한 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오늘 작업할 것들을 확인한다. 기한이 정해진 작업물이 있다면 그것 먼저 시작하고, 신랑은 아침을 준비한다. 쪼로록, 달칵. 커피물을 끓이고. 덜컹, 부스럭부스럭, 탁. 냉장고에서 빵과 잼, 과일들을 꺼낸다. 쏴아아, 탁탁탁탁, 달그락. 사과 한 알을 씻어 자르고 바나나도 있다면 한 입 크기로 접시에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커피 가루를 넣은 컵에 물을 부으면 아침 식사 준비 완료.
아침 드세요~ 편할 때 오세요.
눈 뜨자마자 아침식사를 준비하니 피곤함이 잔뜩 묻어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랑이 가득 느껴지는 신랑의 목소리. 주부인 신랑은 꼭 밥 먹으라는 이야기를 할 때만 경어체를 쓰는데, 글로 쓰면서 보니 뭔가 희한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가 선택한 치앙마이의 콘도들은 첫 콘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스마트 TV가 된다. 그 말인즉슨 유튜브를 보는 게 가능하다는 점. 비록 광고는 태국어로 나올지언정 한국 프로그램과 유튜브들을 볼 수 있으니, 식사 시간은 잠깐이나마 한국에 온 듯한 아늑한 느낌이 든다. 나 혼자 산다의 팜유 멤버들이 간 대만의 타이중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다.
아침을 먹고 나면 신랑은 바로 설거지를 하고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시간이 촉박한 작업은 빨리 마무리하고 그렇지 않다면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한다. 주로 뉴스를 훑어보거나 지인들과 하는 스터디 자료 준비 혹은 유튜브 편집, 브런치 글쓰기 등이 되겠다. 시간이 촉박할 때면 아침을 먹은 후부터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고 신랑은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고 각종 영상들을 보며 논다ㅎㅎ
하지만 일이 촉박할 때가 아니라면 우리는 잔뜩 게으름을 피우다가 느지막이 외출 준비를 한다. 아침을 먹고 빈둥거리다가 배가 고파올 즈음 나가는 것이 우리의 게으름 피우기. 다른 고민없이 배가 고프다는 생각 하나로만 움직이는 게 참 평화롭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동물같은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보니 우리는 단순하게 사는 것이 목적일지도 모르겠다.
고민하는 것도 귀찮아진 우리는 휘적휘적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단골 맛집에 간다. 뭘 먹어도 맛있고 심지어 커스터마이징까지 가능하니까, 걱정없이 끌리는 것을 주문하면 알아서 맛있게 만들어주시는 아주머니. 몇 번 왔더니 얼굴을 기억하시곤 저번에는 할인을 해주셨는데, 이번에는 양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자칫하면 남길 수도 있겠다 싶은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었지만 워낙 맛있으니 결국 다 먹게 되는 마법 :)
잔뜩 부른 배를 두드리며 바로 옆의 카페에서 타이티나 아메리카노를 하나 주문하고 멍때리면 천국이 따로 없다. 이게 천국이지 무엇이 천국일까. 카페도 다른 아주머니께서 하시는 곳인데, 이쪽 골목은 모두 아주머니들이 꽉 잡고 계신다. 구글 맵에서도 찾기 어려운 아주 자그마한 상권인데. 배달까지 직접 쉴새없이 다니시는 걸 보면 역시 현지분들은 다 아는 맛집일지도 모르겠다.
한참 여유를 즐기다 바로 맞은편 사원도 살짝 걸어본다. 치앙마이는 사원이 정말 많고 또 유명한 곳들도 많지만 대체로 시끌벅적한 편인데. 우리집 근처의 왓쩻욧은 정말 조용하고 현지분들만 주로 오가는 느낌이다. 주말이면 두손을 모으고 가족끼리 오시는 걸 보면, 역시 성당이나 교회같은 느낌이려나. 이렇듯 무언가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고요한 사원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된다.
조금은 서늘해진 12월의 치앙마이 바람을 느끼며 집에 돌아가는 하늘은 여전히 푸르기만 하다. 저녁은 그날그날 먹고 싶은 것으로 사먹는다. 그랩 어플로 배달시켜 먹거나, 케밥집에서 포장하거나, 편의점 도시락도 충분히 맛있기 때문에 편한대로 골라먹기. 좋아하는 것들만 잔뜩 펼쳐놓고 TV를 보며 깔깔대며 먹다가, 피곤해지면 씻고 자는 삶이 우리의 요즘 일상이다.
게으름과 느긋함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이제 2주도 채 남지 않은 치앙마이라서 더욱 소중하고 아쉬운 하루하루들. 기상이변으로 더웠다가 눈이 왔다가 비가 왔다가 추워졌다가 한다는 한국 뉴스를 보면, 따뜻하고 평화롭기만한 지금의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치앙마이에서,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
✨본 브런치북은 신랑과 함께 하는 치앙마이 살이를 담고 있습니다. 발행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