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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Jul 29. 2024

우리 악착같은 환자가 되기로 해요

고통에 익숙해지지 말자구요

사랑하는 저의 배우자는 크론병 환자입니다. 8년째 크론병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차츰차츰 건강이 좋아지면서 곧잘 먹고 곧잘 웃으며 지냅니다. 하지만 마냥 편안해 보이는 신랑이 가끔 이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땐 진짜 죽고 싶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입니다. 어지간한 일에는 담대한 편이라고 자부함에도 이 사람에 대한 것만은 어찌 이리도 마음이 약해지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닌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감히 그 아픔을 짐작하고 싶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신랑은 그리 아프지 않습니다. 정확하게는 아주아주 가끔 통증이 찾아오지만 신랑의 말에 따르면 예전과 비할 것도 안 된다고 하네요. 죽고 싶을 만큼 아팠던 건 저를 만나기 이전이에요. 함께 하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상상만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알지 못하는 그때의 신랑이 이렇게 가끔 안쓰럽고 또 견뎌줘서 고마운 마음이에요.



... 그럴 때 어떻게 했어?
나? 그냥 뭐 참는 거지... 괜찮았어. 그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



오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 저의 과거를 돌아봅니다. 이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뀐 생각들이 많은데요. 어쩌면 살아옴에 있어 고난이 더 많은 사람은 실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건 너가 부정적이어서 그래'라는 말은 너무나 모진 말이에요. 실제로 긍정적인 성격이 아님에도 운이 좋은 사람이 있고, 부정적인 성격이 아님에도 운이 나쁜 사람을 많이 봤거든요. 오히려 나쁜 일을 자주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나쁜 일도 더욱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자 노력하는 멋진 사람들이죠.



그럼에도 안타까운 건, 부당한 일조차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되었기 때문에 모든 걸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 사람에 비하면 운이 좋은 삶을 살아온 저는 부당한 일이 발생한 즉시 해결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거든요. 모든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순하디 순한 성격이, 저는 가끔 이렇게 마음이 아픕니다. 도움을 요청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깨달아버리고 순응해버린 착한 사람이요.




저는 중환자실 간호사였습니다.


중환자실을 묘사하는 표현들이 여럿 있는데요. 2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을 경험한 제게 중환자실은 죽음이 익숙한 곳이었습니다. 생과 사를 넘나들 정도로 위급한 경우는 왠지 응급실 쪽에 어울리는 것 같고요. 오히려 천천히 빛이 스러지는 죽음이 많았습니다.



이십 대 중반, 사회에 발을 디딘 저는 적응할 틈도 없이 숱한 죽음을 겪었습니다. 애도할 새도 없이 지나는 죽음들에 제 삶조차 깎여나가는 느낌을 받으며 매일을 살았어요. 고작 간호사인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환자를 살릴 방도는 없어 보였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그저 발악 같았어요. 이 환자를, 꼭 이렇게 데려가야만 하나요?! 하는 정도의 아주 작은 발악.



제가 할 수 있는 건 짬짬이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봐드리고 한 번이라도 더 말을 거는 것뿐이었어요. 그런데 환자들과 가까워질수록 저는 더 힘들어지기만 했습니다. 말을 한 번이라도 나눠본 분이 돌아가시면 꿈에도 나올 정도였거든요. 병에 걸린 환자보다 제가 더 그분들의 삶에 집착했던 것 같아요. 자꾸 잠이 드는 시간이 길어지는 분들을 붙잡고 주절대는 제게, 환자분이 오히려 미안해하며 괜찮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불행하게도 그렇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착하다보니 깨달은 게 있어요. 악착같은 분들은 살아나가시더라고요. 의료진을 발로 차고 생명유지를 위한 관들을 다 뽑으려던 환자분들은, 아무리 긴 시간이 걸려도 꼭 나아서 병동으로 가셨습니다. 유난히 불편한 것도 잘 참고 당연한 것도 미안해하시던 분들은 자꾸만 돌아가셨어요.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할까요. 조금... 이상했습니다.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저의 생각은 근거만 더해갔어요. 점점 관을 뽑으려고 힘을 써야 하는 환자들이 반가워졌습니다. 이 분은 사실 수 있겠구나 싶어서요. 그리고 저만의 결론에 이르렀어요. 삶에 있어서만은 악착같아져야 한다. 악착같으면 살 수 있다.



어떤 이유로든 살겠다는 강한 열망이 있으면 살게 된다고 느꼈습니다. 소위 말하는 식물인간의 상태로 일 년 가까이 계시던 분도 있었는데요. 하루도 빠짐없이 면회를 오던 보호자분의 사랑 덕분이었을까요? 어느 날 갑자기 미동 없던 눈동자가 움직이고 의식이 깨는 것에는 며칠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후부터 저는 애정하는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살고자 하면 살 수 있다. 악착같이, 우리는 살자.



제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 건 당연한 일이었고요. 그런데 제가 결혼할 마음을 먹게 한 사람은 의외로 애착이 강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환자라서가 아니라 제가 순한 사람들에게 이끌렸던 걸까요?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 또한 악착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죽지 못해 산 시기도 있었다는 걸 말이에요.



결혼을 결심하고 신랑과 많은 대화를 했지만 단연 강조한 건 이 부분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살고자 할 거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다. 악착같아지면 좋겠다. 실수로라도 농담으로라도 죽는다는 말은 입에 담지 말자고.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보면 볼수록 착하고 여린 남편에게 저는 욕심을 주문했어요.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려면 우선 놓고 싶지 않은 게 있어야 하니까요. 시간이 흘러 제 남자는 식탐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다이어트라는 고통을 떠안게 되었지만, 아무렴 어때요. 그것도 살아있으니 가능한 고통인걸요. 물론 아프지 않은 게 제일이지만요.



타인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도 신경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가끔은 마냥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닐 때가 있잖아요. 이 사람은 세상이 자신을 홀대하는 것에 익숙한 나머지 기대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당연한 것에는 감사해하면서 되려 스스로에게는 굉장히 엄격해요.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까다로운 사람이라니, 이건 조금 가혹하잖아요.



어떤 사람도 고통에 익숙할 수는 없어요


이 당연한 명제를 자신에게만 적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바꿔볼 생각이에요. 조금 느리더라도 남편의 삶을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줄 거고요. 다행히 의도한 대로 변화하는 중인데요. 집에 있기만 좋아하는 주부라서 일까요? 자꾸 저한테만 실습을 하네요. 이제 사람들도 만나고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해볼 때도 된 것 같죠 :)



사람은 바뀌면 안 된다지만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면 바뀌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독해지셨으면 합니다. 악착같아지셨으면 좋겠어요. 고통에 익숙해지지 마세요.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더 좋은 걸 많이 누리며 사시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요 :D

                    


✨본 매거진에서는 희귀난치병인 크론병을 앓는 남편을 보며 느끼는 아내의 생각을 다룹니다. 수많은 이 세상의 환자와 보호자분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동하셨다면 본 매거진 혹은 작가 '밍이'를 구독해 주세요. 항상 따뜻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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